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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럴 지음, 오은숙 그림 / 별이온(파인트리)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딱 손에 쥘 만한 크기의 예쁜 책이 내 손에 들어 왔다. 일러스트는 어찌나 예쁜지 일학년인 딸아이도 보겠다며 옆에서 얼쩡거린다. 색감 또한 좋다. 노랑머리에 파랑원피스를 입은 엘리스가 무척 사랑스러워 보인다. 엘리스의 상상의 꿈 이야기가 때로는 당혹스럽고 때로는 황당무계하게 느껴지지만 엘리스의 호기심어린 시선은 독자를 잡아끈다.
난 어릴 때 지구 속으로 계속 땅을 파고 들어간다면? 텔레비전에 내가 보이고 그 텔레비전에 또 내가 보이고 또 그 텔레비전에 내가 보이고...... 계속 이런 모습이 된다면? 내가 모르고 밞은 개미에게 잠자는 사이에 봉변을 맞는다면? 등등 황당한 생각 속으로 빠져들었던 적이 많았다. 이런 수수께끼 같은 질문들의 묶음이 바로 이 책의 내용이다.
토끼 굴속으로 빠져 들어가며 오렌지 마멀레이드 뚜껑도 열고 여러 생각도 하는 엘리스를 보며 도처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호기심에 손이 가는 많은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곁의 부모는 만지면 안 된다고 손사래 치지만 아이들은 기어이 만져봐야 한다. 아이들의 순수함이란 이런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엘리스의 모습에 슬며시 미소 짓게 되나보다.
여기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이상하다. 그래서 ‘이상한 나라’ 인가보다. 이상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까지의 경험이나 지식과는 달리 별나거나 색다른 것이다. 개미들이 본 세상의 모습과, 벌의 눈으로 본 세상의 모습, 장미의 눈으로 본 세상의 모습은 다 다르다. 그렇다면 어떤 모습이 정상적이고 어떤 모습이 이상한 세계일까? 다들 인간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려하기 때문에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더 나아가 같은 인간의 눈이라도 아프리카 어린이의 눈으로 비춰진 세상과 중동 사막에 사는 어린이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다르다. 따라서 이상하다는 것은 자신의 움벨트를 못 벗어났다는 것이다. 자신의 지식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려하기 때문에 이상한 것이다. 순수함으로 책을 들여다보자고 다짐한다. 아이들의 눈으로 읽고 느껴보자고 다짐한다.
엘리스와 송충이
“넌 누구지?”
“글쎄요, 저도 지금은 제가 누구인지 잘 모르겠어요. 오늘 아침까지는 분명히 알고 있었는데, 그 이후로 자꾸 바뀌는 바람에 ...”
“중요한건 키가 아니에요. 문제는 자꾸 이랬다저랬다 몸이 변한다는 거예요. 이해하시겠어요?”
엘리스는 자신이 무엇이지 모른다고 한다. 몸의 크기 변화로 인해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이 온 것이다. 몸과 마음이 일치되어야 하는데 몸과 마음이 분리되어 겪는 혼란이다. 이제마는 사상체질을 주장하며 心· 身 ·肉 이 개별화되고 분리된 상태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통일성을 바탕으로 서로 관계하고 있음을 주장했다. 따라서 엘리스의 혼란은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어 겪는 혼란이다. 가끔 어른이 된 나도 겪는 딜레마이다. 도대체 난 누구인가! 이 대답을 시원스레 할 사람은 몇이나 될까?
엘리스와 여왕, 모자장수, 도도새, 장미 정원사, 공작부인, 거북이 등이 펼치는 이상한 나라의 여행은 모순과 부조리에 대한 해학이 듬뿍 담겨있다. 엘리스의 이상한 나라의 모험을 통해 생각나는 것들이다.
김광석의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라는 노래
이상의 詩
까뮈의 ‘이방인’ 이라는 소설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