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셋하고 리드하라 - 관리와 통제를 뛰어넘어 내 안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뉴 노멀 시대 커리어 생존 전략
장은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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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사를 만나면 난 늘 고과가 형편없었다.




매일 한 일이 진척이 안 보인다고 하는 사람.


다른 조직에 메일 보낼 때 자신의 허락을 받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


하나부터 열까지 다 자신이 알고 있어야 한다고 하는 사람.


의사 결정이 필요해서 의견을 물었는데, 내용을 몰라 다 설명해줘야 하고, 막상 준 의견은 전혀 의사 결정이 아닌 사랑.


회사가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지 바라지 말고 회사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하는 상황이 짜증 났다. 현업에서 그 일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니까 내가 알아서 판단하고 진행하면 왜 안될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도 된다 생각하는데, 상사가 생각하는 방식과 순서에 따라, 자신이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상사 밑에서 나는 그저 허수아비 같은 존재로 느껴졌다.




내가 문제인가 자책하고 고민하고, 그래도 상사에게 맞추기 위해 노력했지만 숨 막혔던 기억이 난다. 회사가 원래 그런 거라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네가 맞춰야 한다고 스스로를 자책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보니 일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고, 상사의 일이고 성취감이나 목표도 없이 그저 버티는 곳이 되었다. 당시 내 MBTI성향을 바꿀 정도였으니 스트레스가 심하고 나름 적응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하지만 기회가 되어 새로운 리더를 만나서는 너무 좋았다. 일의 방향성을 주고, 알아서 그 일을 설계하게 하고, 주기적으로 알아서 보고하면 되고, 의사결정이 필요하거나 리더의 의견이 필요할 때 언제든 편하게 의견을 물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일의 주인이 되어 일을 하고 있다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리더가 명확하게 자신이 할 일을 정해주지 않아서, 각자의 역할과 그에 맞는 일의 범위를 명확하게 구분 해지 않아서 그 애매함이 싫어서 싫다고 했다. 


당시에는 리더의 스타일인가?라고만 생각했는데, <<리셋하고 리드하라>>(장은지 지음, 위즈덤하우스)를 읽고 나니 조직의 특성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이 책에 따르면 과거 (지금도 그렇지만) 조직은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Scientific management)'에 의거해서 근로자들이 기업 내에서 저지르는 게으름에 과학적으로 접근하여 이를 방지하고, 빠른 시간에 가장 생산적으로 일을 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했다.




업무와 조직은 작은 단위로 나누어져 있으며 개인이 자신이 맡은 일만 충실히 행하면 조직전체의 생산성이 올라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근로자들은 작업의 '실행'만 담당하고 어떤 실행을 할지 아이디어, 전략 및 방향성에 대해서는 관리자가 할 일이라 생각했다.




이런 일을 하는 근로자들을 지속적으로 동기 부여시키기 위해서 경제적 이윤을 분배하거나 금전적으로 보상만 하면 된다고 믿었다. 사실 지금도 그렇긴 하다.




이 방식이 과연 효과적일까?




"일에 대한 주인 의식이 마치 정신력이나 마음가짐, 개인의 태도에 달려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요구다. " (p.72)


그렇지 않다. 이제 더이상 이런 방식으로는 기업을 운영하기 힘들어지고 있다. 회사는 더 이상 정년을, 미래를 보장해 줄 수 없고, 리더는 모든 것을 자신이 판단하고 결정할 수 없다. 모든 것이 너무 빠르게 변하고, 예측 불가능하며, 과거의 데이터에 기반하지 않는다.




"위계적 조직이 오늘날의 경영 환경에서 안고 있는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의사 결정에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수직적 관료주의가 만연하는 기계적 조직에서는 혁신적 아이디어의 실행보다는 '절차와 설득'이 중요한 업무 역량이다." (p.76)




"주인 의식은 강조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지율과 신뢰, 책임을 토대로 한 근무 방식과 성과 보상이 주어질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되는 것이다. (p.91)"


애자일 조직은 그 변화된 조직의 모습 중 하나다. 애자일 조직(Agile Origanization)은 필요에 맞게 소규모 팀을 구성하고, 팀이 고객에 니즈에 대응하게 하는 조직체계다.




10년 전에도 애자일이 유행처럼 회사에 퍼졌다.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 중 하나로 소개되었고, 빠르게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Delivery 한다는 개념에 끌려 도입하려 애썼다.




하지만 조직의 모습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문화도 함께 바뀌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존 프로세스 외에 형식적이 활동들이 추가되었다. 개발자들이 할 일이 늘어났다. 형식은 애자일 조직을 표방하지만 실제 일하는 방식은 애자일이 아니었다.




유행이 끝나자 크게 확산을 재촉하는 일도 없어지자 조용히 사라졌다. 다시 고객사의 요청으로 해야 하자 억지로 할 뿐 근본적인 변화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진짜 변화가 필요한 때인데 성공 체험이 없으니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겨워한다. 그래서 책 속에서 만나는 성공 사례가 부러운지도 모르겠다.




오렌지 라이프 사례는 이 책뿐만 아니라 다른 통로를 통해 여러 번 듣긴 했다. 이 회사는 방향성과 실행을 나누어 방향성은 경영진이 제시하고 그 방향성을 어떻게 실행하는지에 대해서는 직원이 결정한다.




"실행에 대한 자율적 권한이 주어지면 내재적 동기가 충분히 발현됩니다. 큰 방향성에 대한 책임은 경영진이 지는 것이고, 실행하는 법에 대한 책임은 직원들이 지는 것이에요. (p.77)"




이 방식이 현재 내가 속한 조직에 적용 가능할까? 쉽지 않아 보인다. 제조업이라는 특성과 여러 내외 따라야 하는 프로세스가 많다. 개개 작은 업무에 대해서는 개인이 판단 가능하지만 대부분 이슈는 팀원이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일들이 대다수다.




그럼에도 애자일 조직의 문화가 스며들었으면 한다. 그런 내적인 동기 부여 없이 회사 생활은 힘들어지고, 버티지 못하는 인원들은 떠나게 된다. 뛰어난 인재들이 떠날 때마다 안타깝다.




"업무를 해나가는 가장 강력한 동기부여는 '일이 진척되어 가는 과정을 경험하는 것'이다. 팀원들이 각각 일이 제대로 일이 되어가는 느낌을 받으면 해당 조직의 문화는 달라진다."(p.124)




하지만 과연 조직만 변해야 할까? 나는 어떻게 변해야 할까?




이 책에서는 '나'와 '나의 일'을 리드하는 몇 가지 커리어 생존 전략을 제시한다.




디지털 리터러시를 갖춰라.


공감력은 곧 지능이다.


익숙한 것을 연결해 새로운 것을 창조하라.


스토리텔링으로 설득하라


사람과 자본을 연결하고 확보하라


새로운 것을 빠르게 학습하고 실천하라.




이 책을 읽고 나니 조직뿐 아니라 그 조직에 이미 오랫동안 몸담고 물들어 버린 나도 바뀌어야겠다. 읽다 보니 은근 긴장하게 된다.




"모든 변화는 쌍방향이다."




변하지 않는 조직 탓 말고 내가 먼저 변해보자. 변화는 소수의 동기부여가 된 사람들이 이끌어가는 것이라니까.



"업무를 해나가는 가장 강력한 동기부여는 ‘일이 진척되어 가는 과정을 경험하는 것‘이다. 팀원들이 각각 일이 제대로 일이 되어가는 느낌을 받으면 해당 조직의 문화는 달라진다."(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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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활 건강
김복희 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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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건강이 중요한 키워드로 등장했던 때가 있을까? 안 그래도 몸이 중요한 시대에 코로나가 기름을 부었다. 스스로를 돌아봐도 그렇다. 건강에 대해 이렇게까지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했던 적이 있을까 싶다. 나이 듦을 새삼 실감한다. SNS에서 보이는 온갖 건강보조제품을 구매하고, 엄청난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운동을 하고 있다. 운동하기 위해 사는 것처럼 모든 에너지는 운동에 집중되어 있다. 이런 걸 주객전도라고 하지.


암튼 내 개인의 삶이 이런 만큼 타인의 생활 건강도 매우 궁금해졌다. 그리하여 <<나의 생활 건강>>(김복희, 유계영, 김유림, 이소호, 손유미, 강혜빈, 박세미, 성다영, 주민현, 윤유나 저, 자음과 모음, 2021)이 10명의 시인들이 쓴 생활 건강 에세이라는 사실에 약간의 흥미가 생겼다.

시를 잘 읽지 않는 나 같은 사람은 10명의 시인의 글을 (시가 아닌 산문으로) 한꺼번에 만날 기회를 갖기도 쉽지 않다. 또한 내 편견적 추측에 기반해 생각해보면 예술가들은 건강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삶을 살 것 같다. 물론 편견은 사실과 다르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같은 작가는 매우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마라톤도 열심히...) 어쨌든 사실과 상관없이 내게 시인은 일본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숲의 정령 같은 존재다.


숲의 정령들이 항상 압축된 언어로 얘기하다 산문으로 '생활 건강'이란 주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궁금해졌다. 별 기대 없었는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궁금증이 조금씩 커졌다.


시인들만의 뭔가 특별한 방식이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며 책을 열었다. 하지만 시작부터 반전. 


일단 시인들의 자기소개부터 재미나다.

김복희 시인은 건강에 좋다고 2리터 물을 마시면서 동시에 술도 마신다.


"누차 강조하지만 술 마시는 틈틈이 물도 꼭 마시고 있다. 매사 이런 식으로, 그러니까 물과 술을 함께 마시듯이 살아가고 있다. (p.11)"


유계영 시인은 자신의 건강한 몸은 엄마 덕분이라 한다.


"거울 앞에 서면 알게 된다. 나를 사람 구실 하게 만들어준 이 멀쩡한 한 육체는 타인의 정성과 수고가 만든 것. 엄마의 토대가 아니었다면 나는 진작 비실비실 앓다 죽었을 거야. (중) 귀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이소호 시인은 참으면 병이 된다는 사실에 글을 쓴다.


"나는 어딘가에 털어낸다는 것으로 스스로 대견하다고 생각했다. '참으면 병이 된다'는 말씀을 지키지 않고, 나는 병이 되기 전에 꼭 어딘가에 쓰고 남겼다. " (p.68)


손유미 시인은 할머니의 사랑이 생활과 건강을 지켜준다고 한다.


"다만 내가 아는 건, 이 알 수 없는 사랑이 나를 생활하게 한다는 것. 이 사랑이 나의 살과 기립근을 이뤄 날 일으키고 허허벌판에 홀로 서 있을 때에도 아주 혼자는 아니게 한다는 것." (p.101)


성다영 시인은 고통이 귀찮아서 운동을 한다.


"나에게 고통이란 단지 귀찮은 것이다. 고통은 애가 해야 할 일을 방해한다. 그리하여 나는 고통을 느끼지 않기 위해 운동을 하는데 (중략).... 나는 책을 읽고 시를 쓰기 위해 운동을 한다." (p.145)


같은 재료가 주어져도 요리사에 따라 다양한 종류와 맛의 요리가 나오는 것처럼 같은 주제가 주어져도 쓰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글이 나온다.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가 가득한 책. 이 책은 다양함으로 아름답고 재미있다.


나도 나만의 생활 건강 이야기가 많다. 혈압을 낮추기 위해 살을 뺀 이야기, 식단을 다 바꾼 이야기, 푹 빠져있는 발레이야기 등.... 하나씩 시인들처럼 풀어가봐야겠다. 


문득 나를 구독하시는 작가님, 내가 구독하는 작가님들의 생활 건강도 궁금해진다. 


건강을 위해 어떤 걸 하고 계신가요?

생활 속 건강을 유지하는 팁이 있다면 공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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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세계에서도
이현석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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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면 참 쉽다. 선과 악, 흰색과 검은색으로만 이루어진 세계라면 얼마나 모든 것이 명료할까? 하지만 밝음과 어둠, 그 두 가지가 명료하게 구분되지 않는 것이 이 세상이다. 흰색과 검은색 사이의 그러데이션을 배워가는 게 삶이 아닐까 싶다.


아주 명료하게 분리가 가능한 세상은 있긴 하다. 이진법의 세계. 컴퓨터의 세계는 모든 것이 1 또는 0이다. 0과 1로 이 많은 것을 해내는 그 세계가 놀랍다. 하지만 그 컴퓨터로 만들어진 세상이 이진법일까? 이상하게도 아니다.

사회가 유지되려면 잣대가 필요하다. 모두가 옳다고 생각하는 그 잣대가 있어야 질서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도덕, 윤리, 종교, 법 등 다양한 장치들이 그 잣대가 되어 지탱한다.


세상이 변하고 기술이 진보하면서 그 잣대들이 옮겨져야 할 때가 있다. 여태까지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건 고통스럽다. 변화를 싫어하는 뇌 입장에서도, 여태까지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온 모든 노력들이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아서. 여러 가지 이유로 변화는 어렵다. 한 인간이 삶 속에서 경험하게 되는 범위의 스팩트럼은 넓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뉴스 등을 통해 알게 되는 사건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하긴 쉬워도 정작 내 일이 되면 말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작가들은 그 불편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불편함을 조금 떨어져서 생각할 수 있게 끔 만들어준다. 가상의 이야기로 현실을 비춰보고 깨달음을 준다. 문학의 힘에 대해 (소설을 가끔 읽어서...) 가끔 놀란다.


<<다른 세계에서도>> (이현석 저, 자음과 모음, 2021)


이 책이 말하는 주제에 대해 처음엔 알지 못했다. '당신'이라 부르며 존댓말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 소설은 주인공이 의사다. 주인공은 선배의 초대로 낙태법에 대해 반대하는 모임에서 칼럼을 쓰게 된다.

"언니가 오랜만에 연락해 온 이유는 낙태죄 헌법소원을 계기로 재생산권 이슈가 뜨거워지자 저명한 진보 시사지에서 언니에게 필진을 모아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었어요. (p.33)"


그러던 와중 동생은 갑자기 혼전 임신을 한다.


"당신을 알게 된 것은 작년 11월이 어느 일요일로, 그 성탄절 새벽으로부터 몇 해가 지나서였어요. (p.32)"

"어쩜 좋냐? 해수 임신했단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에 맥이 풀린 나는 큰 소리로 웃어버렸지요. 처음부터 당신의 존재는 그러했습니다. 내게 웃음부터 나오게 만들었지요. (p.38)"


동생의 여러 상황을 고려해서 주인공의 엄마는 주인공에게 동생에게 준비가 된 다음에 아이를 갖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전하라고 한다.

이야기 속에서 낙태법 반대하는 사람들은 아이를 지우는 것은 생명을 죽이는 일이라고 한다. 찬성하는 사람들은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상황에 있거나, 범죄 등으로 인해 임신한 사람들에게는 아이와 여성의 삶을 위해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낙태 관련 약(미페프리스톤은 WHO에서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한 약물적 임신중지법의 주요 약제 p.32)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낙태를 찬성하고 소파 수술도 진행했지만 정작 자신의 소파 수술 시에는 죄책감을 느꼈던 의사의 이야기도 나온다.

추상적인 논리로 이야기하면 둘 다 맞다. 반대에는 반대할 이유가 찬성에는 찬성할 합당한 이유가 있다. 그저 서로 간의 다른 의견을 논의하는 자리라면 모를까? 이 문제가 법이 되면 좀 다른 양상을 띄게 된다. 한쪽을 택하면 다른 한쪽이 불법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모든 면을 감싸안는 그런 완벽한 법은 없기에 불법이 되는 쪽은 항상 억울한 일이 생긴다.

주인공은 서성이고, 고민한다.


"희진 언니의 말처럼 우리에게 안전하고 편리한 선택지가 있음을 해수도 알아야 하지 않나.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면 내가 거리의 무례한 전도자들과 다를 게 무언지 물어야 했고 그럼에도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동생이라면 몰라서 질주하는 일이 없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빠지기도 했지만 이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해수와 당신에게 씻지 못할 죄를 짓는 것은 아닌지, 만에 하나 그 말이 실수로라도 입 밖에 나온다면 그로 인해 나의 동생과, 다름 아닌 바로 당신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지는 않을지, 만약 그리된다면 어찌해야 할지

그때의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p.49)"


그 주인공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을 본다. 대부분 비슷하게 고민하지 않을까? 타인의 일이라면, 가족의 일이라면, 내 일이라면 어떤 태도를 취하게 될까? 다양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한번쯤 생각해보게 된다.


"다만 확실한 것은 당신을 처음 본 순가부터 내가 당신을 사랑하게 되리라는 사실. 꼬물거리는 손으로 당신이 내 손가락을 잡자마자 나는 당신에게 속수무책으로 빠져들게 되겠지요.

하지만 나는 또한,

당신이 없는 지금 이곳을 상상합니다.

(중략)

당신이 없는 그곳에서도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은 분명 다르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 다른 세계에서도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은 분명 굳건할 것임을

당신이 이해하는 날이 오기를. (p.70)"


책의 소개에 나온 "가장 동시대적인 윤리를 서성이며 구축하는 질문들"이란 글귀가 깊이 공감된다. 윤리 주변을 서성이며 계속 질문한다.


나 또한 안타깝게도 답을 낼 수 없다.

이 세상에서는 그렇다.

답을 명확하게 낼 수 있는 그런 '다른 세계'가 궁금하다.

이런 고민이 없는 '다른 세계'가 궁금하다.

그런 다른 세계에서는 좀 더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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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 건너뛰기 트리플 2
은모든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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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를 보다 보면 "오프닝 건너뛰기"라는 버튼을 볼 수 있다. 그 버튼을 누르는 사람이 많을까? 누르지 않고 보는 사람이 많을까? 이 궁금증으로 구글로 검색하다 넷플릭스의 [오프닝 건너뛰기] 버튼은 어떻게 만든 걸까(https://brunch.co.kr/@herbeauty/6)라는 글을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오프닝을 건너뛰거나 지난 줄거리를 건너뛰고 빠르게 내용을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분명히 오프닝을 보며 지난 회의 감동을 되살리며 즐기는 사람도 존재할 것이다. 개인의 취향은 각자 다르니까.


드라마뿐만 아니라 삶 속에도 오프닝은 늘 있다. 개업식, 결혼, 출산, 돌잔치, 집들이 등... 그중 가장 복잡해 보이는 결혼을 생각해보자. 양가 부모님 인사, 신혼집 구하기, 결혼일 잡기, 신혼집 구하기, 결혼 날짜 잡기, 상견례, 식장 예약, 스드메(스튜디오 촬영, 드레스, 메이크업), 결혼식, 폐백, 신혼집 살림 장만, 이사, 신혼여행, 이후 인사, 혼인 신고 등 꽤 긴 오프닝을 가지고 있다.


형식적인 오프닝도 길지만, 진짜 시작은 결혼 이후다. 다른 두 사람이 맞춰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정말 어렵다. 연애 때와는 사뭇 다른 리얼한 일상을 공유하게 된다. 약간이라도 남아있던 환상과 기대는 1%도 없이 사라진다. 설상가상 결혼 전 장점이라 생각했거나 잘 몰랐던 부분이 동전의 양면처럼 큰 단점으로 다가온다. 어쩌다 싸우게 되면 그 이후도 문제다. 화가 나도 다시 한집에서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 상대가 싸우고 나가면 나가서 화가 나고, 집에 있으면 얼굴이 보여서 화가 난다. 어른들 걱정하실까 봐 싸울 때마다 본가에 갈 수도 없다. 연애 때처럼 마음대로 헤어질 수도 없다.

결혼은 여러모로 부담스러운 과정으로 보인다. 이런 고난의 과정이 과연 필요한 일일까? 인내할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런 궁금증이 있다면 은모든 작가의 <<오프닝 건너뛰기>라는 소설을 추천해주고 싶다.


"집 안으로 들어왔을 때 반겨주는 얼굴을 보는 순간마다 수미는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일의 따스함을 느꼈다. 그리고 다음 순간이면 그 온기를 전해준 사람이 지나는 곳마다 켜 둔 형광등을 끄느라 분을 삭여야 했다." (p.14)


자신을 배려해서 '보송보송한 이불'을 꺼내 주는 남편은 좋지만 떡볶이 국물이 튄 티셔츠를 그대로 입고 자는 것도 여기저기 형광등을 켜 둔 채로 자는 것도, 뉴스를 보면서 사태를 너무나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도, 쇼핑을 좋아하는 것도 다 거슬려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나 자신을 생각해볼 수 있다.


"아마도 과일의 껍질을 벗기고 씨앗을 도려내듯 필요 없는 부분은 제거하고 원하는 부분만 취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터였다. 누군가와 한집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일의 본질이 거기에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수미는 그 점을 받아들이기 위해 몇 달째 애쓰고 있는 중이었다. 이번에는 (p.26)"


타인의 마음의 드는 부분만 레고 조각처럼 뽑아 나만의 내가 원하는 모습을 만들 순 없다. 나 또한 상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도 없다. 나와 다른 타인을 내 입맛에 맞게 맞추기는 쉽지 않다. 그 다름을 인정해 가는 과정이 결혼 생활이다. 오프닝을 건너뛰든 뛰지 않든 그 과정은 남아있고, 더 중요하다. 아니 결혼의 진짜 오프닝은 바로 이 과정일 것이다.


https://www.insight.co.kr/news/185250

결혼만 그럴까? 이성 간의 결혼만 그럴까? 연애도, 그냥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게 그저 쉬운 사람은 오프닝을 건너뛸 수도 있을 거고, 어려운 사람은 천천히 오프닝을 보면서 어린 왕자와 여우가 조금씩 가까워지듯이 그렇게 서로를 인정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은모든 작가는 소설 속에서 그 모든 관계의 오프닝, 가까워짐에 대해 경계하진 않지만 조심스러운 자세를 가진 인물들을 통해 관계를 바라본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다른 이들에게는 어떤 속도로 관계를 만들어가는 사람인지 돌아보게 한다.


순식간에 모든 관심을 사로잡는 SNS, 인터넷, 누르기만 하면 다음날 배송되는 택배 등 빠름의 미학이 만연하는 삶 속에서 오프닝을 건너뛰지 않아야 하는, 혹은 건너뛸 수 없는 사람들도, 그런 관계도 있다는 생각을 다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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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노을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82
이희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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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니야, 오늘 날씨."

"흐린 하늘이에요. 기온은 15도. 외출하실 때 겉옷을 챙겨가세요. 미세먼지 농도는 보통입니다."

"엄마, 보통이 뭐예요?"

"응 많지도 적지도 않은 적당한 거."


보통이라는 개념은 어렵다. 사전적 정의로 보통은 "세상에서 흔히 볼 수 있어 별다르지 않고 평범한 것. 또는, 뛰어나지 않고 열등하지도 않아 중간 정도인 것"(Oxford Languages)이다. 단어의 정의와 역설적이게 보통이 되는 것, 보통으로 살기는 쉽지 않다. 


최근 사유리가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의 임신과 출산이 한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평범한 보통의 가정은 항상 아빠와 엄마가 있어야 하고 어느 정도 경제적 수준이 되며 행복하게 산다는 고정된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 외이 가정의 모습은 비정상적이며 보통이 아닌 것이 된다. 


이희영 작가의 장편 소설인 <<보통의 노을>>은 '보통'이 아닌 가족과 친구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책의 저자인 이희영 작가는 김승옥 문학상 신인상 수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작가의 다른 소설은 읽지 못한 채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순식간에 읽어 내려가면서 중간에 주인공들의 모습에 감정 이입이 되어 눈물을 글썽이고 말았다.


주인공인 노을은 열여덟 살이고 엄마와 열여섯 살 차이다. 노을의 엄마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낳은 아들이다. 

미혼모의 엄마가 세상에 편견에 맞서 아들을 키운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늘 마주하지만 잊고 있는 편견을 새롭게 깨닫게 한다. 여자와 남자 사이에는 우정이 없을 거라는 편견, 동성인 친구와는 항상 우정만 있을 거라는 편견, 연상 연하 특히 미혼모와 총각 사이에는 이루어지기 힘들 거라는 편견 등 말이다. 프리즘에 비추면 보이지 않던 다양한 색깔들이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이 소설은 프리즘이 되어서 우리의 삶을 비춘다.


"사람들의 말이라. 그래, 사람들은 곧잘 자신의 생각이 답이라 믿는다. 그것에 벗어난 이들을 절대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 (p.67)"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살고 싶었다. 똑같이 잘못을 해도 사람들은 내게 다른 시선을 던지니까. 그 누구도 나를 보며 혹은 엄마를 향해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되었다." 


그저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고, 서로 사랑하는 이 사람들. 그리고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는 노을 친구의 부모님. 그렇지 않은 그 외 사람들. 평균과 보통이라는 밋밋한 잣대가 아니라 그 한 개인의 모습이 그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반짝반짝 빛날 수 있는 세상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벚꽃들. 그 수많은 벚꽃들은 그저 보통의 벚꽃들이었을 뿐일까? 다 똑같이 생겨서 예뻤을까? 잠깐 아름답게 피었다가 즐길 새도 없이 사라진 그 벚꽃 같은 삶을 사는 우리. 한 잎 한 잎 다 달라도, 예쁘게 피어도, 하나쯤은 떨어져도 그저 예뻤다. 


"보통이어도 보통이 아니어도 충분한 우리 모두를 위한 이야기."


다름을 보통으로 느끼는 그런 세상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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