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에서 살아남기
-2018.08.30, 오타루-
늙을 걱정은 늙어서 하고 노후걱정은 노후가 되서 하기로 한다.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 모르는데 살 수 없을지도 모를 날을 걱정하느라 지금 살 수 있는 시간을 온갖 걱정으로 허비하고 싶지는 않다.
실은 없는 자의 걱정많은 삶에 지쳤다고나 할까? 다만 내일을 위한 마음가짐이랄까? 각오같은 것은 해둬야겠다. 그게 미래 대비라고 할 수 있으려나...많이 못 가져서 살지 못하는 것이 아니더라. 많이 갖지 못한 걸 원망하다보면 나를 죽이더라. 마흔까지도 없다 없다 하면서 잘만 살아왔다. 몸으로 뛰는 일을 꺼려하지 않았고 할 수 있는 일들은 열심히 해왔다. 그렇게 근근이 벌어서도 잘만 먹고, 잘도 놀고 살아왔다. 앞으로 몸져 눕기까지 벌러 다닐 힘이 있다면 푼푼이 벌어서 현재의 즐거움을 누리는 삶에 대해 한점도 두려워 않으려는 각오. 밑바닥까지 치는 한이 있어도 마음마저 죽이지 않을 다짐. 마흔까지 살아온 나만의 철학이 나의 노후대비.

나의 노후대비는 곧잘, 많이 가지지 못했다 여기는 삶에서 오는 근심걱정을 붙들어매고 기꺼이 삶을 즐기려는 마음과 정신, 또한 그것을 떠받드는 몸을 쉽게 잃지 않으려는 노력일지니 그것들을 가꾸고 다듬는 데 열중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사는 게 재미없다.’에서 ‘이게 사는 재미지.’ 말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러니 지금 이 순간도 나는 “사는 재미”로 산다. 사는 재미는 여러가지것들에서 연유한다. 지지고 볶아도 같이 있어서 든든한 가족도 그렇고 소박한 음식과 좋은 사람들의 만남, 좀 더 열린 생각의 물꼬가 되어주는 글귀나 그림들. 또한 나무나 바다만 봐도 풍요로워지는 내 개인적인 취향, 개취에서도 그렇다. 하코다테 선을 타고 삿포로에서 오타루로 향하노라면 오른쪽으로 푸른 바다가 드넓게 펼쳐진다. 사랑하는 아이들과 전철을 타고 바라보는 바다또한 내 개취에 적격이니 사는재미가 절정에 이르는 지점이다.

아이들과 미나미오타루에서 내려 오르골당을 향해 걷는다. 이국의 향취가 바다내음에 실려온다. 오르골당 앞의 증기시계를 바라보며넋을 놓고있다. 오타루 거리의 신선한 해물에 침을 흘리고 빛나는것처럼 보이는 커다란 성게가시를 보다고 영혼이 홀려 결국 홋카이도 해산명물 우니를 먹기로 하자 아이들이 나서서 해산물을 만져보겠다며 성화를 부린다. 든든한 여행의 동반자에서 세상없는 웬수가 되는 순간에 해산물 한접시로 다시, 상대가치의 화해를 이루게 된다. 걷는 일만이 육체의 노후대비라 여겨 걷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살 아이에게 좀 무리인 시점에 도달했다.

가까이에 마침, 인력거가 있다. 쿄토에서도 가마쿠라에서도 아이들이 타고 싶다고 했지만 그냥 지나쳤던 인력거. 그간 아껴야한다는 일념으로 마트 마감시간세일 음식에 집착했던 엄마는 아이들에게 탑승의 사치를 주겠노라 공표한다.
“인력거는 근대화 시기의 택시같은 거야. 도시에서 먼거리를 가야할 때 돈을 내고 타던 운송수단이지.”
“엄마, 우리 무거워서 못 타는 거 아냐?”
“인력거꾼이 끌지만 바뀌가 달려서 무거워도 이동할 수 있어. 우리나라에서는 일제 강점기에 인력거가 달리기 시작했어. 안타까운 역사이지만 지금의 일본 사람들을 다 미워할 수 없고 일본의 모든 것들을 다 부정할 수 없는 좀 복잡한 문제야.”

어찌 그 역사를 다 설명할 수 있을까? 아이와 이곳에 지내면서 수시로 부딪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나또한 애매한 감정과 복잡한 시선으로 이나라를 대하게된다. 거시적과 미시적 안목에서 휘청이고역사와 미래사이를 왔다갔다하며 전체와 개인에서 오락가락하고 있다. 꿈은 일본어 선생이고 인력거를 끌며 영어와 역사를 공부할 수 있게 되어 인력거 끄는 일이 즐겁다는 일본청년은 인력거 탑승 종착점과 금액 할인을 요구하는 한국인 아줌마와 흥정의 쇼부를 보고 난 후 ‘좋아요!”를 한국말로 외치며 출발한다.

“여기는 오타루 운하라고 해. 삿포로는 일본에서 세번째로 개항한 항구야, 근대화시기에 서양문물이 배로 들어왔고 그 배들이 싣고 온 온갖 문물들이 저기 보이는 커다란 창고들에 보관되었다가 작은배에 실려 운하를 통해 삿포로까지 보내질 수 있었어.”
내 말에 귀기울이지 않는 것 같은 아이는 건성으로 답하고 만다. 집중하지 않았다고 분필을 집어던지며 아이를 혼내지 않아도 되는 건 여행의 다행이랄까? 다양한 것들을 보고 듣고 배우고 나누기 위해 다니는 것이 여행이요, 여행을 하면서 아이를 다그치거나 등짝을 스매싱하지 않으며 대신에 나긋나긋한 어투로 말하고 못 알아들어도 인내하는 엄마 선생이 되려고 다니는 여행이라서 그 또한 다행이다.

여행과 다행이 있으니 사는 재미, 인력거에서 내려 교토와 도쿄에서도 자기네 인력거를 이용하면 할인받을 수 있다는 쿠폰을 선물하며 인력거 끄는 청년은 영수증을 써야 한다면 종이수첩을 꺼낸다. 그 종이에는 탑승시간과 탑승인원을 적는다. 그제야 알겠더라. 인력거를 타는 동안 곳곳에 인력거꾼들이 서있다가 손을 흔들며 저희들끼리 인사를 주고 받을 때도 이게 가맹점운영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말하자면 인력거를 몰고 현금으로 지불받고 그 현금 삥땅을 방지하기 위해 노동시간과 수익을 확인하는 체계아래 운영되는 가맹점같은 인력거와 인력거꾼. 이것이 이들을 살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이것이 이들 사회를 제압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과 자본, 체계와 감시.

오르골 판매점에 들어가 오르골 공연을 관람하는 행운을 만난다. 경주오르골 박물관 또한 이곳만큼 멋진 박물관이다. 타국에서 모국의 장점을 찾는다. 낯선 곳에 와서 자신을 발견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일까? 그렇다면 나는 오늘, 이곳에서 나의 장점을 생각한다. 문 밖을 나서는데 주저하지 않는 마음, 낯선곳에서 최대한 즐기려는 태도, 어쨌든 이렇게 살게 되었어도 기꺼이 견디려는 삶의 철학.
이리하여 삶은 참 다행인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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