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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과거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31
드리스 슈라이비 지음, 정지용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1월
평점 :
#도서제공 #단순한과거
모로코는 1912년 프랑스의 보호령이 되었다. 프랑스는 모로코에 '문명화' 논리를 앞세워 유럽식 신도시를 조성한다. 작가 드비스 슈라이비는 '아랍 전통문화와 서양 근대문화가 공존하는 시대'(376p) 에 살았다. 그는 이슬람 문화 속에서 태어나 쿠란 학교를 다니며 아랍어와 이슬람 교리를 배웠으나 초등학교 때부터 프랑스 학교를 다니며 프랑스 문화와 언어, 문학을 접한다. 이 책은 프랑스에 건너가 쓴 첫 소설로 프랑스가 아닌 모로코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조국을 배신한 작가라는 오명을 얻게 된다.
이슬람 문화에서 가장의 권위는 군주에 가깝다. 소설 속 주인공 드리스의 아버지 핫지 페트미 페르디는 자식들에게 군주라고 불리고 스스로를 과인이라고 칭한다. 아버지는 '핫지(순례를 갔다온 사람)'면서 부자이기에 남다른 권력을 가진다. 그 권력은 가부장으로서 가정뿐만 아니라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도 대단하다. 어린 나이에 반강제적으로 결혼하게 된 어머니는 아들 7명을 낳고 남편을 하늘처럼 떠받치며 산다. 남편의 말은 법이고 그는 가족의 모든 일상을 통제한다. 심지어 밥 숟가락을 드는 것 조차도. 가부장적인 폭력은 일상이다. 프랑스 학교를 다니며 바칼로레아를 준비하는 둘째 아들 드리스는 점점 서양화되며 기독교를 접하게 되고 이슬람 전통인 아버지의 권위에 서서히 반항하기 시작한다. 일상적이며 당연했던 현재의 삶에 드러난 여러 부조리와 폭력이 그의 눈에 부당하게 보이기 시작하며 폭군인 자신의 아버지를 항거할 기회를 찾는다.
🔖군주의 아들이라는 자부심을 느꼈고, 나병처럼 퍼지는 군주의 주권을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무기력과 분노를 느꼈고, 그(핫지 시 케타니 선생)가 복종하는 것을 보며, 심지어 초월적이고 영롱하기까지 한 즐거움을 느꼈다. 나는 무의미한 말과 생각과 폭력을 표출했다. 에너지를 행동으로 바꿔 사용했지만, 그 결과는 군주의 영광으로 나타났을 뿐이었다.(112p)
차(茶)를 파는 아버지는 파산을 하게 되고 자신을 위한 기도를 드리라며 드리스와 부인을 외가에 보낸다. 그 사이, 드리스와 가장 친했던 병약한 막내 동생 하미드가 죽는다. '규범에 어긋나고, 금지되었던 많은 작은 것들(149p)' 을 공유한 드리스와 하미드, 그들의 영역을 침범한 다른 형제들에 의해 비밀은 드러나고 분노한 군주는 아들을 죽이게 된다. 집에 돌아와 하미드를 죽인 사람이 아버지라는 것을 알게 된 드리스는 아버지를 단죄하고 혁명을 일으키려 하지만 아버지의 권위와 부에 길들여진 형제들과 어머니는 동의하지 않는다. 가족들이 자신에게 침을 뱉는 것으로 자식을 죽인 죄를 씻었다 여기는 아버지는 드리스를 내쫓지만 이후 바칼로레아에 합격한 아들을 다시 받아들이려 한다. 드리스는 아버지를 죽이려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만 눈앞에서 죽은 어머니를 보게 되고 파산한 사업을 다시 일으켜 세운 아버지의 절대 권력 앞에 좌절하며 자신의 계획을 실행시키지 못하고 '유예'시키고 만다.
이슬람 문화에서 절대 권력을 가진 가부장 아래에서 40년 인생을 애 낳고 노예처럼 산 어머니는 존재하는 모든 신에게 자신을 죽여줄 것을 기도한다. 큰 아들은 아버지의 돈으로 술에 찌들어 살고 둘째를 제외한 아들들은 무기력하다. 가족 이상으로 여겼던, 로슈 선생과 친구들은 드리스가 궁지에 몰렸을 때 어쩔 수 없이 권력자인 아버지 편에 선다. 그들은 위선자들이었다. 서양문명에 대한 환멸을 느낀다.
'참고 견디고,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359p)'며 반항을 다음으로 미룬 드리스는 결국 아버지의 돈으로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며 훗날을 기약하게 된다.
🔖소수문학의 경우, 대부분 협소한 공간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개인적인 문제는 즉시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 더 큰 차원에서 정치적인 것과 연결된다. [단순한 과거]도 문제들은 대부분 가족 내부에서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개인적인 갈등에서 발생하지만, 그 문제들은 즉시 이슬람 종교 집단의 권위주의와 교조주의, 부와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모로코 기득권 세력의 횡포, 프랑스 식민 통치의 위선적인 정책 등과 연결된다. (385p)
읽으며 내내 충격적이었던 이 책은, 종교와 가부장제가 결합돼 비정상적인 폭력을 휘두르는 가장과 그것에 길들여진 가족들의 모습을 극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주인공 드리스가 혁명을 꿈꾸기 위해 갈등하고 부서지고 타협해가는 과정은 처절하다. 미래의 혁명을 위해 과거는 단 하나도 지워질 수 없다. 혁명의 대상으로 수렴되기에 단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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