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멸렬하고 상투적이고 뻔한 말은 하지 않으련다. 이책은 국내 대중 음악, 인디 음악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죽어도 읽기 싫을 수 있는 책이기 떄문이다. 그리고, 읽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라면 아무리 말려도 읽고야 말 책이기 떄문이다.
맨 처음에 나오는 작품 '피아노, 그린비의 상상'에서 그의 ‘새로운 스타일’이 잘 나타나 있다. 이 소설은 평행선처럼 달리는 두 이야기로 짜여진다. 소설을 쓰는 한 젊은 여자가 저녁 때 방을 나와 슈퍼에서 일하는 애인을 만나 함께 집에 돌아온다. 다른 소설 같으면 소설 같은 사건이 일어날 무의미한 터전이 되었을 이 일과가 여기서는 진정한 사건으로 빼곡이 기록되고 있다. 그러나 어떤 독자가 이런 맹탕의 사건에 빠져들겠는가. 그래서 작가는 소설 같은 이야기를 집어넣는데, 다른 소설과는 달리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가 실제가 아니고 상상에 불과하다는 점을 독자들에게 몇 번이고 주의시킨다. 그리고 소설쓰는 여주인공이 늘어놓는 이야기는 본래의 소설과는 달리 매우 소설적이다. 피아노를 치는 그럴듯한 여자가 있고, 아이가 끝내 생기지 않고, 옛 애인과 몰래 만나고, 피아노를 배우는 말더듬는 젊은 여자에게 애인을 뺏기고, 그때 여자는 어떻게 했다는 둥 그런 식이다. 독자는 따뜻한 물과 찬물이 번갈아 나오는 바람에 마음을 완전히 놓지 못한다. 그러나 차차 이 같은 주기적 변환에 익숙해져 갈팡질팡하다든가 욕구 불만으로 기분나빠 하지 않는다. 그런데 작가는 왜 독자를 가만히 잠재우지 않고 이야기의 함정에 빠져들려 하면 제 편에서 ‘함정이다’고 소리쳐서 깨워버리곤 하는가. 독자는 오래오래 깨어 있게 된다. 바로 이것을 작가는 노리고 있지 않을까. 작가는 영악한 소설 미학에서든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세계관 때문이든 독자가 자기 이야기 속으로 함몰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그러면서 소설 안의 이야기는 또 아주 소설적으로 하려고 한다.그 탓에 속의 이야기들은 은근히 성적인 색깔이 강하다. 표제작인 ‘미성년’에서는 순진하고 자의식 강한 여대생과 허무 의식이 강한 대학 선생간의 연애 감정이,‘은유희’에서는 오만하나 폐쇄적인 여자의 무너짐이 이야기되고 있다. 이야기 방식이 더 착잡하게 얽힌 '심판' '배반' '기다림' '세레모니' 등도 소재는 남녀 관계다.독자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깨어 있게 하는 작가의 ‘새로운 스타일’은 또래의 젊은 여성 작가군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김연경의 새로움에 독자들이 쉽게 응한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주목할 가치가 있는 새로움인 것만은 분명하다.
존재를 일시적인 감금으로 간주하는 주인공은 '존재에 의해 훼손된 무의 완전성을 회복하는 것이 죽음'이라고 믿는다. 도대체 '열심히' 누워 있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이 남자는 이야기가 끝나는 순간 순순히 죽음을 맞겠다는 양해 각서의 일종으로 혼잣말을 시작한다. 주인공에게 삶은 진저리나는 권태다.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란 없다. 고통은 살아 있다는 착각을 강화시킬 뿐 부서진 그림자 같은 육체는 이미 부패했다. 삶은 하품으로 때워야 할 무의미에 불과하다. 최소한의 삶이 최대의 선이다. 현대판 <지하 생활자의 수기>라 할 이 소설은 죽음을 앞둔 인간의 내면을 메마른 시선으로 훑어내린다. 허무주의에 결박된 자가 그나마 이야기(소설)를 하는데 성공한 것은 인간이란 때로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사이에 전념해서는 결코 해내지 못할 일을 해내기' 때문이란다. 이것이 세상을 건너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을까
이 작품은 김현식, 오민정, 허인호, 장요한 신부 등 허구 인물을 통해 광주 항쟁이 갖는 역사성을 재조명했다. 주인공 김현식과 오민정의 사랑을 기둥으로 한 가운데 광주 항쟁의 발생과 종결을 더듬어가고 있는 것. 그러나 이들 인물의 이미지는 광주 항쟁의 중심에 섰던 윤상원씨와 조비오 신부 등과 겹친다. 광주를 지킨 사람들이 왜 그 자리에 서서 투쟁했으며 성자의 길은 또 무엇인가를 표현하려 한듯하다.
리쾨르의 이야기 해석학의 토대를 이루는 세 가지 단계의 재현 활동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전체 3권 중에 가장 문학적인 이 책의 1장에서 3장까지는 허구 이야기의 서술성에 관한 이론들을 조명한다. 1장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을 어떻게 현대 소설에까지 적용시킬 수 있는지 살피면서 줄거리 개념을 ‘확대’하고, 2장에서는 전통성에 근거한 서술적 이해력과 서술기호학에서 내세우는 기호학적 합리성을 대치시키면서 줄거리 개념을 ‘심화’시키며, 3장에서는 서술적 형상화의 방법을 면밀하게 검토하면서 줄거리 구성 개념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서술적 시간의 개념을 다듬는다. 4장에서는 ‘시간의 허구적 경험’이라는 매우 중요한 개념을 제시하면서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 토마스 만의 <마의 산>,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구체적으로 분석한다.이 책을 통해 리쾨르의 해석학과 구조주의와의 힘겹지만 풍요로운 대화를 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리쾨르의 예리한 심미안과 통찰력을 함께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