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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
이도형 지음 / 다연 / 2017년 6월
평점 :

사유(思惟) : 대상을 두루 생각하는 일.
사유란, 생각을 하는 일이다. 사유의 대상은 특별히 정해져있지 않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컴퓨터에 대해서 사유할 수도 있고, 내일 먹게 될 점심 식사의 메뉴에 대해서 사유할 수도 있다. 이렇듯 사유의 폭은 무궁무진하고 우리는 매일 사유를 하며 살아간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사유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양 근대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철학자 데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내가 포스팅하고 있는 이 책의 제목은 <사유>이다. 군더더기가 전혀 없는 깔끔한 제목이다. 책의 표지도 제목처럼 무척 깔끔하고 여백이 많다. 바탕도 하얀색이다.
가운데에 있는 쉼표가 인상적이다. 사유를 하려면 쉬어야 한다. 제대로 된 휴식 속에서 올바른 사유가 나온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책표지는 영화 포스터와도 같다. 포스터 한 장에는 영화의 모든 내용이 함축되어 있지만, 때론 기대감을 너무 높여 관람객에게 실망감을 주기도 한다. 쓸 데 없는 요소가 너무 많이 들어가 있는 경우 특히 그렇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표지는 몹시 훌륭하다. 보기만 해도 어떤 내용의 책인지 쉽게 알 수 있는 것은 물론, 책의 내용보다 지나치게 꾸며져 있지 않아서 좋다. 내가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도 표지 디자인 때문이었다.
평균 기온이 40도에 가까운 무더운 여름이다. 비도 잘 내리지 않는다. 그동안 오래 버텨왔지만 슬슬 한계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더위뿐만 아니라 점점 어려워지는 경기 상황,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 더욱 지쳐가고 있는 요즘이다. 아무래도 휴식이 필요한 것 같아 독서에 열중하기로 하고 이 책을 몰입하여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흐뭇한 표정으로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마음에 드는 책이었다.
지천명(知天命). 하늘(天)의 명(命)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나이 50세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아무리 의학기술이 발전하여 인간의 수명이 늘어났다고 해도 오십 줄의 나이테가 주는 느낌은 너무나 묵직하다. 아직은 한참 멀었지만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나는 50살이 되면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중년의 나이인 이 책의 저자는 대학에서 행정학을 가르치고 있다. 행정학에 교수라니, 좀 딱딱한 느낌이 들지만 행정학 교수이기 때문에 폭넓은 사유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행정은 공익을 실현하기 위한 국가의 작용인데, 이런 행정을 연구하는 행정학은 철학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교수라는 직업 역시 사람을 가르치는 일을 하므로 철학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행정학 교수는 철학자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산에 오르고, 사진을 찍고, 음악을 듣는 일상에 대해서 사유한다. 사유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50세의 행정학 교수가 하는 사유이기 때문에 더욱 특별한 것 같다. 한편으로는 일기를 보는 것 같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강의를 듣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그것도 햇볕 잘 들고 바람이 솔솔 부는 날의 야외 강의를 듣는 그런 느낌이다.
세상사가 잘 풀려 제가 좀 우쭐할 때면, 산은 저를 넌지시 불러내 혼냅니다.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면 조금 몸을 다치게 하여 마음의 눈으로 겸허의 징검다리를 보도록 만듭니다. 그제야 저는 허겁지겁 낮은 데로 임하며 그 징검다리를 오래 들여다봅니다. (p. 15 - 산행)
처음에는 일상에 대해서 사유를 하고 그다음엔 가족, 도시(미국의 Eugene), 인생, 학문, 사회, 정책, 직장, 자연 순으로 사유의 범위를 점점 넓혀나간다. 글을 쓴 시간이 아니라 주제를 기준으로 저자의 글이 편집되어 있는 방식인데, 이러한 구성 덕분에 나도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사유의 범위를 넓혀나갈 수 있었다.
후반부의 사회, 정책, 자연 부분은 저자의 전공과 관련이 깊다. 저자는 생태주의 행정학을 연구한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사회 정책과 자연에 대한 내용을 읽을 때는 강의를 듣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지루하거나 어렵다는 의미가 아니다. 무척 가치 있는 것들을 들어 좋았다는 뜻이다. 만약 이런 강의를 만 삼천 원에 받을 수 있다면 당장 수강신청을 할 것이다.
투표가 만병통치약은 아닙니다. 의견의 대립과 생각의 차이가 클수록,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칠수록 시간을 들여서라도 중지를 모으고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한 발짝씩 물러나 양보의 시점이나 차선의 합의점을 도출해내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제도화도 존중해야 합니다. 그것이 '좋은 과정이 좋은 결과를 낳을' 확률을 훨씬 높여줄 것입니다. (p. 223 - 투표)
이 책을 통해 지친 일상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었고, 저자의 '인생수업'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바쁘게 사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휴식이 필요하다. 잠깐은 일과 걱정을 내려놓고, 스마트폰 대신에 책을 쥐어 보는 것은 어떨까? 이 책에 있는 9개의 주제와 80개의 글을 따라 산책하다 보면 어느새 한껏 성숙해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원문 - http://blog.naver.com/jinnyride/221068134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