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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방 우편기 ㅣ 현대문화센터 세계명작시리즈 19
생 텍쥐페리 지음, 배영란 옮김 / 현대문화센터 / 2008년 12월
평점 :
이 책은 이상하리만큼 눈에 안 들어오는 책이었다. 읽어도 글을 쓰는 주인공이 누구인지.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공간과 시간 개념을 뒤죽박죽 배치해 술술 읽기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읽고, 다시 보고, 분석 할수록 생텍쥐페리의 매력이 한껏 담겨 있는 보물 상자였다. 그의 문체, 그의 시선, 그의 삶을 통째로 꿰뚫고 있는 책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온 것은 문체의 향기로움이다. 우편기를 타고 비행하며 그가 바라 본 하늘을 그는 이렇게 표현한다. “물처럼 맑은 하늘이 별들을 목욕시켜 내보냈다. ~ 귀가 먹먹한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우리의 발아래로 두텁게 쌓인 모래는 황홀경을 자아냈다.” 하늘에 별들이 가득하게 펼쳐져 있고 땅에는 모래사막이 펼쳐져 있음을 상상할 수 있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표현인지. 이 얼마나 생생한 표현인지……. 감탄하고 감탄했다. 비행사들의 삶과 비행 순간을 포착하여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은 가히 최고라 할 수 있다. 비행 순간의 위태로움을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폭풍우는 모든 걸 허물어뜨리는 자의 곡괭이처럼 비행기를 두들겨댄다. ~ 자욱하게 연기가 소용돌이치고 있다. ~ 정말 엄청난 순간이었다. 지금 이 순간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입안의 살점에서 느껴지는 신맛뿐이었다.” 얼마나 이를 악물고 살고자 했을까! 입안에 느껴지는 신맛은 그의 피 맛 이였을 것이다. 작가가 비행기를 운항하는 비행사이기에 주인공인 자크 베르니스의 운항의 여러 사건들을 마치 동영상을 재생하듯 펼쳐낸 것 같다.
다음으로 이 책의 경이로움은 난해한 글을 난해한 색과 선, 모양으로 표현한 삽화이다. 남방 우편 비행경로가 친절하게 배치되었고, 우편기의 색과 우편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장미 꽃 다발들, 연기들, 출렁이는 바다를 섬세하게 표현되어 읽는 이로 하여금 상상의 나래를 재확인시켜준다. 그리고 곳곳에 숨어 있는 이림니키의 삽화는 생텍쥐페리의 어려운 글을 이해하기 쉽게, 상상하기 쉽게 펼처져있다. 가장 표현을 잘했다고 여겨지는 부분은 p78의 골동품이다. 베르니스가 사랑한 주느비에브가 사랑하는 아들을 잃고 바람을 쐬던 중에 만났던 골동품. 그 골동품에 그녀가 앉아 추억하고 희망한다. 햇빛이 담기기를 생명이 움터나기를……. 햇빛을 생명의 빛을 아이에게 가져다 놓고 싶은 어미의 마음이 애잔하게 느껴졌다.
어린왕자에서 작가는 자신의 생각을 겉으로 표현한 것처럼 이 책도 작가의 생각을 무덤덤한 말투로 표현하고 있다 이 점이 이 책이 보물인 이유이다. p65 “ 사람들은 어째서 그녀의 모습 전체를 사랑하지 않는 걸까? 사람들은 그녀의 일부분만을 좋아하고 나머지는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 주느비에브는 재치있고 감성적이며 사람들은 그녀를 갈구한다. 하지만 그녀의 믿음이나 느낌, 생각 따위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우리의 모습을, 어른들의 모습을 꼬집고 있다. 순수한 눈으로 사람을 보려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으로만 타인을 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 전체를 보지 않고 일부분만 보는 외눈박이를 비판하고 있다. 나 자신도 그렇게 타인을 보고, 아이를 대하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하게 되었다.
또 p97 베르니스와 동반자적인 존재가 하는 말 (처음엔 이 작자가 누구인지 밝혀내는 데 애를 썼으나 결국 못찾음) “내 생각에 삶이란 말이자... 뭔가 다른 것에 의지하고 있는 것 같아. 이런저런 습관, 관습, 법칙 등 자네가 그 필요성도 인정하지 못하고 벗어나버린 그 모든 것들이 바로 삶에 있어 하나의 틀이 되는 거야. 존재하고 있으려면 자기 주변에 감내해야 할 현실이 필요한 법이라네.“ 작가의 삶에 대한 생각이 표현되어 있다. 주느비에브를 데리고 온다면 그녀 자신의 삶에서 그녀가 벗어나버린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 즉 나를 둘러싼 나의 환경에서 나의 정체성이 형성되고, 그것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이다. 이를 인정하고 여기에 속한 나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한 삶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어린왕자에서의 ‘길들임’이라는 표현이 이런 것 간다. 관계맺음을 하며 사는 삶.
이 책이 어려워 포기 한 분들이 있다면 끝까지 읽어보기를 권유하고 싶다. 읽고 다시 보고 또 다시 보면 어린왕자가 가진 매력만큼 아름다운 이 책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서정적이고 은유적인 문체가 나를 사로잡는다. 글을 써내려가는 것을 작가는 “연필이 메모판 위로 내려가 글자를 뱉어 놓는다. 마치 꽃이 피어난 형상이다.”라고 표현했다. 그의 글은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나의 글도 꽃을 피울 수 있을까! 자문하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