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 되게 살고 싶어한다니까.-
소설 속 되풀이 되던 이 말처럼 나,
되게 살고 싶어서 읽는다. 이왕이면 잘살고 싶어서. 읽는 일외엔 내가 이 세상에서 잘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으니까.

태어난 것이 자기 의지가 아님에도 살고자 하는 욕망이 생기는 것이 아이러니라던 문장처럼, 어떤 날엔 죽고 싶을만큼 힘들어서 되게 죽고싶은 날이 있는데, 또 어떤날엔 죽을만큼 아픈것이 겁이 난다. 그러면 되게 살고 싶어진다. 이왕이면 잘 살고 싶다고. 그리고 오래살고 싶다고.

자기 의지 없이 태어난 삶도 억울하긴 하지만 자기 의지없이 살아가는 삶은 더 비참하니까. 더없이 하찮고 쓸모없는 나지만 그래도 거 되게 살고 싶어하는 삶인걸. 어째? 그럼 되게 삶의 의지를 갖고 싶어진다. 그러면 또 깊은 밤 홀로 생각하고 끄적여본다. 결국 나, 되게 살고싶어한 거였구나.

요절이란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박지리의 ‘번외’를 읽었다. 새벽녘마다, 이틀에 걸쳐. 어쨌든 그녀가 쓴 소설 중 두 편을 남기고 탐닉하고 있다. 그러다가 그냥, 막 생각했다. 욕망의 찌끄러기일지라도 좀 되게 살고 싶어 하면 좀 어때? 자기 의지없이 태어난 삶이 아님에도 살고자하는 욕망이 생기는 아이러니좀 무시하면 어때?

자기의지 없이 사는 삶이 더 비참해 삶의 의지를 좀 다지는 나같은 사람은 자기의 의지가 결여된 죽음마저도 두려우니. 그렇다고 자기 의지대로 죽는다는 건 더 공포스럽다. 태어남도 죽음도 내 자발적 의지와는 무관하니 삶만이 오직, 조금은 주체적으로 나의 의지를 개입시킬 수 있으니 난좀 살아보련다. 기왕이면 더, 잘...내가 원해서 사는 삶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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