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기 없는 독백
정영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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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를 일시적인 감금으로 간주하는 주인공은 '존재에 의해 훼손된 무의 완전성을 회복하는 것이 죽음'이라고 믿는다. 도대체 '열심히' 누워 있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이 남자는 이야기가 끝나는 순간 순순히 죽음을 맞겠다는 양해 각서의 일종으로 혼잣말을 시작한다. 주인공에게 삶은 진저리나는 권태다.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란 없다. 고통은 살아 있다는 착각을 강화시킬 뿐 부서진 그림자 같은 육체는 이미 부패했다. 삶은 하품으로 때워야 할 무의미에 불과하다. 최소한의 삶이 최대의 선이다.

현대판 <지하 생활자의 수기>라 할 이 소설은 죽음을 앞둔 인간의 내면을 메마른 시선으로 훑어내린다. 허무주의에 결박된 자가 그나마 이야기(소설)를 하는데 성공한 것은 인간이란 때로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사이에 전념해서는 결코 해내지 못할 일을 해내기' 때문이란다. 이것이 세상을 건너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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