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씹는 여행기
-[낯선땅에 홀리다], 김중혁의 [뭐라도 되겠지]

2011년 3월 11일을 잊을 수 없다. 현실에서 지옥은 어쩌면 그 말이었을까? 역사적 난제를 차치하고 이 지구상에서 인류가 겪는 참상이었기에 그랬다. 방관할 수 없는 문제였음에도 내 나라가 아니므로 내가 얼마나 무관심하게 잊고 살았는지 이 나라에 거처를 옮기고 나서야 깨달았다. 여행자의 신분이 아닌 거주자의 시선으로 장기간 숙려해야될 문제라고 자각하게 된 것은 까막눈에도 마트의 식자재 원산지표기를 해독한 날부터였다. 후쿠시마 산 오이. 이 곳에 있는동안 회피할 수 없는 문제이자 온 가족이 해결해야 할 문제였기에 방사능이라든지, 후쿠시마라든지 하는 단어들이 소비행동 내내 걸려 선택장애와 결정무력으로 이어졌다. 식재료의 원산지를 확인했고 그로인해 일본 각 현의 한자를 외우기 바빴다. 강박이 나를 옥죄고 가족들의 자유로운 음식섭취를 제한하자 일상의 중요한 욕구가 죄절되어갔다. 그것은 분명 한계가 있었고 개인이 극복해낼 수 있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음에도 개인으로서 탈출구는 이 나라를 떠나거나 그것으로부터 가장 멀리 도망치는 것외엔 달리 묘안이 없었다.
“남쪽으로 튀어!”

저들은 어떻게 이 상황을 버티고 있을까 궁금하여 오사카로부터 파견되어온 현지인들에게 넌즈시 물었더니 오사카는 괜찮다는 말을 할 뿐이었다. 물론 개인이 답을 낼 수 없는 문제를 들쑤셔 놓은 것같아 민밍한 마음에 식당근처 도로위를 차들이 지나갈 때마다 지진난 듯 흔들리는 목조건물 이층에서 모듬회를 비롯한 다양한 일본요리를 실컷먹고 마셨다. 건물이 흔들릴 때마다 “揺れる!흔들린다. 怖くない무섭지않아.”
흔들리는 일이 외부요인이고 그걸 개인들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개인은 내부에서 낙관의 위안을 찾으려 한다. 분명 그것이 문제에 대한 해답이 아닌 전혀 엉뚱한 한마디 말이라도 이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위안. 그 위안을 좀 더 매력적이게 할 수 있는 것은 위트! 농담처럼 우리는 계속 유레루, 유레루, 유레루는 무섭지 않아!! 껄껄껄. 오사카는 괜찮아, 무섭지 않아! 나 또한 나는 내부에서 수만가지 괜찮은 이유들을 찾아야할 것이다. 그러나 여행 며칠 후 괜찮은 위안을 찾았다.

남쪽으로의 여행은 그런 이유로 야심찼건만 여행 둘째날부터 시작된 배고픔은 식도락에 대한 로망을 불사르고 원망의 그을음을 남겼다. 하지만 이제는 걱정따위 붙들어매고 먹는 일에 괜찮아져야할 이유 하나. 여행 내내 우리가 보아온 자연. 이곳에 우리가 있고 둘러보면 여러사람들이 여행을 즐기고 있고 여기는 아름답고 또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나무들이 2011년 이후로도 계속하여 새순을 달고 있고 어여쁜 꽃들이 저의 모습 그대로 피어있고 2011년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이 여전히 까르륵 웃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 떠나지 못하고 백년이든 이백년이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밭을 갈고 모를 심고 배를 띄워 고기를 잡으며 오늘을 살고있다. 나만 유독 벌벌거리며 유난을 떠느라 지금, 여기를 놓치고 있구나.
이럴때는 어른들이 대대로 해 온 말이 진리라 믿어본다.
“야. 그냥 먹어. 그런 거 다 신경쓰느라 스트레스 받으면 그게 더 나쁘다.”

도야마(富山)로 향한다. 후쿠이(福井)를 지나며 인적드문 부두에 닿아 마트에서 사온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하며 생각한다.
“여행을 떠나서도 내리는 결론은 늘 똑같다. 그래,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 다 똑같은데, 왜 나는 어쩌자고 여기까지 날이와서 이 똑같은 걸 구경하고 똑같은 결론을 내리는 걸까. 문제는, 다음에도 똑같은 유혹에 빠진다는 것이다. 그래, 이번엔 뭔가 다를지 몰라.”김중혁-[낯선땅에 홀리다]
마을을 지나면 바다가 보이고 바다를 지나면 산이 나타난다. 익숙한 모습인데도 자세히 보려고 눈을 감지 않는다. 멀리서보면 비슷하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다르다. 뭉뚱그리면 여행은 대개 거기서 거기지만 순간순간을 놓치지 않으면 특별한 여행이 되는 것이다. 거시적인 안목하에서 미시적인 아름다움을 찾는 일, 그런 태도가 삶을 더욱 풍부하게 해준다. 많은 것을 모르고서도 살 수 있다. 하지만 좀 많은 것을 안다면 더 넓게 볼 수 있고 더 깊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여 떠나는 여행.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도로를 두어시간쯤 달렸을 때 가나자와(金沢) 이정표가 보인다. 인터넷검색에서 이름만 슬쩍보았던 가나자와. 급하게 이 곳을 검색해본다. 유네스코가 창설한 창조도시, 가나자와성, 21C미술관... 제 아무리 둘러볼 곳이 많다 하여도 비오는 날의 감성이 이 도시를 거쳐가도 좋겠다며 이끈다. 뭐라도 되겠지! 김중혁 작가의 책제목이다. 제목처럼 책 전체를 주관하는 것은 그의 자유로운 기질들.
“세상은 대략5억만개(너무적나?) 이상의 요소로 이뤄져 있으며 우리는 아주 작은 인간일뿐이다. 우리는 실패할 확률이 훨씬 높은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실패는 아주 작은 실패일 뿐이다. 스무살 때 그걸 알았더라면 좀 더 많은 실패를 해보았을 것이다. “

스무살보다 곱절은 늦었지만 그래도 스무살보다 더 많은 실패를 한다. 그럼에도 불행해지지 않는다. 너무나도 하찮은 미물이라 나의 실패는 작디작다. 실패를 두려워하니 않는 자라고 박박 우기고 싶지만 늙어서의 실패 가능성은 공포에 가깝다.
“내가 생각하기에 ‘재능’이란 (천재가 아닌 다음엔)누군가의 짐짝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나에 대한 배려없이 무작정 흐르는 시간을 견는 법을 배운 다음에 생겨나는 것 같다. 그래, 버티다보면 재능도 생기고,뭐라도 되겠지.”김중혁 작가의 지나친 낙관주의에 묻어가본다. 여행에서의 실패는 삶의 경험이 되는 법! 뭐라도 건지겠지.이런 즉흥으로 가나자와에서 스탑.

가보고싶은 곳은 많고 물질과 시간은 한정적이니 기회비용을 생각하여 최선의 선택을 하고싶다. 결국 인생은 어떤 것을 포기하는가의 문제라던 김중혁작가의 말대로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으며 21C미술관에서 하차했다. 여행에서 실패의 확률을 낮추기 위해 많은 걸 준비할 필요없다. 오로지 단 하나, 여행자의 마인드!!개똥밭에 있어도 이곳이 최고다! 여길 마음만 단단히 챙긴다. 그런 여행이라면 대개는 성공적이다. 좋았다는 유의미한 기억이 살아가면서 문득문득 되새겨볼 수 있는 즐거운 추억이 되어줄테니까. 최악의 여행은 내가 있는 곳을 불평하며 후회와 원망을 이어가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지금 좋은 곳에 왔고 이런 삶또한 좋아라! 삶을 좋아라 한 이들은 21C미술관에 더 많았다. 젊은 작가들의 아이디어 상품과 작품들. 그에 더해서 사람을 사랑한 작가, 에구치 전시회. 그외 가나자와의 많은 관광스폿은 포기하기로한다. 포기가 실패는 아니란 걸. 여행에서마저 포기는 지는 것이란 관념에 짓눌려 아득바득 여행을 망치고 싶지 않다. 여행지에서의 과감한 포기는 다음의 기회를 꿈꾸는 아쉬움을 남겨주나니.

미술관 관람의 호사를 누리니 오후 다섯시가 다되어간다. 서둘러야한다. 꼭 가보고 싶은 곳에 해 지기전에 당도하고싶다. 인생샷을 찍어야한다. 스마트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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