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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from Underground (Paperback) - Penguin RED Classics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 Penguin Classics / 2006년 10월
평점 :
품절
내 인생을 통틀어 『지하로부터의 수기』만큼 내가 좋아했고 또 많이 읽은 소설은 없을 것이다. 이 책은 대학교 학부 시절 정말 좋아하던 책이며, 지금까지도 누가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이 무엇인가?"하고 질문하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답으로 제시할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을 왜 그렇게 좋아하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그 이유를 대는 것은 조금 어렵다. 그 이유를 설명하려고 할 때마다 실비아 플라스의 "when at last you find someone to whom you feel you can pour out your soul, you stop in shock at the words you utter - they are so rusty, so ugly, so meaningless and feeble from being kept in the small cramped dark inside you so long"(당신이 당신의 영혼을 쏟아부을 수 있다고 느끼는 사람을 마침내 찾았을 때, 당신은 당신이 내보내는 말들에 놀라 멈춘다 - 그 말들은 당신 안의 좁고 답답한 어둠 속에서 너무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너무 색이 바랬고, 너무 추하며, 너무 의미없고 약하다)라는 어구가 떠오른다. 아마 『지하로부터의 수기』에 대한 내 사랑도 너무 오랫동안 내 안에 머물러 있었기에 타인에게 표현하기에는 너무 약하고 색이 바랜 언어가 되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하로부터의 수기』의 매력을 설명해보려고 한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지하생활자'라는 인간형과 그가 말하는 수수께끼같은 말들이다. 지하생활자는 친구가 없고 혼자 살고 있으며 직업도 없는 아웃사이더이다. 또한 그는 성격이 치통으로부터 일종의 쾌감을 느끼는 등 괴짜 같고 변태스러운 면이 있다. 하지만 그가 내세우는 말들은 곰곰이 생각해보면 하나하나 일리가 있다. 지하생활자는 서구적 이성에서 벗어나는 자유로운 의욕의 발현을 추구한다. 그는 작중에서 광기있게 헛소리 같지만 통찰력 있는 말들을 늘어놓는데 그것들은 다음과 같다.
"the pleasure, of course, of despair, but despair can hold the most intense sorts of pleasure when one is strongly conscious of the hopelessness of one's position"(9)
"They are stupid, I won't deny that, but perhaps a normal man ought to be stupid, how can you tell?"(11)
지하생활자가 하는 이야기는 합리적 이성 밖에 있는 자유로운 의욕의 존재를 끊임없이 내세우고, 합리적 이성에 공격을 가하는 것 같다. 지하생활자는 2*2=4로 대변되는 자연법칙에 도전하려 한다. 지하생활자는 이 법칙을 돌로 된 벽이라고 부르며 자연법칙에는 인간의 의지나 희망이 전혀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What do I mean by a stone wall? Well, of course, the laws of nature of the conclusions of the natural sciences or of mathematics"(14)
"you can't fight with it; twice two is four! Nature doesn't ask you about it; she's not concerned with your wishes or with whether you like her laws or not"(14)
지하생활자가 하는 이야기는 매우 특이하고 흥미롭다. 이 수수께끼 같은 말들의 의미를 풀어내는 것은 재미있는 작업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