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과 아이, 부모자식의 역할, 주종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가족. 소녀는 그저 엄마와 함께하기를 원했다. 경계선이 없는 세계. 거기에는 부모자식을 초월한 애정이 있을지도 모른다. 자기 역할을 내려놓아도 사라지지 않는 인연이 있었다. <보더> - P121

"집행자 곁을 지켜 주더라도 우리는 언제나 공평해야 하지 않을까요?"
"흐음, 공평이라. 그건 각자의 정의나 입장에 따라 달라. 게다가 공평이라는 명목하에 생긴 이 법에는 늘 아픔이 동반한다고 생각하지 않나?"
"아픔?"
"복수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지만, 복수하고 싶으면 상대와 똑같이 자기 손으로 하라는 거지. 실로 잔혹한 법이야" ㅡ <앵커> - P143

복수법을 선택한 순간, 집행자가 되는 인간의 마음에는 변화가 생긴다. 범인을 향한 증오뿐이었던 감정에 ‘내 손으로 죽여야 한다’는 강렬한 공포심이 덧붙는 것이다. 집행일이 올 때까지 그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 아니, 집행일 후에도 영원히 출구 없는 공포와 아픔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한다. ㅡ <앵커> - P170

내부 관계자 중에 언론에 정보를 흘린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복수법을 선택한 두 사람은 인터넷 게시판에서 가족을 끔찍이 아끼는 용감한 사람으로 칭찬받았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엔도를 욕하는 댓글은 끊이질 않았다. 그중에는 ‘복수법을 선택해 달라’고 부탁하며 애원하는 피해자 유족을 밀쳐 냈다는 소문까지 올라와 있었다.

때때로 여론은 잘못된 정보에 춤추고 동요되어 얄팍한 정의를 휘두른다. 잘못된 정의였음을 깨달은 후에는 과연 어떤 대답을 내놓을까. ㅡ <앵커> - P171

모리시타 하야토가 최후를 맞은 날은 그의 열한 번째 생일이었다. 탄생을 축하받아야 마땅할 날에 짧은 생애를 접은 것이다.

소년이 사망했다는 뉴스가 보도되자, 복수법 반대파의 데모는 더욱 활성화되었다. 지금까지 무관심했던 사람들도 법의 찬반을 놓고 적극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복수법을 선택한 유족을 비판할 수도, 이 법의 존재를 비난할 수도 없다. 깊이 관여할수록 자기 나름의 대답을 더더욱 찾을 수 없게 된다.

앞으로 몇백 년이 지나도 인간은 무엇이 옳은 법인지를 계속 논의하겠지. ㅡ <저지먼트> - 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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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구트 꿈 백화점 - 주문하신 꿈은 매진입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
이미예 지음 / 팩토리나인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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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몽을 꾸고 싶지 않으세요?"

"내용을 미리 아는 건 재미없거든요. 영화도 그렇고 사는 것도요. 스포일러는 딱 질색이에요."

"유명한 시나리오 작가가 될 수 있는지 궁금하진 않나요?"

"전혀요. 오히려 미리 안다면 정말 불행할 거예요. 좋은 미래를 본들 그게 진짜라는 보장도 없는데 괜히 나태해질 수도 있고요. 그대로 되지 않으면 좌절감만 커지겠죠."

"다들 자신의 최종 목적지를 궁금해하시던데 손님은 그렇지 않다는 말씀인가요?"

이번에는 웨더 아주머니가 질문했다. 페니가 보기에 웨더 아주머니와 달러구트는 지금 굉장히 들떠 있는 상태였다.

"목적지요? 사람은 최종 목적지만 보고 달리는 자율 주행 자동차 따위가 아니잖아요. 직접 시동을 걸고 엑셀을 밟고 가끔 브레이크를 걸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야 제 맛이죠. 유명 작가가 되는 게 전부가 아닌걸요. 전 시나리오를 쓰면서 사는 게 좋아요. 그러다가 해안가에 도착하든 사막에 도착하든 그건 그때 가서 납득하겠죠." - P116

"모두들 잘 먹고, 잘 자고, 좋은 꿈 꾸십시다!" - P193

"여러분은 언제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끼십니까?"

그가 숨죽이고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대화하듯 말을 건넸다.

"여러분을 가둬두는 것이 공간이든, 시간이든, 저와 같은 신체적 결함이든…. 부디 그것에 집중하지 마십시오. 다만 사는 동안 여러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데만 집중하십시오. 그 과정에서 절벽 끝에 서 있는 것처럼 위태로운 기분이 드는 날도 있을 겁니다. 올해의 제가 바로 그랬죠. 저는 이번 꿈을 완성하기 위해 천 번, 만 번 절벽에서 떨어지는 꿈을 꿔야 했습니다. 하지만 절벽 아래를 보지 않고, 절벽을 딛고 날아오르겠다고 마음먹은 그 순간, 독수리가 되어 훨훨 날아오르는 꿈을 완성할 수 있었죠. 저는 여러분의 인생에도 이런 순간이 찾아오길 기원합니다. - P224

"영감이라는 말은 참 편리하지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뭔가 대단한 게 툭하고 튀어나오는 것 같잖아요? 하지만 결국 고민의 시간이 차이를 만드는 거랍니다. 답이 나올 때까지 고민하는지, 하지 않는지. 결국 그 차이죠. 손님은 답이 나올 때까지 고민했을 뿐이에요." - P241

"깨달음에는 시간이 걸리는 법이지."

달러구트는 프런트에 쌓여 있는 카달로그를 정리하고 있었다.

"‘타인의 삶’을 꾸고 나면 어떤 꿈값이 도착할까요? 전 다른 사람의 삶을 보면 부러워서 열등감에 시달리기도 하고, 우월감이나 안도감을 느끼기도 해요."

페니는 여러 상황을 떠올렸다. 좋은 가게에 먼저 취직했거나 집이 잘사는 동창생을 떠올리기도 하고, 변두리 하역장에서 일하는 아이를 보며 ‘그래도 내가 쟤보단 낫지.’라고 생각했다가 부끄러웠던 기억도 떠올랐다.

"페니, 나는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방법에는 2가지가 있다고 믿는단다. 첫째, 아무래도 삶에 만족할 수 없을 때는 바꾸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페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그리고 두 번째 방법은, 쉬워 보이지만 첫 번째 방법보다 어려운 거란다. 게다가 첫 번째 방법으로 삶을 바꾼 사람도 결국엔 두 번째 방법까지 터득해야 비로소 평온해질 수 있지."

"어떤 방법이죠?"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만족하는 것. 두 번째 방법은 말은 쉽지만 실행하기는 쉽지 않지. 하지만 정말 할 수 있게 된다면, 글쎄다. 행복이 허무하리만치 가까이에 있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지."

달러구트가 알아듣기 쉽게 차근차근 말했다.

"난 손님들이 2가지 중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터득할 거라고 믿는단다. 그러고 나면 아주 귀중한 감정이 꿈값으로 도착할 테지."

"시간이 정말 많이 걸릴지도 모르겠네요."

"느긋하게 기다려 보지 않겠니? 그리고 그때 ‘타인의 삶’을 정식으로 출시하도록 하자꾸나." - P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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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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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당신의 그런 영민함이랄까 재치에 반했지만 한편으론 당신이 무언가 가뿐하게 요약하고 판정할 때마다 묘한 반발심을 느꼈다. 어느 땐 그게 타인을 가장 쉬운 방식으로 이해하는, 한 개인의 역사와 무게, 맥락과 분투를 생략하는 너무 예쁜 합리성처럼 보여서. -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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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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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사람들이 ‘시간‘이라 부르는 뭔가가 빨리 감기‘ 한 필름마냥 스쳐가는 기분이 들었다. 풍경이, 계절이, 세상이 우리만 빼고 자전하는 듯한. 점점 그폭을 좁혀 소용돌이를 만든 뒤 우리 가족을 삼키려는 것처럼 보였다. 꽃이 피고 바람이 부는 이유도, 눈이 녹고 새순이 돋는 까닭도 모두 그 때문인 것 같았다. 시간이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편드는 듯했다. - P23

이곳 사람들은 ‘혼자‘라는 단어를 닳아 없어질 때까지 만지고 또 만졌다. 몸에 좋은 독이라도 먹듯날마다 조금씩 비관을 맛봤다. 고통과 인내 속에서, 고립과 두려움 속에서, 희망과 의심 속에서 소금처럼 하얗게, 하얗게 결정화된 고독………… 너무 쓰고 짠 고독. 그 결정이 하도 고유해 이제는 누구에게도 설명할 엄두를 내지못한다. 입을 잘못 떼었다가는 한꺼번에 밀려오는 감정과 말의 홍수에 휩쓸려 익사당할지 모르니까.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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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사상들
윌 듀런트 지음, 김승욱 옮김 / 민음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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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책은 사실 잘 읽지 않는다. '잘' 도 아니고 '거의' 읽지 않는 편이다. 일단 읽는 것 자체만으로도 쉽지 않으며 그 걸 읽으며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기 또한 어렵다. 역사책이나 인문학 서적도 잘 읽는 편인데 철학책은 유독 손대지 않는다. 아마 나 같은 사람이 굉장히 많지 않을까.

철학책을 한번 시작해보고자 할 때 마침 민음북클럽에서 이 이벤트가 나왔고 윌듀런트의 책이라고 해서 호기심이 생겨 신청했다. 윌듀란트의 '문명이야기'를 지금 읽고 싶어서 드릉드릉한지 꽤 되었는데 (너무 크고 많아서 아직까지 실행에 옮기진 못했다. 이북으로 사자니 뭔가 그건 책으로 읽어야만 할 것 같은 그럼 느낌적인 느낌..)그 저자의 책이라니! 하면서. 그러고보니 윌듀란트의 책을 읽고 싶어하는 와중에도 그의 책인 '철학이야기'는 손댈 생각도 안했었다.


다른 철학책보다 쉽고 가볍게(?) 읽을 수 있다는 말에 선택했는데 결론적으로는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분명 한번쯤은 들었던 이름들임에도 까먹은 것들도 많았고 나의 배경지식이 역시나 부족하구나, 를 통렬히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달까. 다른 깊은 내용의 철학책을 읽었더라면 첫장에서 넘어가지 못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철학 입문자나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한번쯤 읽어보면 괜찮지 않을까 싶다.










퓰리처 상을 수상한 대단한 작가이자 학자라도 세상의 수많은 사상들 중 몇 가지만을 선택하기엔 객관성에 문제가 될 수 있기에 책 앞머리부터 그 기준을 정확하게 제시한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 사상가들이 이 책에 없기도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의 이유를 기준으로 납득이 가는 내용들이 안에 들어 있다.


위대한 사상들에서는 차례대로 이러한 내용들을 다룬다.


- 위대한 사상가 10

- 위대한 시인 10

- 교육을 위한 최고의 책 100

- 인류 진보의 최고봉 10

- 세계사의 결정적인 연도 12


'사상' 이라는 개념에 맞게 위대한 사상가를 포함해 시인, 역사, 책 등을 뽑아서 정리해놓고 있는데, 그가 선정한 인물-천재들에 대한 아낌없는 믿음과 찬사를 볼 수 있다. 이름만 들어도 어려운 철학자들과 쉽게 접하지 않는(접할 수 없는 이 아니라 선택적으로 보지 않게 되는) 시인, 그리고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역사와 지성을 쌓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도 소개되어 있어 나름대로 알차다. 


개인적으로 재밌게, 그리고 나의 지식과 연동되어 공감하며 읽은 것은 인류 진보와 세계사 연도. 사실 사상가와 시인은 배경지식이 많지 않고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내용이라 새로운 내용을 머릿속에 채워넣는다! 라는 의지로 주문을 걸듯이 읽은 챕터고() 최고의 책은 리스트들 중에서 나중에 읽어 보고 싶은 책들만 골라서 적어놓았다.

인류진보와 세계사 챕터는 웬만하면 대부분이 아는 내용이기 때문에 한번 더 짚음과 동시에 전문적인 시각에서 본 관점을 새로 알 수 있어서 재밌게 볼 수 있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아무래도 저자가 미국인이다 보니 거의 모든 내용이 '서양'에 치우쳐져 있다는 것. 이 점은 책 후미에 저자도 언급해 놓았다. '어쩔 수 없다'고.(?) 윌듀란트의 책을 읽고 나니 저쪽이 아닌 이쪽 지역을 중심으로 다룬 책도 읽어보고 싶어진게 장점이라면 장점일까.

더 많은 지식을 위해선 더 많은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모든 내용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저자의 별명인 '지식소매상'에 걸맞게 이제부터 지식을 채우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추천한다. 지성인이 되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입문책임과 동시에 나의 내면과 지성을 다른 책들에 비해 훨씬 쉽게 채울 수 있을테니까.







p.31

어떤 제자가 악에도 선으로 응해야 하느냐고 묻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선에는 무엇으로 보답할 것인가? 선에는 선으로 보답하고, 악에는 정의로 대응하라."

공자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고 믿지 않았다. 지성을 보편적인 재능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의 제자인 맹자는 이렇게 표현했다. "인간과 하등 동물을 서로 다른 존재로 만들어주는 아주 미미한 그것.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을 내동댕이친다."

- 위대한 사상가 10 <공자>






p.70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 것은 바람이 지나면 없어지나니 그곳이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 위대한 시인 10 <다윗>







p.159

'진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주관적인 정의로는 부족할 것이다. 진보를 한 나라나 한 종교, 한 가지 도덕규범에만 입각해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우리가 쓰는 '진보'라는 용어의 객관적인 정의, 모든 개인과 집단은 물론 모든 생물 종에게까지 적용되는 정의를 찾는 것이 가능할까?

- 인류 진보의 최고봉 10







p.167

조지 메러디스는 여성이 남성의 손에 문명화된 최후의 생물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단 한 문장으로 이렇게 틀린 소리를 하기도 쉽지 않다. 문명이 일어나는 데 주로 기여한 것은 다음 두 가지였기 때문이다. 먼저 집은 사회 구성원들을 심리적으로 결합시키는 사회적 기질을 발전시켰다. 두번 째로 농업은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사냥과 목축을 하고 생명을 죽이던 사람들이 한 곳에 오래 정착해 집, 학교, 교회, 대학, 문명을 세우게 해 주었다. 그런데 남자에게 농업과 집을 준 사람은 바로 여성들이었다. 여성은 양과 돼지를 가축화하듯 남자들도 길들였다. 남성은 여성들의 마지막 가축이며, 아마도 여성의 손에 문명화 될 마지막 생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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