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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목소리가 들려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김영하,『너의 목소리가 들려』, 문학동네, 2012.
어떤 소설이 독후감 쓰기에 좋지 않을까. 기준점 잡기 어려운 소설의 독후감을 쓰기는 까다롭다. 규정짓기 어려울 때, 소설분석은 난관에 봉착한다. 재미없거나 일정한 관념들만 흘러가는 소설도 평하기가 쉽지 않다. 못 쓴 소설은 되레 쉽다. 흠을 잡으면서 이것저것을 따지다보면 분량이 어느 정도 채워지기 때문이다.
김영하의 신작『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위의 기준 모두에 해당하지 않는다.
일정한 결론으로부터 본론을 시작하도록 하자. 나는 이 소설이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장편소설의 서두에는 대개 소설 전체의 주제나 주요 사건과 긴밀히 엮이는 어떤 무엇이 있기 마련이다. 마술사는 소년을 공중에 올리고 토막 난 소년의 피에 젖은 신체는 무대에 마구 떨어진다. 잠시 후 마술사가 시체를 검은 막으로 감싸고 토막 났던 소년은 멀쩡하게 관객 앞에 몸을 드러낸다. 소년은 죽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어쩌면 마술사는 소년을 실제로 죽이고 되살려냈던 걸지도 모른다. 추락만이 당연한 귀결이었을 시점에 제이는 날아올랐다고 소년들은 증언한다. 제이는 죽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어쩌면 제이는 죽지 않고 정말로 빛을 타고 하늘 너머로 날아가 버렸던 걸지도 모른다.
이 소설의 프롤로그는 제이의 죽음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한 작가의 지침이다. 제이의 죽음이 어떤 진실을 가지고 있는가와 관계없이 김영하는 마술을, 트릭이 아닌 진정한 환상을 제공하는 영원한 꿈을 서술을 통해 풀어낸다.
소설의 처음, 매끄럽게 열리는 한 겹의 막. 소녀는 화장실에서 아이를 낳고 살해당할 뻔한 아기는 우연히 길러진다. 아기의 등뼈에서 느껴지는 도드라진 뼈와 그것이 암시하는 상징물로 인해 독자의 호기심을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김영하는 아이를 들인 돼지엄마의 가슴에서 젖이 난다는 서술을 통해 메마르고 뻣뻣하기만 서울이라는 도시에 자리잡은 환상의 씨앗을 움트게 만든다. 그리고 이어지는 힌트. 제이라는 소년이 가졌다고 믿어지는 특별한 힘과 그를 통해 제이가 느끼는 고통들. 소년은 사물이 말하지 않는 것들을 듣는다. 예민한 아이는 귀가 아닌 가슴으로 듣는 듯하다. 하나의 물체와 또 다른 하나의 물체가 마주 섰을 때, 그 둘 사이에서 일정한 진동이 울려 둘이 같은 떨림을 갖게 될 때, 우리는 그것을 공명(共鳴)이라 부른다. 이러한 ‘같은 떨림’이 제이의 내부를 두들기도 있는 것이다. 소년은 술 상자 위에서 추락한다. 아주 오래전, 미쓰꼬시 백화점 옥상에서 마구 펄럭이는 딕셔내리의 페이지들을 느꼈던 어느 시인처럼 겨드랑이 언저리를 매만지며.
이 감상문을 통해 제이의 삶 전체를 요약할 필요는 없으리라. 우리는 자신의 비참한 삶과 다른 존재들의 내면-불에 그슬려 결국은 천천히 쪼개지고 말-의 목소리를 듣던 소년이 자신을 어디로 내던져졌는지를 살펴야 한다. 질주하는 오토바이는 수평인 도로 위에 아슬아슬한 직각을 이루고 있다. 다른 도로로 옮겨갈 때마다 오토바이는 위태로이 기울어진다. 달리지 않으면 오토바이는 도로 위에 온전히 설 수 없다. 오토바이를 탄다는 건 자신을 주체할 수 없는 경계까지 내던지겠다는 선언이자, 온전히 설 수 없는 자아를 지닌 자의 내밀한 고백이기도 하다. 이런 시인들을 이끄는 제이는 그들의 내면이 어디로 질주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그는 듣는 자, 공명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목소리는 마후라 뗀 오토바이의 굉음처럼 우렁차다. 도처에서 몰려든 그 소리들이 한강 다리를 지나 강남 도심에까지 차가운 밤공기를 떠르르 울리며 나아갈 때, 귀 막은 세상은 얼굴을 찌푸린다. 그리고 장발의 소년은, 너저분한 인생을 영위하는 막장 인생들을 폭주로 이끌어 그들 자신을 분출구로 쏘아 보내게 만든 제이는 경찰 저지선 너머에 펼쳐진 너른 하늘로 날아오른다. 오토바이를 타고 전국에서 몰려온 청소년들에게 제이는 선망의 대상이자 강렬한 카리스마의 소유자로 여겨졌다. 나는 그 이유를 제이가 지녔던 그 능력, 공명하고 상대의 내면을 읽어내어 공명하는 힘에서 찾는다. 추락한 건, 혹은 날아올라 영영 사라지고 만 건 제이가 아니라 그들의 공명판이었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되울려줄 대상을 잃은 그들은 더 이상 대폭주를 계속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흩어지고 만다.
이렇게 끝날 것 같던 소설은 또 다른 화자가 등장하면서 국면이 전환된다. 그리고 인물들이 지녔던 측면들이 새로이 부각된다. 마술적 요소가 첨가된 도시의 신화(神話)는 작가인 ‘나’를 통해 교묘하게 봉합된다. 김영하가 마지막에 이런 부분을 보강해 서사 구조를 탄탄하게 만들고 인물을 복합적으로 만들어내는 솜씨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자칫 밋밋한 세태 소설에 그칠 뻔한 이 소설이 마지막에 등장한 화자에 의해 구원받은 셈이다. 진 선생님이라는 인물이 보낸 편지는 무척 중요하다. 아이들의 뒤틀린 세계에서 떨어져 나온 제이가 폭주족이 되기 직전까지의 공백이 이를 통해 보강되고 있다. 쉴 공간과 욕구들의 충족을 공급받은 제이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신을 도운 여인에게 보답하려 든다. 보답의 방식이 뒤틀려 있는 건 제이의 미숙함을 드러내는 동시에, 제이의 지난 경험이 소년의 내면을 어떻게 뒤틀리게 만들었는지를 알려준다. 잘라내어 버려야 할 가슴을 사이에 둔 채, 여인과 소년은 다시 한 번 이 소설의 주제를 되새기게 만든다. 마주 선 두 존재는 무엇을 통해 공명하는가.
승태라는 인물이 충분히 활용되지 못한 점, 1부에서 3부까지의 화자인 동규가 지나치게 전지적인 서술을 하고 있다는 점, 3부 마지막의 동규의 증오가 좀 더 많은 설득력을 지녀야 했다는 점을 나는『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단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한계선이 아닌, 일종의 납득지점이다. 작가가 구축해놓은 경계가 아닌, 독자가 재구성하며 받아들인 이야기의 어긋난 표면들이 만들어내는 일종의 요령부득은 두 번째의 독서를 통해 더 큰 용납을 끌어낼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 글을 마치는 지금, 이야기의 조각들은 아직도 나의 내면을 가로지르고 있다. 우르르, 천둥 같은 떨림을 뿜으며 이야기들은 내 마음에 수많은 공명과 간섭을 일으킨다. 언젠가『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다시 집어 드는 날, 이 성난 엔진소리는 잦아들 것인가, 높아질 것인가.
두 번째 독서를 통해 투영될 또 다른 목소리를, 나는 이미 기대하는지도 모른다. (*)
사진을 포함한 리뷰는 http://blog.naver.com/anssjaj를 통해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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