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라
토니 모리슨 지음, 김애주 옮김 / 들녘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술라』, 토니 모리슨, 김애주 옮김, 들녘, 2005.

 

  표지를 통해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는 책들은 보통 서사구조가 복잡한 편이다. 술라도 그러하다. 노란색 표지가 무척이나 깔끔하다. 책을 읽기 전에 이 표지를 본  나는 왜인지 모르게 물어 던져진 모세를 떠올렸었다.

 

  2009년 6월에 읽고, 이번에 두 번째로 읽는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진정한 독서는 재독을 통해 이뤄진다는 말을 했다. 이 말에 십분 동의한다. 특히나 포크너 스타일의 작품들은 재독하지 않으면 그것에 담긴 진가를 충분히 맛보기 어렵다.

 

  이 소설『술라』를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건너뛰기와 눙침, 암시와 복선이 복잡하게 깔린『술라』는 강렬한 인물인 ‘술라’를 통해 인간 내부의 악, 악의 밑바닥에 고인 어떠한 바람, 동경을 담아내고 있다. 제 손으로 어머니를 불태워 죽이는 술라와 마약에 찌든 아들을 죽인 술라의 할머니 에바. 회전하는 운명의 틀, 그 속에서 이는 먹먹한 비명. 후반에 새로운 해석의 틀을 제공됨으로써 서술의 복잡성은 한층 더해진다. 술라를 바라보는 입장에 있던 넬은 과연 죄가 없는가? 넬을 향한 에바의 단죄는 과연 정상적인 정신 상태에서 유발된 것인가?

 

  각 장(Chapter)은 숫자가 아닌 연도로 나온다.

 

  이 소설은 아웃라인의 중요성을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재고할 만하다. 생각건대, 토니 모리슨은 인물들에 대한 매우 길고도 상세한 구성안을 작성했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인물들 간의 갖춰진 구성 요소 안에서 주제를 일깨울 만한 대립요소들을 들추어냈을 것으로 짐작된다. 나는『술라』를 통해 소설 작법의 한 요소를 -짐작을 통해- 배운 셈이다.

 

  어디선가 지적했던 것 같은데, 토니 모리슨은 코맥 매카시와 더불어 진정한 윌리엄 포크너의 계승자라 할 만하다(떠드는 곳이 한두 곳이 아니니, 어디에서 그랬는지 기억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사건의 개요를 온전히 파악하고 장악한 뒤에 사건의 순서와 인물의 등장 시점들을 올이 풀려나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그러나 미묘한 복잡성을 은연히 살려나가면서 서술을 강화시켜나가는 방식은, 이를 통해 독자의 궁금증을 서서히 유발시키고 나아가 독자의 혼란을 서술의 소화와 더불어 찬찬히 잦아들게 만드는 방식으로는 토니 모리슨을 따라갈 작가는 몇 없는 것 같다.

 

  1937년을 여는 저 첫 문장은 대단히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보자.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 방법으로 여러 가지 논점들을 추려냈다 하더라도, 이러한 기술들을 실질적으로 적용시키고 능숙하게 사용하기에는 무수한 노력이 배인 시간들이 필요할 것이다. 이 책은 복잡하다. 남부의 흑인 사회와 아프리카 토속 종교의 향이 물씬 풍기는 독특한 기독신앙체계, 척박한 삶 속에서 자연스레 지게 된 흑인 여성들의 냉담함과 단호함, 시대적 상황 등을 확실하게 이해하지 않은 채 이 책을 읽을 순 없을 것이다(서사 확보부터 어려움을 느낄 게 분명하다). 나는 이 책『술라』가 이러한 까다로움을 모두 해소하면서까지 읽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술라라는 매우 강렬하고 독특한 악인의 세계를 맛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어야 하리라. 왜 그녀는 어머니에게 불을 질렀을까. 무엇이 그녀의 내부에 존재하던 따뜻한 감성을 질식시켰나. 그녀의 돌 같은 냉소 너머에 깃든 건 무엇이었을까.

한 가지,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은 터널을 부수면서 물에 휩쓸려 죽는 메달리온 사람들에 대한 지점이었다. 이 부분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걸까. 크고 작음과 상관없이 악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징계 받아야 할 일이라는 관점을 작가는 드러낸 걸까. 어쩌면 백인들의 변덕에 의해 정해진 오랜 자리를 다시 백인들에 의해 빼앗기게 된 상황에 흑인들이 느낀 분노를 하나의 처절한 몰락으로 드러낸 걸까. 왜 그들은 샤드렉의 종소리를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는가. 그들이 소설 초반에 느꼈던 감정이 정 반대의 양상을 띠게 된 것에 대한 근거가 부족하게 설명되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어쩌면 이러한 이해부족의 너비가 아프로-아메리칸에 대한 내 몰이해의 정도이리라.

 

  어쩌면, 거기에『술라』를 세 번째로 읽어야 할 이유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

 

보다 많은 정보가 http://blog.naver.com/anssjaj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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