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들의 땅
천쓰홍 지음, 김태성 옮김 / 민음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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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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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 귀신들의 땅에서 왔어. 여기가 나의 고향이야. 오늘은 중원절이라서 모든 귀신들이 돌아오지. 나도 돌아가야 해.❞ (20p)

타이완 작가 천쓰홍이 자전적 이야기를 일부 녹여내 쓴 '귀신들의 땅'은
외세로부터 여러 유형의 식민지를 거치고 가부장제와 유교적 가치관이 지배했던 20세기 후반, 타이완의 '용징'이라는 곳에 살았던 천 씨 집안의 비극적인 가족사를 보여준다.

음력 7월 1일에 귀문(鬼門)이 열리고 15일에 절정을 이루는 때를 중원절(中元節)이라 하여 모든 귀신들에게 제사를 올려 건강과 번영을 기원한다. 소설은 중원절에 천씨 집안 막내 톈홍이 감옥 출소 후, 고향 용징에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천씨 집안의 가장 아산은 간장 공장 딸 아찬과 결혼하여 딸 다섯을 낳지만 아들을 바라는 시어머니 등쌀에 그 밑으로 아들 둘을 더 낳는다. 부부는 돈을 벌어 용징에 새로 지어진 타운하우스로 이사하지만 그들의 비극은 서서히 시작된다.
일찍 공장에 취업한 첫째 딸 수메이는 '난'과 노름에 빠진 남편이 죽는 걸 보는 게 소원이고, 둘째 딸 수리는 여성 호적원으로 무능하고 무기력한 가족들을 혼자 먹여 살리지만 뜻하지 않은 업무상 오해로 전 국민의 욕을 먹는다. 좋은 운명을 타고난 셋째 딸 수칭은 부모의 가장 큰 사랑을 받았지만 유명한 앵커인 남편의 가정폭력에 시달린다. 넷째 딸 쑤제는 용징의 갑부인 왕가네 며느리가 돼 대저택 백악관에 살지만 남편으로부터 버림받고 홀로 방에 틀어박혀 사는 히키코모리다. 다섯 째 딸 만메이는 자살을 했다. 여섯째 아들 천톄이는 용징의 향장이 되지만 부정 사건으로 감옥에 간다. 일곱째 천톈홍은 동성연애자이며 독일에서 애인 T를 살해하고 실형을 살게 된다.

1, 2부에 걸쳐 떡밥처럼 던져 놓았던 이유를 알 수 없던 과거의 많은 사건과 죽음들이 3부에 서서히 밝혀진다. '죽었지만 여전히 존재'하며 '자신과 타인의 기억 (76p)'에 존재하는 귀신들은 '제각각 다른 기억들의 중간'을 말한다. 다섯 째와 결혼하기로 된 왕가네 아들이 왜 갑자기 넷째와 결혼을 하게 되었고, 다섯째는 왜 자살을 했으며 막내아들은 독일에서 왜 T를 죽이게 됐는지 이유가 드러난다. T의 비밀과, 막내 톈홍이 어릴 때 같이 놀아주던 칭쯔총이 죽은 이유와 함께 마지막에 드러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비밀은 다소 충격적이다.

500 쪽에 가까운 스토리는 처음과 끝의 아귀가 착착 맞아 떨어지며 나름의 긴장과 재미를 마지막 장까지 끌고 간다. 문장이 아름답고 스토리가 탄탄해 감탄을 하며 읽었다. 이 소설은 비극적인 한 집안의 이야기를 통해 시대에 부당하게 희생당한 귀신과 귀신이 된 사람들을 위한 진혼곡이다. 억울하게 죽어 이승을 떠도는 것만이 귀신이 아니다. '색깔 없이 투명해 사람들 사이에서 생략되는 (48p)' 사람도, 세상과 소통을 끊어 '연결이 단절된 (58p)'이들도 시대에 부정당하고 희생당하는 모두는 살았지만 귀신이다. 소설은 진실을 움켜진 바람을 통해 그들 모두에게 '울지 마'라고 위로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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