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과 김구 세트 - 전7권 이승만과 김구
손세일 지음 / 조선뉴스프레스 / 2015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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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박 한달을 걸려서 읽은 책이다. 총 5천여 페이지에 달하는 다큐멘터리이지만 책의 내용이 흥미진진하여 전혀 지루한 줄 모르고 읽었다. 이렇게 훌륭한 책을 쓰신 손세일님과 책을 펴내주신 조선뉴스프레스에 감사한다.

   첵 제목은 <이승만과 김구>라고 되어 있지만, 이 책은 이승만에 60%, 김구에 40% 정도의 비중을 두어 우리 민족의 두 영웅을 소개하고 있다.

   내가 이 책을 훌륭하다고 평하는 이유는 책의 거의 전부를 기록물(편지, 보관문서, 증언 등)에 근거하여 집필하였다는 데에 있다. 다시 말해, 저자의 개인적인 생각을 최대한 자제한 것이 이 책의 장점이라는 말이다.

   한마디로 이 책은' 기적'을 기록한 책이다. 조선왕조가 다 망한 상태에서, 그 무지몽매한 백성들을 계몽하며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마침내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 대한민국을 건국하였다는 사실은 정말로 기적이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수 없다고 하겠다.    

   1권에서는 이승만이 한학을 배우며 과거에 도전하여 실패한 이야기와 배재학당에 입학하여 신식학문을 접하는 이야기, 매일신문을 창간하면서 언론인으로 첫발을 디디는 이야기, 만민공동회에서의 활동과 왕정전복혐의로 한성감옥에 갇히고 그곳에서 기독교를 접하게 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김구의 이야기는 동학군으로 가담하여 해주성을 공략하며 해주의 명문가인 안중근의 부친 안태훈과의 인연이 소개된다. 또한 해주 치하포에서 변복한 일본 상인을 살해한 이야기, 그 후 인천감옥에 갇히게 되는 이야기, 탈옥하여 공주 등지를 방랑하는 이야기 등이 실려 있다.

    2권에서는 이승만이 고종의 밀서를 가지고 미국으로 건너가서 국무장관과 대통령을 만나는 이야기, 미국까지 따라온 외아들 태산의 죽음 이야기, 일본 YMCA를 방문하여 한국 유학생들에게 기독교정신과 독립정신을 강조하는 이승만의 모습, 하와이 한인사회에 한인학교를 설립하고 새로운 기풍을 조성해 나가는 이야기 등이 실려 있다. 아무런 직함도 없는 31살의 청년이 고종의 밀서를 가지고 미국 국무장관과 대통령을 만났다는 사실만 해도 엄청난 일이다. 그러나 을사조약을 무력화해 달라는 고종의 요청은 애당초 성사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극도로 친일파였던 루스벨트 대통령의 발언들을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나는 일본이 한국을 손에 넣는 것을 보고 싶다. 일본은 러시아에 대한 견제가 될 것이고...”(2p186) 한편 김구는 기독교에 입문하여 황해도에서 학교를 개설하고 학생들을 가르쳤는데(양산학교 교장), 안명근 사건과 서간도 이주계획을 주도하였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연행되어 죽도록 고문당하는 이야기 등이 가슴 뭉클하다. 김구는 검찰로 송치될 때까지 여덟 차례 신문을 받았는데 한 번을 빼고는 매번 기절하였다.”(2p357)

    3권은 거의 다가 이승만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승만이 상해임시정부에서 대통령으로 추대된 후 내부 분란을 해소하기 위하여 과감히 상해 행을 결정하고 중국인들의 시체를 실은 배에 몰래 숨어서 타고 상해로 밀항하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한편의 드라마이다. 일본은 이승만을 잡기 위해 이미 30만 불이라는 거액의 현상금까지 걸어놓은 상태였던 것이다. 방문 직전에 이승만의 선생 격인 서재필이 상해의 임시정부 각료들에게 보낸 편지가 눈길을 끈다.

저는 각하(이승만)의 평생 목적이 고국을 타국의 압박에서 벗어나게 함에 있음과 각하의 소망이 고국을 계발 진보시켜......(3p328)

    4권에는 1931년 초 이봉창의 일본천황 저격사건, 윤봉길의 홍구공원 폭파사건의 전말이 소상하게 나온다. 이를 주도한 인물은 우리 모두가 다 알고 있듯이 김구 선생이다. 그리고 임시정부 가족들이 중국 정부의 피란에 따라 더 깊숙한 내륙 오지로 만리장정을 하는 이야기는 눈물겹기 그지없다.

    5권에는 이승만이 일본이 미국을 상대로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리라고 예견한 놀라운 책, <일본내막기 - Japan Inside Out>의 집필과정이 소상하게 나온다. 인터넷도 없고 통신수단도 변변치 않던 1930년대에 어떻게 그렇게 전 세계의 정세를 한 눈에 꿰고 있었는지 그저 신기하기만 할 따름이다. 김구가 1942년부터 백범일지하권을 집필하는 과정이 소개되고 조선의용대와 광복군을 편성하는 과정에서의 파벌간의 암투와 대립도 소개된다. 또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미군 주도의 OSS 설치와 훈련과정도 소개된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8.15해방을 맞이하면서 일본으로부터 나라를 인수하려는 독립운동가들의 치열한 물밑 암투 장면이다. 배경으로 분류해보면, 국내파의 송진우, 미국파의 이승만, 중국파의 김구, 소련파의 김일성/여운형/박헌영 등등이 눈에 띄는데, 여기서 주도권을 잡는 세력은 공산주의 계열이다.

    6권에서는 해방 후 소련과 미국으로 양분된 한반도의 긴박했던 상황과 신탁통치에 대한 찬반논쟁으로 전국이 들끓는 장면들이 고스란히 노출된다. 애당초부터 한반도를 집어삼키려는 야심을 갖고 있던 소련은 김일성(김성주 33세)라는 새파란 소련군 대위를 전면에 내세워 조선인민공화국의 전신인 인민위원회라는 기구를 만들고 순식간에 북한 지역을 접수한다. 33년 만에 한국 땅을 밟은 노정객(77) 이승만이 독립촉성중앙회를 결성하고 우후죽순처럼 생겨 난 수십 개의 정치단체들을 그 기치 아래 하나로 결집시키려는 노력이 소개된다.

    마지막 7권에서는, 결국 우리의 독립문제가 유엔총회로 옮겨가게 되는 과정과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주창하는 이승만 계열과 삼팔선을 베고 자살이라도 하겠다는 순진한 민족주의 계열의 활동이 소개된다. 그러나 슈티코프 등의 회고록에서 다 밝혀졌듯이 이미 북한은 소련을 등에 업고 나라로서의 형태를 다 갖춘 상태였으므로 당시로서는 통일정부를 수립한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시의 남한이 얼마나 풍전등화 같은 상황이었는지는 책의 후반부에 나오는 대구 폭동, 제주 4.3사건, 여순반란 등과 같은 좌익 주도의 사건들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1~7)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소감을 몇 가지로 요약하여 본다.

    첫째, 이승만과 김구 두 분이 서로서로를 존중하면서 독립운동을 추진해 나왔다는 사실이다. 책의 곳곳에서 두 분이 주고받은 편지를 보면 상대방을 존중하고 흠모하는 대목들이 많이 눈에 띈다.

    둘째, 독립운동의 방향을 이승만은 미국을 비롯한 열강의 힘을 빌려 외교적인 방법으로 독립을 이루려고 하였던 데 반해, 김구는 무장투쟁을 통한 독립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결국은 이승만의 방향이 옳았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을 마치고 나서 독립한 수십 개의 나라들 중에서 무장투쟁으로 독립을 이룬 나라는 하나도 없다.

     셋째, 한학을 기본지식으로 습득한 후 미국에 유학하여 박사학위까지 받고 전 세계에 많은 인맥을 가진 이승만이라는 영웅을 가졌다는 사실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크나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는 점이다. 그의 막강한 인맥(윌슨 대통령, 맥아더 원수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덕택에 우리가 독립을 이루었다.  만약 다른 민족 지도자들(조만식, 김구, 여운형 등)의 순진한 주장대로 남북 통일정부를 끝까지 추진하였더라면, 한반도는 이미 75년 전에 김일성과 소련의 공산주의에 흡수되고 지금의 북한과 똑같은 형편이 되었을 것이다.

      끝으로, 김구 선생이 존경을 받을 이유는 무장 투장을 이끈 업적도 훌륭하지만, 그보다는 임시정부를 초창기부터 해방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지켰다는 데에 두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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