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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출산
무라타 사야카 지음, 이영미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살인출산
저자: 무라타 사야카
출판: 현대문학
역자: 이영미
생명을 앗는 행위인 '살인'과 생명을 탄생시키는 행위인 '출산'은 정 반대의 개념이라 서로 어울리지 못할 것 같지만 무라타 사야카는 보란 듯이 이 두 단어를 하나로 합쳐 소설의 제목으로 사용했다. '살인출산'은 10명을 낳으면 1명을 죽일 수 있도록 허락해주는 미래사회를 다룬 작품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자식을 낳고 기르며 살아가는데, 요즘엔 가치관이 변하면서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도 많이 늘어났다. 거기다가 의학의 발달로 인해 노년층의 사망률이 줄어들게 되면서 우리 사회는 점점 고령화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청년이 많은 노인을 부양하게 되면서 각종 문제가 발생하는 이러한 상황은 비단 일본 사회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계속해서 노년 인구가 늘어나고 있으니 이를 부양해야 하는 청년들은 많은 부담을 지게 될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이 좋은데, 요새는 아이도 잘 낳지 않으려 하니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살인출산'은 이러한 저출산 문제를 살의로써 해결한다. 죽이고 싶은 누군가가 있다면 아이를 10명 낳은 뒤 합법적으로 죽일 수 있다. '살인출산'의 배경이 되는 곳은 과학이 발달하여 남자도 인공 자궁을 통해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할 수 있는 사회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10명을 낳으려면 10여 년간 고생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출산을 하는 사람은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기도 하는 그런 사회이기도 하다.
내용만 보면 '살인출산'에 나오는 사회는 정말 말도 안 되는 곳인데, 무라타 사야카는 이를 이용하여 제도의 모순을 고발하고 인간의 본성을 끌어내고 있다. 인상 깊었던 부분은 살인을 한 사람을 사형으로 처벌하는 게 모순이라는 부분이었다. 생명을 죽였으니 오히려 새로운 생명을 출산함으로써 죗값을 치러야 옳다는 것인데 그럴싸한 생각인 것 같기도 하다. 인구난에 허덕이는 미래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할 테니 범죄자를 사형시키지 않고, 손실된 부분만큼의 노동력을 제공하도록 형벌의 성격이 바뀔 수도 있을 것 같다.
'살인출산'에는 10명을 낳으면 1명을 죽일 수 있도록 허락해주는 이러한 이상한 제도에 불만을 품고 있는 사람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건 아니다. 사키코는 몰래 살인출산 제도에 대항하는 활동을 해오고 있었으나, 끝내는 이쿠코의 언니에게 희생된다. 이쿠코의 언니는 처음부터 사키코를 죽일 생각은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강한 살생 충동으로 벌레를 죽이곤 했는데 그것이 이어져 결국 스스로 '출산자'가 되어 아이 10명을 낳고 살인을 하게 된 것이다. 상대가 누군지는 상관없었던 이쿠코의 언니는 쉽게 말해서 '묻지마살인'을 한 셈인데, 당하는 입장에서는 무척 억울한 상황이다. 사쿠코와 같은 '희생자'의 죽음은 고귀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오히려 그런 점 때문에 더욱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새롭게 태어난 10명이나, 죽은 1명이나 다 똑같은 생명인데 10명을 낳았다고 사람 한 명을 죽일 수 있도록 해주는 사회가 공포스러웠다.
생각해보면 '살인출산' 속 사회는 소설이나 영화 속에만 등장하는, 실제와 동떨어져 있는 그런 사회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10명 태어나고 1명만 죽는다면 수치상으로는 이득이겠지만 죽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이 소설을읽고 공리주의적 문제가 떠오르는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상황이 실제로도 발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수의 이익으로 소수가 고통을 받는 그런 상황인데,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 주변에 사키코처럼 희생을 강요받게 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명심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