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 있는 리플리 리플리 5부작 1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미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제공
.
영화 알랭들롱의 <태양은 가득히>와 맷 데이먼의 <리플리>를 봤다고 리플리를 안다고 하면 안 될 것이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리플리 5부작 중,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은 1부 <재능 있는 리플리>이며, 범죄자 리플리의 탄생을 보여주는 서문이다.

선박 재벌 허버트 그린리프는 아들 디키가 이탈리아에서 그림을 그린답시고 허송세월하는 게 못마땅해 디키와 안면이 있는 톰 리플리에게 디키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설득해 달라며 큰돈을 제시한다. 톰은 국세청 말단 직원으로 일하다 평생 말단직원으로 구질구질한 인생을 살 것 같아 그만두고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세금 사기를 치며 뉴욕에서 남의 집 살이를 하던 차 허버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 내가 디키 그린리프가 되자. 그러면 티키가 하던 걸 내가 다 할 수 있어.❞
몽지벨로에서 디키를 만난 톰은 그와 친해지기 위해 애를 쓰지만 다소 이기적인 디키와 그의 여자친구 마지 때문에 사이는 일순간 틀어진다. 우여곡절 끝에 톰과 디키는 산레모로 마지막 여행을 떠나지만 톰은 디키를 향한 '애증과 조바심과 절망이 뒤섞인 감정'으로 그를 죽이게 된다. 이후 '개처럼 디키를 졸졸 따라다니는', 버려질까 봐 두려워하는 톰이 아니다. 디키를 죽이고 디키의 친구 프레디까지 우발적으로 죽인 톰은 디키 행세를 하며 죄의식 없이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나간다. 경찰과 마지, 그리고 디키의 아버지가 고용한 탐정의 추적망을 교묘히 피해 다닌다. 톰은 결국 그들에게 잡힐 것인가!

❝ 변장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변장하려는 사람의 분위기와 성격을 닮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
영화를 보면서 리플리의 거짓말이 탄로 날까 조마조마했다면 책을 읽으면서는 리플리와 리플리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리플리(디키 그린리프) 사이를 넘나드는 리플리의 심리에 압도되었다. 자신을 타자화하거나 디키로 위장하며 수차례 시뮬레이션 하는 장면들은 압권이다. 그의 꼬리가 밟히려는 찰나마다 늘 행운의 여신은 그의 편에 서있는 것 같다. 영화의 결말과 사뭇 다른 책의 결말 부분은 리플리 시리즈를 예고한다.

리플리와 리플리가 원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 사이에는 투명한 경계가 있다. 그들과 친해지고 잘 안다고 생각해도 한순간에 경계 밖으로 밀려나는 톰은 그럴 때마다 지독한 현실의 시궁창에 빠져버린다. 때론 톰에게 진지한 일들은 그들에겐 가볍게 웃어넘겨버리는 일 정도 밖에는 되지 않는다. 디키나 마지, 프레디에게서 예술가로서의 진지함을 찾지 못한 톰은 그들의 예술적 자아도취를 비아냥 거리고 쫓기는 와중에도 자신이 살 아파트를 자신의 예술적 취향껏 꾸민다. 그의 예술에 대한 경애는 이후 시리즈에도 이어진다.

🔖디키와 마지, 프레디 모두 부모의 돈으로 여유로운 삶을 누리면서 자신들의 행운을 아주 자연스러운 상태로 인지한다. 그야말로 무작위적인 행운이었음을 아예 자각하지 못하고, 돈을 벌 필요가 없이 그저 소비하기만 하면 되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품위를 예술에 종사한다는 자부심에서 찾으려고 한다는 점을,리플리는 냉소한다. (250p, 추천의 말, 김용언)

김미정 역자의 번역은 매끄러웠고 독자의 이해를 돕는 적절한 각주도 좋았다. 이어지는 시리즈에 대한 기대가 커진다. 워크룸의 깔끔한 디자인으로 리플리 시리즈 다섯 권의 책등에 그려진 글자를 합쳐 RipLey가 펼쳐지는 박스셑은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

🔖눈을 봐야 그 사람의 영혼이 보이는 법. 눈으로 애정이 드러나기 마련이었다. 사람의 속내를 진정으로 보여 주는 유일한 곳이 바로 눈이었다...둘은 친구가 아니었다. 서로가 서로를 알지 못했다. 이런 깨달음이 끔찍한 사실이자 불변의 진리라는 듯이 톰의 머리를 때렸다. 과거에 만난 사람들도 그랬고, 앞으로 만날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그의 앞에 섰던 사람들도 그랬고, 앞으로 설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앞으로 몇 번이 됐든 톰은 그들을 결코 알지 못하리라는 걸 깨달았다. 최악은 그가 번번이 착각한다는 것. 그들을 안다는 착각, 그들과 완벽하게 죽이 맞고 그들도 그와 비슷하다는 착각을 한동안 한다는 게 최악이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충격적인 깨달음을 얻는 순간, 톰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바닥에 쓰러질 듯한 경련이 일었다. 모든 게 너무 버거웠다. 낯선 환경, 다른 언어, 그의 실패, 게다가 디키가 톰을 싫어한다는 사실까지. 낯설음이, 적개심이 톰의 온몸을 휘감아 버린 것 같았다. (78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