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의 여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5
아베 코보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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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의 여자』, 아베 코보, 김난주 옮김, 민음사, 2001.

 

  결국 남자는 탈출했을까. 아베 코보가 소설 맨 뒤에 실종신고최고장과 판결문을 덧붙인 것은, 그리고 판결문의 날짜를 10월로 한 것은 대단히 교묘했다. 그렇게 기술함으로서 아베 코보는 독자에게 남자가 영영 실종 상태에 머물렀다는 마침을 남기면서도, 그가 서술되지 않은 영역에서 끝내 탈출했을지 모른다는 상상을 남길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책 맨 뒤에 수록된 실종 신고 최고장과 판결문. 소설의 결말을 갈음하는 또 하나의 방식.

 

  나는『모래의 여자』를 읽으며 카프카를 떠올렸다. 한 남자가 낯선 곳에 와서 매우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역사적인 상황에 대한 교묘한 비유, 각각의 소재들이 지니는 메타포 등은 카프카를 근원으로 하는 또 다른 갈래라는 문학적 지위를 이 소설이 충분히 획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하지만 이 소설이 카프카에게 빚을 지고 있고, 그의 세계관과 흡사한 연원을 가진 건 분명해 보인다).

 

  작품 자체로 좀 더 들어가 보자. 결국, 이 작품은 전후 일본 사회에 대한 풍자이자, 전쟁을 일으킨 일본에 대한 고찰의 결과이기도 하다. 모래구덩이 속에 살면서 감시상태에서 모래를 파고, 여자 혹은 음식 그리고 물 따위의 배급을 받고, 그저 연명하는 삶은 전쟁 중의 일본, 나아가서는 인류의 생존 그 자체에 대한 강한 풍자이다. 구덩이는 스스로의 운신을 제약하지만, 외부의 침략을 막아내기도 한다. 이 구덩이에서 토치카를 연상해내야 작가가 드러내고자 했던 의도를 제대로 읽어낼 수 있게 된다.

 

 『모래의 여자』에서 구덩이 밖의 사람들과 감시망루는『1984』에서의 삼엄함을 떠올리게 한다. 이와 같은 감시체제가 전체주의와 군국주의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나는 소설이 가려진 진실을 찌르는 힘을 지녔음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사물의 이면을 꿰뚫어 진실을 끌어내는 작가의 힘을 통해, 문학은 스스로 몸을 드리움으로 우리의 세계를 비추어 자신을 향유하는 자들에게 세계를, 꿈을, 감흥을, 무엇보다도 새로운 시각을 준다. 그렇다. 이 지점에서 문학은 위대해지는 것이다.

 

표지 그림이 인상적이다. 니콜라스 드 스타엘이 그린 <누워 있는 여자>라고 한다.

 

 『모래의 여자』에서 천연덕스러운 마을 사람들의 언행은 양념처럼 등장하지만, 그들 또한『1984』의 ‘당’ 이상으로 매우 잔인하다. 그들은 전체 공동체를 위해 사람들을 잡아 가두고, 간청하는 ‘그’에게 여자와의 성행위를 해보라고 희롱할 정도로 잔혹하다. 그 잔혹함이 뭉툭하게 드러났을 때, 그 전에 느꼈던 천연덕스러움은 의뭉스러움과 능글거림으로 변질되어 간다. 시스템을 유지하는 자들, 감시하고, 배급하는 자들, 전체주의적인 자들의 행태를 아베 코보는 위에 기술한 메타포들을 통해 꼬집어나간다.

 

  사이렌과 배급은 전체주의 국가인 일본의 피라미드적인 사회 구조를 꼬집은 것이고, 이장의 능글맞은 모습과 소설 막바지에 성행위를 충동질한 마을 주민의 모습은 대의를 위한 태평양전쟁이라는 허울 아래에 놓인 진짜 인본인의 불관용을 비꼰 것으로 보인다. 억지스러운 상황에서 말도 안 되는 전쟁을 치른 그들은 ‘나’의 말대로 “결국 무너지고 말 것들을 필사적으로 지탱하려는” 사람들일 뿐이다. 이것은 작가 아베 코보가 그들이 치른 ‘천황의 성전’에 대한 입장이기도 하다.

 

  서술자의 위치에 대해 언급하며 글을 맺고 싶다. 읽는 내내 불편했다.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이뤄지는 이 글에서 때로 1인칭 시점이 마구 튀어나온다. 그러다가 갑자기 전지적 시점에서 남자의 상황을 군담소설처럼 마구 질타하는 매우 직접적인 서술이 나온다. 이 모든 것들은 실로 모래 마냥 마구 쏟아진다. 그리고 소용돌이를 이루며 소설 속에 마구 녹아든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소설의 이해가 매우 달라질 수도 있겠다. 나는 이를 통해 작가의 소설쓰기의 근원이 고전소설에 치우친 건 아니었나하고 짐작했다. 서술자의 자유로운 위치는 포스트 모더니즘적 글쓰기의 특징이지만, 역시나 고소설의 방식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저 내키는 대로 쓴 것일지도 모르지만.

 

  문장의 시제가 통일성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인상을 준다. 과거와 현재가 들락날락거린다.

 

  독후감을 쓰면서 내린 결론은 작가의 소설 공부의 근간이 고소설에 머무르지 않았나 하는 것인데, 이러한 분석은 문학적으로 일관성 있게 작가의 위치가 드나든 게 아니라는 것에서 원인을 둔다. 그러나 이 같은 서술자의 위치 혼동 혹은 위치 이탈이 독서를 망칠 정도의 요소가 아닌 것 또한 사실이다.(*)

 

더 많은 감상평들이 http://blog.naver.com/anssjaj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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