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우의 집 - 개정판
권여선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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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며칠 전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사형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출처: 뉴시스). 인권위가 사형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하면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언급했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74년 중앙정보부가 국가변란을 목적으로 북한의 지령을 받는 지하조직을 결성했다는 죄목 하에 민주화 운동을 한 언론인, 교수, 학생들을 검거해서 형 확정 후 18시간 만에 8명에게 사형을 집행한 사건이다. 이들은 2007년 재심을 통해 무죄가 선고되었다. 


<<토우의 집>>(권여선, 자음과 모음, 2020)은 이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연상케 하는 소설이다. 당시 모습을 삼벌레 고개에 사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과 함께 보여준다. 삼벌레 고개는 삼악산 근처 마을이다. "경사를 끼고 형성된 모든 동네가 그렇듯 삼벌레 고개에서도 재산의 등급과 등고선의 높이는 반비례" 하는 곳이다. 이 소설에 중심이 되는 사람들은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윗동네"에 사는 사람들로 윗동네에는 부족한 게 많았는데, 부족한 와중에도 사람들은 쉬지 않고 이불이며 냄비며 놋그릇이며 전당포에 잡혀"먹을 정도고 "하다못해 치아나 팔다리의 개수도 아랫동네 사람들보다 적"은 부족한 사람들이다. 


이들의 삶의 모습, 각 인물들의 서사가 생생해서 마치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이렇게 가난한 동네에 작은 집을 여러 칸을 나누어 세를 주는 순분네에 새댁과 남편, 큰딸 영과 작은 딸 원이가 이사 온다. 새댁은 이 마을에 사는 대부분의 여자들과 다르게 핸드백에서 펜과 잉크병을 꺼내 펜에 펜촉을 끼워 멋진 필체로 한문을 써내는 사람이다. 그녀의 이런 모습에 잘난 척한다고 느끼고 싫어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동네 여자들은 그녀의 남편이 "지압" 비슷한 일을 한다는 것과 그녀의 손위 시누이가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하며 험담을 한다. 그 마을의 계 모임에서는 동네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험담 된다. 특히 순분네에서는 동네 사람들의 온갖 이야기들이 공유되고 퍼진다. 이야기는 작은 사실과 전달하는 사람의 임의에 따라 디테일이 추가되고 부풀려진다. 하지만 전혀 악의 혹은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것 같지 않은 그 말들은 흘러들어 가 한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고, 할아버지와 친했던 할머니는 마을을 떠나게 된다. 


어른들의 이런 모습과 대조적으로 아이들은 순수함을 가지고 있다. 특히 은철의 순수함은 미소를 짓게 한다. 새댁에게서 효자 효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순분네 둘째 은철은 근심에 빠진다. 은철은 옛날 부모들이 무섭게 먹을 걸 밝혔다는 것에 충격을 받고, 자신의 아빠가 식탐이 많은 것을 몹시 걱정한다. 아버지는 특히 소의 날간이나 곱창을 좋아하는데 병이 들어 날간이나 곱창이 먹고 싶다 하면 자신의 간과 곱창을 주어야 하는지 고민한다.


이렇게 순수한 아이들은 놀거리가 없는 팍팍한 삶에서도 즐거움과 놀이를 찾는다. 원이와 은철은 스파이 놀이를 시작한다. 자신들 입장에서 나쁜 사람과 좋은 사람을 구분해서 자신의 입장에서 나쁜 사람을 저주하기 위해 시작했지만 아이들은 스파이 활동을 통해 사람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그들에게서 진짜 이야기를 듣는다. 소문과 부풀려진 사실만 무성한 마을에서 어리다고 존재 조차 무시당하는 어린이들은 사실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이야기를 만들어내서 타인을 해치는 어른들과,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도 사실의 정보를 모으는 아이들의 모습은 대비된다. 아이보다 못한 어른들의 무지함과 잔인함이 더 크게 부각된다.  


하지만 삼벌레 고개의 모든 어른들이 다 어리석은 것은 아니다. 남 이야기 좋아하던 순분도 자신의 아들이 다치고 나서는 변한다. 금철로 인해 은철이 불구가 되는 사건이 생기자, 새댁네 시누이 이야기를 했던 자신의 모습을 반성한다. 타인의 불행은 절대로 흥미로운 가십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깨닫는다. 아버지가 감옥에 가있다고 사람들은 영이와 원이를 빨갱이라고 하지만 학교 선생님은 그런 편견으로부터 떨어져서 아이가 필요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해 준다. 


가장 잔인한 존재는 새댁의 남편을 감옥에 가둔 그들이다. 어느 일요일 아침 두 명의 양복 입은 사내들이 새댁에 온 이후 모든 것은 달라진다. 새댁의 남편은 갑자기 감옥에 갇히게 되고, 그 가족은 빨갱이라는 누명을 쓰게 된다. 고문을 견디지 못해 새댁의 남편은 결국 자살한다. 억울한 마음을 달래지 못해 새댁도 정신줄을 놓게 된다. 엄마 아빠를 잃은 원이는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인 듯 느껴져 더 이상 말을 하지 않는다. 가장 그나마 적응하며 지내려는 원의 언니 영 또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모든 감정적인 사건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한다. 이제 새댁의 집은 무덤이 된다. 삼벌레 고개를 순분네도 새댁네도 모두 떠난다. 


왜 제목이 토우의 집일까?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에 따르면 토우는 "흙으로 만든 인형이라는 뜻이다. 고대의 토우는 장난감이나 애완용으로 만들어진 것, 주술적인 우상(偶像)으로서의 성격을 가진 것, 무덤에 넣기 위한 부장용(副葬用)"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어느 날 원이에게 온 '희'라는 인형은 이제 무덤에 넣기 위해 사용되는 부장용 토우처럼 새댁에 가족 대신 그 자리에 있게 된다. 토우의 집은 곧 무덤이다.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다 떠나고 토우만 남은 그 집은 곧 무덤이다. 평범했던 가족의 일상과 행복이 사라진 곳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닌 탓이다. 모두의 삶을 파괴하고 남은 것은 껍데기뿐인 사람을 상징하는 토우. 사형당하고 억울하게 삶을 살았던 가족들의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제목이다. 


작가의 말을 통해 그가 얼마나 이들의 고통에 함께 고통받고 힘들어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고통을 말한다는 것 자체가 소비될까 걱정할 만큼. 하지만 작가에게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 글을 통해 몰랐던 사실과 이를 겪었을 사람들의 고통을 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었고 다시 이런 일이 생기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까. 이것이 문학의 힘이고, 그 본연에 충실했으니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세상을 떠난 이들을 그리워하는 마음, 그 마음이 이 시에 담겨 있다. 


"사랑하네 아니 오리 언제나 오려나

아득히 지난날

가슴에 스민 꽃

그리워라 아니 오리

꿈속에 보이네."


이런 일이 다시 생기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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