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씹는 여행기
_박민우의 [일만시간의 남미]버금가는 굶주림과 함께_
나고야에서 미소우동을 먹어야 했다. 철학도 신념도 배고픔이란 본능 앞에서는 책 속의 문장일 뿐이다. [일만시간의 남미]가 유독 연상되는 이유는 여행자들은 늘 배고프기 때문이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고 먹고 싶은 게 많아서 더 고프고 사먹을 돈이 넉넉치 않으니 더욱 배고픈 것이다. 그래서 박민우 작가는 늘 굶주린 일만시간의 남미여행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인가?
오후 두 시 즈음하여 수족관을 나서며 근처 우동집에서 끼니를 해결하자던 뭉뚱그린 계획 아닌 계획은 틀어졌다. 고속도로 진입전까지 식당같은 간판은 나타나지 않았다. 짐승같은 촉이 왔다. 장시간을 굶주릴 수 있겠구나! 편의점이라도 들러 주먹밥을 사자는 내 말에 남편은 고속도로 진입전에 골목을 한 바퀴 더 돌아 편의점을 찾았다. 배고픔에 나는 편의점 주먹밥을 쓸어담으려는 찰나 한국식 비빔밥 도시락이 보였다. 아이들 먹일 주먹밥 두 개를 더 집어들려는 순간에 남자는 내 뻗은 손을 접게 했다.
“이거, 다 먹을 수 있겠어?”
아무렴, 내 밥그릇 용량을 모르셔서 그러시나? 안 먹어서 못 먹나? 없어서 못먹지? 그러나 전날 히쯔마부시를 두고 벌어지던 미묘한 심리를 눈치 챈 나는 하릴없이 편의점의 주먹밥을 싹쓸이하려던 마음을 접어버렸다.
고속도로에 진입하면서 나고야의 대교를 건너고 있었고 저 멀리 수족관 근처에 있는 유원지의 대관람차가 아주 느리게 돌아가며 우리에게 밥도 제대로 못 먹고 가서 어짜노? 안타까워하는 엄마의 심정처럼 작별인사의 손을 흔들고 있었다. 드넓게 펼쳐진 바다의 모습도 콤비니 비빔밥앞에서는 식후경일뿐이었다. 물론 나의 비빔밥도 아이들의 식탐앞에서는 남의 밥일뿐이었다. 비즈니스 호텔의 조식이후 첫 끼니인지라 허기졌을 작은 아이가 삼키듯 먹기 시작했다. 플라스틱용기 바닥을 닥닥 긁고 나서야 작은 아이는 낮잠에 빠졌고 나는 후회에 빠졌다. 조식 때 나온 오니기리가 삼삼거리며 더 먹고 가지 왜그랬어? 핀잔을 주었다. 한 조각 더 먹을까 하다 커피나 한잔 더 마셔야지 하면 욕심을 버렸던 호텔의 오니기리. EBS 세계 아틀란타스에서 방송되었던 도쿄의 3대째 내려오는 료칸의 세계정상급 요리장인의 오반자이는 아니더라도 엇비슷한 교토음식으로 저녁식사를 하리라는 기대감으로 플라스틱 용기의 바닥 긁는 소리를멈췄다. 대략 두 시간 정도를 달라자 교토의 이정표가 보이기 시작했다. 배고픔 탓에 어디 갈까 고심하다 교토의 부엌이라 불리는 니시키 (錦市場)는 어떤지 슬며시 운을 띄웠다.
“지금쯤 거기 작파했을걸?”
그렇다. 시간은 벌써 오후 네 시 반을 넘어서고 있었다. 교토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산산히 부숴지는 순간, EBS 방송에서 봤던 빅마마님의 유바(ゆば),쯔게모노(つけもの) 탐방은 결국 방송시청으로 끝나고 말 듯한 낙담. 대신 기온(祇園)거리를 걸어보기로 했다. 걷는 동안 전세계의 다양한 관광객과 부딪힐까 피해 걸어야 했고 곳곳에서 셔터터지는 소리들과 함께 한국어도 자주 들려왔다. 우리가 근거지로 살고 있는 곳에는 한국인은 우리가족이 유일할 정도로 외국인 거주가 드문곳이라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한 국제정세와 역사적 문제도 있어 그로인한 트러블을 겪고 싶지 않아 주민들의 예절에서 크게 반하고 싶지않아 늘 쉬쉬, 조용히 다니느라 신경을 곤두세워 살아야했다. 나고야에서도 한국인들은 서너 가족들만 스치고 온 끝이라 교토의 수많은 인파 속에서 자연스레 목소리가 높아지게 됐다. 물론 배고픈 으르렁도 한몫했으려나? 음료수를 사마셔도 밥은 밥대로 들어갈 자리가 있는 법이다.
십몇년 전에 홀로 이 곳에 여행왔었던 남편 덕분에 청수사(清水でら)까지 걸어가 소원을 빌었다. 물론 소원은 맛있는 거 마니 먹고 싸우지 않고 오래오래 사는 것일수밖에 없었던 것은 오늘의 첫 끼니 후 일몰시간까지 밥다운 밥을 구경 못한 탓. 나두 신 앞에서까지 밥타령 안하고 싶었다. 밥타령 할 정도로 마르지도 못 먹고 살지도 않았다. 밥타령 그만해야 할 정도로 많이 먹고 살아 두둑하게 살도 찌어놨다. 허나 박민우 작가의 문장도 있지 않은가? 고생을 못해봐서 매사 시큰둥한 사람보다 부족과 결핍을 알아 매사 감사함을 느끼는 사람이 되겠다는...굶주림을 알았으니 밥의 소중함에 반응하여 끼니의 감사함을 깨닫게 된 것.....매사 여행하면 단연 식도락 여행이 으뜸이요, 호랑이가 아닌 이상, 유명인도 아니므로 먹는 게 남는 것뿐인 아줌마. 잘 먹고 잘 사는 소원을 빌자마자 서둘러 발걸음했다. 뉘엿뉘엿 해지는 시간,아름다운 교토에서 저녁을~근사하게 먹고 싶었지만 음, 역시 유명지의 비싼 물가! 마침 시기적절한 남자의 발언.
“회사사람이 그러는데 교토의 요리집은 수억을 싸들고 와도 처음오는 사람들은 안 받아준데.”
띵......무식하면 용감하고 정보가 없으면 당당해진다. 수억도 없이 배고픈 우리들이 갑자기 초라해졌다. 그냥 도시락이나 먹을까 옥신각신 네가 결정해로 서로 반목하다가 숙소로 향하면서 해결해보자며 다시 차에 올랐다. 두 끼를 가면서 해결하자고 했지만 결국 우리는 두 끼를 건너뛸 것같은 불갈함이 닥쳐오며 굶주린 짐승의 본능적인 신경질이 나올 것 같았다. 교토까지 와서 티격태격하고 싶지 않아 두시간 반을 침묵 속에 고속도로를 달렸다. 그리고 기대했다. 편의점의 주먹밥 정도는 먹을 수 있겠지? 그리고 계속 그리워했다. 아침에 든든하게 혹은 넘치게 먹어두지 않은 호텔의 주먹밥. 몇 년 전 박민우작가의 [일만시간동안의 남미]를 읽으며 낄낄대던 나는 박민우가 처절하게 외쳐대던 기아와 아사 상태를 직접체험하게 되었다. 인간이 그런 혼돈의 상태에 빠지게 되면 어디까지 바닥을 파게 되고 얼마나 타인과 외부요인을 탓하게 되는지 여행지에서 굶주려본 자들은 알 것이다. 심지어 여행의 근간과 존재의 원인까지 탓하게 된다. 괜히 왔어? 그냥 집에 있을 걸, 그러니까 내가 편의점 주먹밥 더 산다고 했지? 내 말을 들었어야지, 교토에서 왜 밥 안사주는 거야? 도착해서 두고보자. 등등
그러는 사이, 그럼에도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고 별들이 반짝이는 교토부의 미야즈(宮津)의 밤 하늘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숙소 앞이 바로 바다라는 것도 모른채 숙소로 들어가버렸다. 남편 손에는 시골의 구멍가게서 밤아홉시가 다 되서 별 것이 남지않아 선택의 여지없이 사온 햄 몇 조각과 컵라면,맥주 두 캔이 들려있었다. 모두 피곤했고 컵라면에는 손이 가지 않았으며 다음날 아침식사는 스스로 해먹어야 하는 회사콘도의 숙소였으니 꼬박 하루를 굶게 될 것은 자명했다. 우아한 휴식과 먹거리 천국은 모든 여행자의 로망 아니던가? 로망은 허망의 대체어가 되는 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