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씹는 여행기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처럼 이네 방랑-

이틀간의 여행은 사실 긴 장거리 여행의 주막격즈음 되었다. 여행을 계획하며 도착점으로 삼았던 곳은 단 두 곳. 이유는 단순했다. 남편 회사 콘도를 상당히 저렴하게 이용할수 있는 것. 숙박일정 또한 콘도 예약이 비어있을 경우에 한했기에 첫번째 목적지는 일요일부터 사흘간의 쿄토부의 미야즈(宮津),목요일부터 이틀간의 군마현의 구싸스(草津), 서두르지 않기로 했으니 빼곡한 일정도 없고 느긋하기로 했으니 뭔가를 얻어내야 한다는 압박도 없었다. 대비되지 않은 즉흥은 감상을 깊게 하지만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정유정 작가의 [히말라야 환상방항]이 멋진이유이기도 하다. 대책있는 방랑은 환상적인 여행이지만 충동적인 여행은 현실적 방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면에서 우린 만일의 사태에 대한 대안을 모색해야했지만 여행에서마저 대안을 세우느라 지치고 싶지 않았다. 정유정작가의 문장을 떠올린다.
“인생과 싸우는 대신 인생을 즐기는 방법을 택했을 것이다”
난 여행준비로 곯머리를 앓는대신 여행을 즐기는 방법을 택한 것이라 목소리 높인다. 여기가 히말라야 오지도 아니니 뭔 큰일이 나겠어? 여행은 환상방황으로 일단 첫발을 내딛기만 하면된다.

하지만 우리에겐 내일이 있었다. 일찍 일어나 마트에 가 신선한 식재료로 따끈한 아침식사를 즐길 내일. 아침 일곱시즈음 정신이 났다. 한쪽 벽면을 채운 유리창문으로 볕이 환하게 쏟아져서라기보다 아마 아침밥 문제 때문이었을 것이다. 눈을 뜨니 그야말로 눈 앞에는 온통 잔잔한 바다.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이토록 멋진 곳을 아무 준비도 못하고 내쳐 달려왔다니 남자에게도 바다에게도 교토에게도 살짝 미안했지만 뜻밖이기에 더욱 아름다운 교토부 바다. 해변길을 달리며 아침식사를 생각하기로 했다. 여행 셋째날까지 이런 식이다. 일단 가서 생각해보자! 모심기로 한창인 논 옆, 바로 바다가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그래, 이런 풍경이 펼쳐있다면 지금은 그저 감상에 빠지면 된다. 생계 대비는 그 다음 문제여도 된다. 라며 바닷가를 달리면서 나는 연신 감탄과 함께 “차 세워! 인생샷 건져야돼.” 주행중인 차를 갑자기 멈춘 것만도 대여섯번. 교토에 이런 멋진 바다가 있다는 것은 생애 처음. 좋네,좋아를 연신 불러대니 못 먹어도 고고!

좋네,좋아는 긍정의 에너지가 된 것일까? 달리다보니 한국의 어판장 비슷한 곳을 목격했다. 나는 또.대한의 모 항공사 갑질은 저리가라할 “차 세워”
역시나 아침 수산 시장이 작파하는 중이였다. 도매로 유통될 생선들이 분류되고 늦게 들어온 어선의 생선과 떨이로 남겨져 팔딱 거리는 참치나 오징어들. 인터넷 판매문구처럼 “ 이건 꼭 사야돼”
눈을 희번들거리며 군침을 흘리는 나의 기운과는 영 딴판인 갑오징어 두 마리를 골라 담는데 오징어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오징어 요리를 선호하지 않는 남편이 그간 굷게 된 게 저의 탓이라서 사죄하는 양 기운이 엄청 세어 보이는 다리 굵기가 엄지손가락만한 오징어도 한 마리 더 담아 계산했다. 3500엔이면 이만한 해산물치고저렴한 값이라며 입맛을 다시면 고고씽. 내가 좋아하는 것만 사서 먹나 살짝 눈치를 살폈지만 아이들도 좋아하니까 저녁에는 푸짐한 식사를 할 수 있겠다며 기승전 아침밥은 뭐 먹지? 룰루랄라 노래를 부르며 바닷가의 풍경을 감상했다.

그 때 멀리 해안선에 자리잡은 이네후나야(伊根の舟屋)! 미야즈시에 대한 정보는 없었지만 이네에 대해서는 살짝 검색을 해두었었다. 알면 보이나니, 검색을 하고 멋진 품평을 읽었으니 단번에 알아본 이네의 풍경. 그래서 다들 최고의 여행지를 찾고 실패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맛집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것이겠지. 생애 한번의 여행이라면 당연히 그래야할 것이다. 철저하게 알아보고 단단히 준비하여 실패와 후회의 가능성을 최대한 낮추기! 해서 검색의 방법을 쓰다보면 나란 인간은 넘쳐나는 정보들과 추천에 선택장애를 겪게 된다. 그리고 싸잡아 매도한다. 다 돈 들여야 누릴 수 있는 선택지들뿐이야. 그 과정이 길어지면 초반의 의욕과 의지는 사그라들고 막가파 선택으로 마무리하기를 여러번. 그 과정에 소요된 인터넷 검색시간이 아깝다. 그래서 차선으로 마련 된 ‘ 어딜가든 여유롭게, 무얼 선택하든 즐겁게’ 여행은 실패와 후회의 가능성을 낮추고 최고의 결정으로 행복함을 느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디에 있든, 어떻게 있든 잘 있기 위해 애썼을 때 더 고생의 의미가 더해져 더 값져지는 법이라며 나름 개취저격(개인취향저격) 여행론을 펼쳤다. 그러기까지 주로 내 인생의 여행 동반자가 되어야했던 남자와 수도없이 티격태격해야했지만 늦게나마 그 신조에 동의를 해준 동반자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이번 여행을 더없이 좋아라, 좋아라 해야한다.

남들이 못 가본 데를 가서도 아니고 그저 우리가 같이 있어서 좋아, 남들이 부러워할만해서도 아니고 내가 느끼기에 이토록 아름다워 좋아, 좋아라 말할 수 있는 이곳에, 지금 있을 수 있어 좋아. 그러니 어떻든 모두 좋을 수 밖에. 좋다라고 각인이 된 여행이야말로 여행의 참맛. 물론 여행이 아니어도 좋아. 어디라도 좋은 곳이 되려면 내가 있는 곳을 좋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내 삶의 의미가 되듯. 좋아라 노래를 흥얼거리며 2005년 중요 전통보존구역으로 지정되어 현재 200채가 선박주차장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 선실을 가진 후네야마을에 가닿기 전에 유람선과 선착장이 먼저 나타났다. 작은 아이덕분에 여러가지 탈 것들에 흥미를 가지게 된 우리 식구는 결국 카모메 5호에 올라탔다. 차 트렁크에는 좀 전에 산 오징어가 팔딱거리고 있을테고 아침도 거르고 시간은 오전 열한시가 가까워지고 있는데 예의 새우깡 한봉지를 사 들고서. 나로 말할 것같으면 내 입에 넣기 바쁜 과자를 갈매기에게 신나게 집어던져 줄 관용은 없다. 여직 살아오면서 갈매기나 비둘기에게 나의 먹을것을 먹이로 내어준 적이 없다. 진짜 내가 먹을 요량이었다. 그런데 우리의 배고픈 딸과 아이들. 남들은 열심히 갈매기와 갈매기를 잡으러 온 독수리에게 꽥꽥 소리를 질러대며 새우깡을 던져주는 쇼 시작전부터 지들 입에 새우깡을 털어넣었다. 심지어 한봉자 다 먹고 또 한봉지를 사들고 먹어댄다. 갈매기들이 얻어먹는 새우깡이 부러울 따름 입맛만 다시면서 이네후나야를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내 인생. 여기는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지 모른다. 여행이 아닌 그 어디에 내가 있다 하여도 오늘이라는 시간과 여기라는 공간은 늘, 생애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처음이라 최대로 설레고 마지막이라 최고로 소중하다. 하여 찰칵찰칵. 앞에서도 뒤에서도, 옆에서도 찰칵찰칵. 여기라서 좋고 오늘이라 좋고 어딜 보아도 좋고 어떻게 보아도 좋다. 유람시간 25분은 쏜살이다. 카모메 5호에서 내려 우린 또 그런다.
“ 이제 밥 먹어야지?”
“가다보면 밥집 나오겠지,”
식당은 두어군데 있었다. 주차장이 없었다. 현금도 없었다.(일본의 시골은 거의 대개가 현금사용) 현금인출기도 보이지 않았다. 또 무작정 가보기로 한다. 그러다보니 이네후나야 마을 진입. 바다 위에 지은 집이라지만 물결이 잔잔하여 집들도 모두 조용하다. 대문 앞에 나와 담소를 나누는 할머니 두어분을 제외하곤 마을에서는 큰소리가 나지 않았다. 되려 철없는 우리 애들만 꽥꽥. 마을을 소란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옛생활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살아내는 일은 여러가지 생각해 볼 주제들이 있다. 그들이 살아온 오랜 시간 속 이야기들, 말해지지 않고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나는 가장 궁금하다. 집집마다 어떤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 것 같고 또 이야기들을 섣불리 꺼내 달라고 재촉하고 싶지 않다. 그저 걸으면서 느껴본다. 분위기를 짐작하는 일 외엔 쉽게 평하지 않는 것만이 외지인의 예의이다. 그래서 옛모습을 간직한 거리를 걸어보려하는 것이다. 사실 전 날의 쿄토는 오랜 이야기의 정서를 만끽하기에는 외지인들의 엇갈리는 발들을 피하기에 분주했었다. 그러나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은 외지인인 나의 발자국이 민망할정도로 조용했고 또 외부의 것이 손타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곳에서는 뒷걸음치는 고양이 발자국처럼 떠나와야 할 것 같아서 머뭇머뭇 차의 머리를 돌렸다. 이쯤되면 또 당장의 끼니를 자각하게된다. 정오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