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희미하게 빛나는 저빛은 오아시스가 아니라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장난일 뿐이며, 때로는 가장 단순한 설명이 가장 좋은 설명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도 둘씩 짝을 이뤘을 때 철학을 가장 잘 실천할 수 있다고 믿었다. 2인조 방식이다. 지나치게 멀리 가지 않도록 나를 붙잡아줄다른 사람, 다른 정신이 필요하다. 소냐는 내 소크라테스다. 소냐는 내 가정에 의문을 제기한다. 의심을 심는다. - P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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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우리에게 생각할 내용이 아닌 생각하는 방법을 알려주며, - P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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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정념에 반드시 동의해야 한다면 다른 방향으로 동의해보라고 에픽테토스는 제안한다. 정념에 다른 이름을 붙여라. 홀로있을 때 느끼는 고독에 평온함이라는 이름을 붙여라. 사람들로붐비는 장소에 가면 그 상황에 축제라는 이름을 붙이고 "모든 것을 만족스럽게 받아들여라." 정신승리라고? 물론 그렇지만, 이건 도움이 되는 정신승리다. 어차피 우리의 정신은 늘 현실에 농간을 부린다. 그런 농간을 잘 활용하면 좋지 않겠는가? - P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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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스가 말한다. "비결은 뜨겁다는 데 마음을 쓰지 않는 거야."
로렌스의 대답은 스토아철학을 잘 보여준다. 당연히 로렌스는고통을 느꼈지만 그 고통은 날것의 감각, 반사적 반응에 그쳤다.
이 반응은 본격적인 감정으로 발달하지 않았다. 로렌스는 말 그대로 고통에 마음을 쓰지 않았다. 몸이 경험한 것을 마음이 경험하고 증폭시키도록 두지 않았다. - P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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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확실성이 아닌 정반대에서 즐거움을 찾기로 선택할 수있다. 일단 그렇게 하면, 삶(외부인의 관점에서는 전과 똑같은 삶)은꽤나 다르게 느껴진다. 불확실성에서 즐거움을 찾으면 낮에 회사에서 있었던 심란한 일은 하루의 끝에 이를 갈며 와인 한 잔을 더마셔야 할 일이 아닌 축하할 일이 된다. 불확실성에서 즐거움을찾으면 질병마저도, 신체적 고통이 계속될지라도,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이러한 관점의 변화는 미묘하지만 그 영향력이 엄청나다. 세상이 전과 달라 보인다. 니체 또한 이러한 방향 전환이 쉽지않음을 인정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게다가 지금까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가능성을 탐험하는 것이 바로 철학이 아니고무엇이겠는가? - P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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