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이 일을 하게 되었어요? 누군가 묻는다면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어쩌다가요."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꿈을 나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그중 열리는 문을 따라가다 보니 지금 일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나 또한 어렸을 때는 의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했고, 그 자리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 중 나름 최선을 고르기 위해 했던 판단과 결정들이 이어져서 지금까지 왔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하지 못했지만, 열심히 쌓아놓은 것을 활용할 기회를 계속 찾아가다 보니 지금까지 온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 더 이상 진로 고민은 끝일까? 슬프게도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회사 이후의 삶, 퇴직 이후의 삶과 진로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고민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의 저자의 말처럼 사십 대는 모든 것이 정해져서 권태로운 시간을 보낼 줄 알았는데, 늘 불안하다. 삶에서 권태로운 시간은 정말 얼마 되지 않는 것 같다. 삶은 늘 불확실성 속에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살아 있는 동안 끊임없이 내 일, 내 자리를 근심하고 발명하며 살아야” 한다.


게다가 코로나로 일상적으로 유지되던 삶은 무너졌다. 많은 직업들이 위태로워졌다. 회사 근처에 운동하러 갔다 우연히 회원들의 대화를 들었다. 전에는 학원 근처에서 월세 찾기가 어려웠는데, 요즘은 신축에 꽤 괜찮은 월세가 생각보다 많다고 했다. 이유는 근처에 공항이 있어 승무원들이 많이 살았는데, 항공편이 축소되다 보니 많은 승무원들이 그만둬서 공실이 생겼다는 거다. 승무원뿐이랴 음식점, 카페, 헬스장, 방문 교육 등 대면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의 생계가 위태롭다. 이제 "먹고사는 문제는 자아실현처럼 낭만이 묻은 표현 대신 절박한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이제 어떤 일을 앞으로 해야 할까? 막연하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 일 외에 다른 일에 대해 궁금해할 여유조차 없이 살아왔는데 이젠 적극적으로 알아봐야 할 때다. 그래서 이런 궁금증이 생겼다. 다른 사람들, 특히 일 잘하는 여성들은 어떻게 내 직업을 발견했을까?


나처럼 비슷한 궁금증을 가진 이다혜 기자가 인터뷰한 책이 <<내일을 위한 내 일>>(이다혜, 창비, 2021)이다. 다양한 연령과 분야의 사람들의 일 그 자체, 일을 하게 된 계기, 힘들었던 일, 그 일이 좋은 이유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영화감독 윤가은, 배구 선수 양효진, 바리스타 전주연, 작가 정세랑, 경영인 엄윤미, 고인류학자 이상희,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씨의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다. 저자가 말했듯이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ematics)  분야를 다루지 못한 것이 아쉽다. 다음 책을 기대해본다. 


이 책은 아직 직업을 갖지 못한 청소년 혹은 새로운 일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돈이 최고이기 때문에 아이들의 꿈은 모두 돈을 많이 버는 거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직업을 가질 수도 없고, 흥미나 적성이 있지도 않다. 각자의 적성과 흥미에 따라 다양한 관심사로 다양한 일을 하는 게 사회가 건강해지는 거라 생각한다. 누구나 다 힘든 여정을 통해 자신만의 속도로 나아간다는 것을 보면서 위안과 동시에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인터뷰의 내용 중 몇몇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


영화감독 윤가은은 어린이가 주인공인 어린이를 위한 영화를 만든다.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오랜 시간 고민했고 되고 나서도 영화 한 편을 만들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한다. 그 긴 고민의 시간의 고통이 그녀의 인터뷰를 읽다 보면 고스란히 느껴진다. 영화는 특성상 준비하고 만드는 과정은 길고 개봉하고 관객에게 소개되는 기간은 짧다. 준비한 시간 대비 결과는 너무 한순간에 나온다. 그렇기에 결과에만 매몰되기 쉬운데 그녀는 "책임질 수 있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 생각하고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서로를 존중하면서 함께 만들어가는 거라는 원칙을 만든다. 긴 호흡으로 특히 어린이들과 영화를 만들어가는 사람이 원칙에 따라 움직인다는 사실이 멋졌다. 그런 생각이 영화에 녹아들고 그 마음이 아이들에게 전달될 것이다. 


배구 선수 양효진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배구를 배우기 시작했다. 예체능은 목표가 명확하고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한다. 재능이 많이 좌우하고, 노력한다고 바로 실력이 늘지 않는 것도 슬럼프에 빠지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하지만 그녀는 "내 힘으로 안 되는 부분도 있구나"라고 깨닫고 자신을 몰아세우는 것을 멈춘다. 그리고 오히려 스스로를 편안하게 하자 MVP를 딴다. 프로 이후의 삶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할지 자신도 모르지만 그녀는 여러 사람과 함께 승리를 만들어가는 배구를 사랑한다. 왜 배구가 좋으냐는 질문에 즐겁게 엔도르핀 넘치게 대답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부러웠다. 


작가 정세랑은 <<보건 교사 안은영>> 영화를 재미있게 봐서 더 관심 있게 읽었다. 정세랑 작가는 역사교육학과를 나와 편집자로도 일하고 마케팅 인턴도 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바탕에 두고 자신의 글이 트렌드와 시장에 따라 열리는 길을 따라왔다. 그래 왔던 그녀이기 때문에 "안 되면 되는 길로 간다."라고 말한다. 이다혜 기자가 프로로서 일을 끝내는 집중의 힘에 대해 질문했는데 그녀의 대답이 인상적이다. 글이 막혔을 때 막힌 이유는 “인풋이 부족해서”라는 것이다. 무엇인가 제대로 아웃풋을 내지 못한다면 필요한 정보, 인사이트, 영감 등이 부족한 거다. 억지로 결과를 짜내려고 하지 않고 부족한 포인트를 집어내어 보완하고 결과를 만들어내는 프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고인류학자 이상희 교수의 이야기는 기억에 남는 이유가 "원치 않는 방향”을 피하려고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음대 가려다 슬럼프가 와서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집을 떠나고 싶어 유학을 간다. 미국에서 인류학과 석박사를 졸업하고 우여곡절 끝에 인류학과 교수가 된다. 시작부터 재능이 있거나 정말 좋아서 한 일은 아니지만 계속했다. 계속할 수 있었던 힘은 "심드렁하게 계속"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마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공감할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인도네시아 토바 화산이 크게 폭발한 적이 있어요. 화산재가 엄청난 규모였기 때문에 넓은 지역에 오랫동안 구름이 드리우면서 지구 상의 식물, 동물이 영향을 많이 받았을 거라고 봤죠. 그런데 인도쯤 되는 지역에서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의 석기 공작소가 발견되었어요. 지구가 내일 멸망해도 나는 석기를 만드는, 그런 느낌 아시겠어요? 눈 떠보니까 나는 살아 있었던 거죠. 그래서 오늘 할 일을 하는 거예요.(p.196)"


인터뷰이의 이야기들은 어떻게 그 자리에서 버티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보여준다. 이들도 누구나처럼 자신의 성격과 맞지 않는 것 같아서, 노력해도 안돼서, 사람 때문에 힘들어서, 기회가 안돼서, 실패해서 좌절한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주문을 외우며 버티고 나아간다. 


지금 그들의 현재 모습은 여정의 끝이 아니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자신이 한 지금의 말이 추후 힘들 때 다시 자신의 말로 힘을 얻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거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분들의 이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상승과 하강이, 지난한 정체기가 있을 것이다. 부디 바라기는 인터뷰이들이 후일 언젠가 삶의 어려운 시기를 지나게 될 때 이 책에서 자신이 한 말로부터 힘을 얻고 용기를 낼 수 있었으면 한다. 당신의 말로부터 내가 힘을 내고 용기를 얻은 것처럼.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건 그런 의미일 것이다. (p.8)"


"이들의 경험을 레퍼런스 삼아 마음을 단단하게 키웠으면 한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번갈아 온다는 것, 실패한 뒤 방향을 바꾸는 일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기를. 오늘의 열심히 내일의 경력이 된다. (p.11)"


이 책을 읽고 나니 코로나가 와도 일상을 지키며 살아가는 우리 모습이 더 멋지게 보인다.


*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으나 내용은 제 주관적인 의견입니다. 






이들의 경험을 레퍼런스 삼아 마음을 단단하게 키웠으면 한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번갈아 온다는 것, 실패한 뒤 방향을 바꾸는 일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기를. 오늘의 열심히 내일의 경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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