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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줄리언 반스,『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최세희 옮김, 다산책방, 2012.
문학상이 책에 드리우는 아우라는 참으로 대단한 것이다. 그것은 수상작을 매혹적으로 만드는 동시에 소설의 파악을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고양 원더스의 감독인 김성근은 직접 본 선수만을 판단하지 다른 이의 평은 듣지 않는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같은 맥락으로 말을 이어보자면, 문학상 수상이라는 아우라는 소설 자체가 지닌 의미나 힘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만드는 장애요소가 되기도 한다(그렇기 때문에 더 자세히 봐야할 필요가 생긴다).
이언 매큐언의『암스테르담』, 아룬다티 로이의『작은 것들의 신』 등을 통해 맨부커 상 수상작들은 내게 좋은 인상을 주었었다. 생각해 보니,『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사 년 전에『플로베르의 앵무새』를 읽은 뒤로 처음 읽는 반스의 작품이다.
『플로베르의 앵무새』를 읽은 뒤 남은 생각은 그것이 좋은 소설이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적은 독자를 대상으로 쓴 소설이라는 인상이며, 잘 쓴 작품이긴 하지만 내 취향과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기억들을 떠올리며『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펴들었다.
우선, 원제인『The sense of an ending』를 고친 결정에 대해 언급하고 싶다. 이 결정은 어리석었다. 원제가 지닌 의미심장함을 한국어판 제목은 5할도 지니지 못했다. 차라리 ‘종말의 예감’ 정도로 바꾸었으면 어땠을까. 이 제목이 소설의 마지막 대목에서 이는 페이소스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말이 나온 김에, 단점부터 짚고 넘어가자. 이 소설은 지루하다. 독서에 있어 ‘지루함’의 면모는 다양하다. 담 너머로 책을 내던지고 싶을 정도의 지루함이 있고, 일부 대목이 늘어지기도 하며, 어떤 인물이 등장하는 대목마다 여지없이 따분하기도 하다. 각각의 다른 요인들로 인해 다양한 지루함이 드러나는 건데,『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지루함은 일부분에 한정되어 있다. 서술자인 토니 웹스터가 자신의 단조로우면서도 단선적인 자아를 드러내는 서술에서 지루함이 도드라지곤 한다.
나이든 토니 웹스터는 자기 본위적인 인물로 자신의 과거사에 대해 불완전한 기억을 지닌 인물이다. 소설의 많은 부분이 토니의 회상을 통해 이뤄지는데, 이 부분은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면서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사건이 뒤죽박죽이 되거나 서술이 꼬여있진 않다(나는 한 명의 서술자를 세워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소설이 정교하지 못할 때 벌어지는 참사를 너무나 많이 봐왔다). 회상이 사건 발생 순서에 따라 순차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과 말끔하게 정리된 문장이 독자의 서술 이해를 잘 돕고 있다는 점은 엉뚱한 사고(私考) 단계로 흘러가버리는 토니의 습성을 참아내게끔 만든다.
지루해지는 대목들은 토니가 벌어지고 있는 주된 사건과 동떨어진 장황한 서술을 선보일 때 빚어지곤 했다. 글쎄, 두 번째 읽으면 그것들이 지닌 좀 더 분명한 의미를 파악하게 될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처음 읽었을 때 그것들은 여지없이 지루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일견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던 서술들이, 치밀한 복선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게 이 소설이 지닌 최대의 장점이다. 충격적인 결말을 예비해놓은 줄리언 반스는 그 곳에 이르는 길목들에 수많은 단서들을 설치해놓았고, 그것을 엷은 모래로 덮어버렸다. 이 장점에 준하는 또 다른 장점이 이 대목에서 발현된다. 충격적인 결말로 치닫도록 독자의 호기심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키는 소재들의 사용을 줄리언 반스는 탁월하게 해낸다. 서술자인 토니가 회상해내는 지난날의 과오들, 그가 보냈던 편지, 그에게 남겨진 에이드리언의 일기장과 포드 부인이 남겼다는 유산. 중대하지만 소소하게 보이도록 가공된 단서들은 책의 결말에 이르러 놀라운 복선으로 작용한다. 의미를 파악하지 못해 심드렁한 표정으로 읽어 넘기고 있던 단조로운 서술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놀라운 연결점들을 만들어내어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복선들은 결말에 이르러 놀라운 폭발을 일으킨다. 그것이 일으킨 불꽃이 성대했음을 굳이 부연할 필요는 없으리라. 셰익스피어가 말했듯이, 끝이 좋으면 모든 게 좋은 법이다.
이 대목부터는 스포일링이 포함될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서술을 다시 한 번 읽으며, 나는 토니가 자신의 어리석음과 단순함 때문에 에이드리언이 맞은 파국을 피했다는 생각을 했다. 이 어리석음과 단순함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이 줄리언 반스가 구사한 서술을 가능케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어리석음이 돌연한 깨달음을 맞으며 파국은 가장자리로 밀려 나아간다.
어쩌면 이것은 ‘예감’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논했던 역사와 문학과 동급생의 자살은 진중한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흩어놓은 의미들을 집중시키는 작가의 솜씨는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읽어보길 바란다. 작품이 걸맞은 품격을 지닐 때, 상이 드리운 고고함이 한껏 빛날 수 있음을 당신이 직접 확인하기를 나는 바라고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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