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여자 - 일상에 도전하는 철학을 위하여
줄리엔 반 룬 지음, 박종주 옮김 / 창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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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저자 줄리엔 반 룬은 '철학적 사유와 일상생활을 연결'하는 것을 책의 목표로 삼았다. 총 여섯 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일명 '생각하는 여자들(여성 사상가들)'과의 인터뷰와 자기의 경험을 통해 '사랑, 놀이, 일, 두려움, 경이, 우정을 탐구한다.

서술 방식이 자신의 이야기에 엮어 인터뷰이의 특성과 상황을 설명하고 인터뷰이와의 만남의 분위기와 대화 내용을 언급하고 또 자신의 개인적 이야기까지 넘나드니 의도치 않게(의도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읽는 이에 입장에선) 복잡하고 어수선한 느낌을 지워낼 수가 없다.



사랑, 놀이, 일이 언급되는 1장부터 3장까지 엷은 농도로 바라보는 시각이라 대상에 대한 관점을 조금만 달리하면 젠더뿐 아닌 다른 여러 이야기로 설명 가능하겠다는 생각이다.

그중 놀이 부분에서 '허스트배트 '의 작품 속 이야기가 언급되는데, "뉴욕 미술계에서의 진지한 비평적, 상업적 성공을 위한 핵심 조건"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원한 통쾌함을 느끼게 된다.(직접 보시길...)



 

'우리가 너무나 자주 이미 결정 났다고 상상하는 주제들에 대한 실질적이고 탄탄한 논의'이다. 어째서 그것들을 결정 난 것으로 남겨두려 하는가? 홈스트롬은 이렇게 묻는 듯하다.

본문 중에서

관행이고 관습이고 사실이고 진실이고를 떠나 의심하지 않으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작가와 함께, "그러게 말이다, 어째서."

4장부터 이야기되는 두려움, 경이, 우정에 대한 이야기는 '생각'이라는 걸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을 하게 해주는 부분이었다. 의식하지 못하고 숨을 쉬고 있지만 때로 힘겹게 숨을 쉬는 사람도 있고 숨을 쉬는 것이 삶의 최대 목표인 사람도 있을 테니...

'정말로 대체 왜 전쟁을 찬양하는 걸까요? 왜 유럽에는 광장마다 말을 탄 남자 동상이 있는 걸까요? 역사상 "위대한" 사람들의 정말 많은 수가 살인자들이에요.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요? 전 알 수가 없어요.'

본문 중에서

누구나 자신이 겪어온 일 말고는 충분히 공감하거나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이, 일상에서 버티기 위해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이 별말 아니지 않음을 알기에 두려움을 마음속에서나마 형상화해본다.

두려움, 꺼지라지, 하고 생각했다. 여성들에겐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에겐 출산을 견디기 위해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에겐 일터에서의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에겐 거리에 나가기 위해 용기가 필요하다. 때로 우리는 밤에 우리 침대에 눕기 위해 용기가 필요하다.

...

개인적 차원에서 남성이 폭력을 사용하고 여성이 폭력을 경험하는 것을 멈추려면 사회적 차원에서 젠더 불평등 구조가 바뀌어야만 한다.

...

여성이 시민 사회에 더욱 온전히 참여할수록 두려움과 폭력은 줄어든다는 사실을 말이다.

본문 중에서

그 어떤 존재도 '두려움'이 동반되어서는 안된다. (차별이 없어야겠지만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수많은 차별을 가릴 순 없으니, 적어도 존재의 안위를 걱정하는 두려움만은 없어야 하지 않겠나?) 두려움이 발전을 가져온다고 말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성의 두려움에 너무 늦게 대처해 온 것이 사실이다.

거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호수 한편에서 작은 속삭임을 들었다면 속삭임에 머무르지 말고 호수가 하는 이야기 모두를 들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작가와 책에 언급된 수명의 여성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들만의 푸념도 아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존재들로서 꾸준히 나아가고 있는 희망이다. 그래서 책은 아직은 불편한 희망을 말한다.

브리아도티에게 주체란 변화, 운동, 흔들림에 의해 끊임없이 형성되고 또 재형성된다. 그것은 내부로 향하기보다는 외부를 향하며 이로써 다른 에너지들, 다른 생명력, 다른 존재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그리고 그를 통해 끊임없이 에너지를 얻는다. 의미심장하게도 다양한 형태의 우정을 통해서 말이다.

...

'친구란 계속해서 연락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그녀는 '그들이 성장하는 여러 순간에, 때로는 무너지는 순간에 가까이 있으려 하죠. 힘든 일이에요'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본문 중에서

책을 읽으며 조금 답답한 부분들도 있었지만, 작가의 감사의 말과 역자 후기 등을 읽으며 조금은 해소했다.

우리 모두는 거의 다 주변 가까이에 남자와 여자를 가족으로 친구로 두고 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우리 모두는 또 특정인을 향해 (보통 남자가 여자에게) 생각과는 다른 거친 언행을 보이기도 한다. 일상에서의 철학이란 거창한 논리의 구조나 근거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닌 그저 옳다 여기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용기 아닐까? 이중적 가면을 쓴 나부터 반성할 일이다.

우리 문화에서 남성들의 말과 여성들의 말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두고 마리나 워너가 한 말이 떠올랐다. 전자가 자신감을 갖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려는 성향은 매우 자주 존경과 함께 받아들여지지만, 후자가 그럴 경우엔 지나치게 떽떽대는 것으로, 혹은 수다스러운 성격으로 취급된다. 그럼에도 어떤 여성들은 감사하게도 공적인 삶에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을 끈질기게 쟁취해낼 것이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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