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씹는 여행기
-오쿠다히데오가 먹었다는 나고야의 히츠마부시는 아니더라도!-

“아타미나 시즈오카에서 하루 숙박할까?”
“나고야쯤은 어때?”
“그냥 금요일밤에 출발해 밤새 달려볼까?”
“......”
여러 의견들을 다 물리치고 결국 아이치현의 이츠노미야(一宮)에 숙박을 하기로 했다. 왜냐구? 그곳에 값싼 토요코인호텔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이유를 찾으려 하지만 결정적 계기는 한가지면 된다. 우리는 쿄토의 북쪽에 위치해있는 이네만(伊根)까지 가야했고 치바(千葉)현에서 자동차로 11시간을 달려야 갈 수 있는 거리라 쉬엄쉬엄하기로 했었다. 치바의 야치마타(八街)에서 후지요시다(富士吉田)를 경유해서 이츠노미야까지!
남들 다 가는 뻔한데 말고? 남들은 모르는 어떤곳!을 찾지만 결국 사람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 발길이 향하는 것은 사회적 본능인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이츠노미야는 너무 엉뚱했다. 남편의 항거는 단호했다. 거기에 제일 싼 토요코인 비즈니스호텔이 있었다고!!
서툰 일본어이기도 하며 검색을 지양하는 나는 남자를 따를 수밖에.
생뚱맞은 곳에 왔지만 식사만큼은 남들 다 먹는 것으로!! 게다가 명물이면 더 좋지 않을까? 넌즈시 남자의 심산을 건드려본다.
“숙소에 가면 저녁 여덟시는 될텐데, 저녁은 먹고 들어가야지 않겠어?”
사실 이번 여행의 컨셉은 ‘발길닿는대로, 마음가는대로’였다. 잠깐 발대고 오려고 몇시간을 검색하느라 가족들과 한마디도 못하고, 자동차안에 앉아 수시간을 보내다 발 닿자마자 되돌아오는 헛헛한 여행은 지양하자며 인터넷 검색은 최소한만 했었다. 어쨌든 일본 전국을 샅샅이 뒤져 다닐 수 없다면 우리가 당도하게 되는 곳에서 그곳의 정취를 제대로 느껴보자며 시작된 여정이었다.

그래서 더, 이츠노미야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도요타 공장이 있다는 것과 나고야 옆이라는 것외엔. 네시간여의 장거리 주행을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그나마 미니미 알프스라 불리는 장대한 산맥의 정경을 옆에두었기 때문이었다. 일본 남부쪽으로 내려올수록 산맥은 평야가 되고 지평선너머로 해는 지고 있었다. 더 어두워지기전에 저녁을 해결해야했다.
“오쿠다히데오는 [오,수다]에서 나고야의 히츠마부시가 그렇게 맛있다고 했는데 여기는 나고야 근처니까 히츠마부시정도 먹어줘야지 않을까?”
“히츠마부시(ひつまぶし)?”
“세가지 방법으로 먹는 덮밥이래. 처음엔 장어의 본맛을 느끼고 두번째는 밥,고명과 함께, 마지막에는 오차쯔게(お茶漬け)로 장어맛을 즐기는거래”
“이츠노미야에서 히츠마부시?”

결국 구글 도움을 받아야했다. 다 필요없고 너무 비싸다. 맛집도 몇 개 검색도 안될뿐더러 그닥 좋아하지 않는 요리였다. 장어하면 아산인주라고 하던데 인주가 시댁인 나는 결혼해서 십이년동안 장어는 딱 두 번 먹었다. 스테미너음식이라지만 장어가 음식이 되기전의 생물일 때 그 형상이 과연 뱀과 흡사하여 손이가지 않았던 것이다. 오쿠다히데오의 과찬을 읽지 않았다면 관심도 없었을 장어덮밥. 몇 주전 나리타 길거리 축제에서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있기에 들여다보았더니 장어구이집이었다. 음식점의 쉐프장인쯤 되는 남자 두엇이 음식점 앞에서 장어껍질을 벗겨내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장어를 꼬치에 꽂는 모습을 보면서 아무리 비싸고 좋은 음식일지언정 나와는 상관없는 음식이라며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났던 기억을 애써 억누르며 허기를 채우기 위해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식당으로 향했다.

“무얼 먹을까?”
전 인류의 궁극의 질문이자 영원한 숙제! 무얼 먹을까? 나는 나의 기호와 별개로 오직 남편을 위해 장어덮밥을 주문했다. 즉,남자를 위해 내 인생의 세번째 장어요리를 1인분 주문. 나는 회정식을 먹을 심산이었다. 그런데 이남자, 내가 장어를 먹고싶어하는 줄 알았는지 내 앞에 히츠마부시를 밀어놓는다. 괜히 3100엔이나 하는 장어덮밥을 시켰나 내 마음이 남편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남자는 정작 튀김과 절임류 몇 가지만 젓가락질할 뿐이었다. 내가 스테미너에 환장한 여자처럼 보일까 싶으니 갑자기 욱하고 뭔가가 올라왔다. 남자 입에 억지로 장어를 밀어 넣어주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시큰둥하게 받아 먹을 뿐이다. 어차피 쓸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먹어둬야하지 않겠느냐며 몇 조각 억지로 먹이는데 아이들이 더 맛있다며 입맛을 다신다. “어른먼저!” 괜히 가부장적인 엄마처럼 굴었다. 실은 나만 비싸고 영양가좋은 음식에 탐닉하는 여자로 보일 것 같아 남편 들으라고 한말이었다. 이 남자, 좀 맛있게 먹어주면 안되나? 순전히 검색이 구찮아 가장 눈에 띄었던 식당으로 들어온 것인데, 좀 더 검색을 해볼걸 그랬나?

이런저런 생각에 내 심산만 삐뚤어지고 있을 때, 많지 않았던, 구글검색에서 별을 세 개나 받았던 식당의 주인은 3인분만 시켜 1인에서 제외된 작은아이의 먹성에 놀라며 오렌지주스와 공기밥과 아이스크림을 서비스라며 연신 가져다 주고 있었다. 이 식당, 왜 이렇게 인심이 후하지? 히츠마부시맛보다는 좀체 일본에서는 찾아 보기 드문 한국식당에서와 같은 덤서비스에 더욱 놀랄뿐이었다. 심드렁했던 이 식당의 맛은 배고픔의 연속이었던 여행에서 가장 오이시한 식사가 될 줄 누가 알았던가? 과연, 시장이 최고의 반찬이라는 진리를 문장으로 만들어낸 선인들이게 경의를 표한다.

우리는 몰랐다. 이날의 식사가 일주일 여행의 처음이자 마지막 성찬이 될 줄은...... 음식하면 남도쪽 맛이 제일이라는데 일본도 그렇지 않을까싶어 대식가의 식도락여행을 고대했던 우리는 아침은 거르고 점심은 4인이 2인분 패스트음식으로 대체하고 저녁은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식당에서 나고야도 아닌 이곳에서 히츠마부시를 즐기고 있었다. 낼은 나고야의 미소우동을 먹고 쿄토에서는 맛집을 찾아다니며 남도음식탐방을 하며 배부르다를 외칠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식당을 나서는데 허기져서 들어서느라 몰랐던 입구 앞에는 남북정상회담을 대문짝만하게 찍어낸 신문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의 식사와 기사가 어쩐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 남자와 나란 여자는 어느날 저렇게 두 손 맞잡고 화해해야할 날이 찾아올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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