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테이아 - 매들린 밀러 짧은 소설
매들린 밀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새의노래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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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현 작가는 <환승인간 > 에서 <선녀와 나무꾼>의 선녀를 언급하며 선녀는 하늘에 올라갈 때까지 왜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무꾼에게 자신의 진심을 말하지 않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선녀를 납치한 나무꾼은 지독한 스토커고 옥황상제는 선녀가 납치된 것이 선녀의 잘못이라고 가스라이팅을 지속적으로 했다는 것이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와서, 선녀가 3년을 참고 하늘로 올라간 것을 작가는 차가운 복수심이라고 했다. 나무꾼에게 절대 드러내지 않는 그 마음을.

오비디우스 의 < 변신이야기 >에는 <퓌그말리온의 기도>라는 오르페우스의 노래가 나온다. 퀴프로스 섬에 사는 지상 최고의 조각가인 퓌그말리온은 섬에 있는 여자들이 타락했다며 여자들을 거들떠 보지도 않고 순결함을 상징하는 상아색 여인 조각상을 만들어 스스로 사랑에 빠진다.  조각상이 살아있는 여인이 되길 소원하는 마음이 아프로디테에게 전달되고 그 소원은 이루어진다는 내용이다.

나는 오비디우스가 쓴 <퓌그말리온의 기도>에서 갈라테이아라는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매들린 밀러가 지적한 것처럼 이 노래에서 갈라테이아는 그녀로만 지칭될 뿐이다. 그런데 내가 읽은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퓌그말리온이 갈라테이아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으로 나온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것인데 그럼 갈라테이라는 이름은 과연 어디에서 누가 붙인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갈라테이아는 원래 상아색 피부를 가진 바다의 요정의 이름이다.)

<갈라테이아>는 매들린 밀러가 <퓌그말리온의 기도>를 비틀어서 여성의 관점에서 다시 쓴 이야기다. 우리는 피그말리온이라는 말을 기대와 칭찬의 힘을 이야기할 때, 또는 자신이 창조한 예술작품과 사랑에 빠지는 일을 이야기할 때 쓰는 용어로 사용한다.  이러한 맥락으로 셰익스피어는 <겨울이야기>를 썼고 버나드 쇼는 <피그말리온>을 썼으며 오드리 헵번이 주연한 <마이 페어 레이디>가 창작됐다.  공통적으로 신분과 지성이 우월한 남성이 신분이 낮은 여성을 자신의 노력으로 목적에 맞게 바꾸는 이야기다.  (역시 마이 페어 레이디의 교수는 남성 우월주의자다.) 이들 여성들은 수동태의 주어로 존재한다.

사실, 이전까진 이 신화의 이면에 감춰진 남성의 폭력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나는 매들린 밀러의 <갈라테이아>를 읽으며 '피그말리온이야말로 여성의 자립심을 질색하고 혐오한 남성, 여성을 원하는 동시에 증오한 남성, 순결과 통제에 대한 환상을 피난처 삼은 남성'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퀴프로스 섬의 모든 여성들을 혐오하면서 동시에 순결하고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만 존재해 주길, 그래서 쉽게 '따먹을 수'있는 대상으로서의 여성이 되기만을 바랐던 피그말리온, 그는 사랑이라는 가면 아래 남성의 폭력성을 감춘 것이다. 

<갈라테이아>의 갈라테이아는 <선녀와 나무꾼>의 선녀처럼 자신의 본심을 피그말리온에게 드러내지 않는다. 오랜 준비 끝에 그녀는 피그말리온을 바다로 유인해 목을 끌어안으며 바닷속에 가라앉는다.  마치 원래 바다의 요정이었던 갈라테이아로 돌아간 것처럼.  이것이 갈라테이아의 복수다. 🌊

우윳빛 피부를 가진 갈라테이아, 하얀 선녀복을 입은 선녀..순결과 외적 미, 복종을 강요하는 남성들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것 같아 잠시 흰색이 슬퍼진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녀들의 결연한 의지로 느껴지기도 된다.

100페이지도 안 되는 분량의 소설이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묵직하다. 겉표지, 내지가 모두 같은 종이로 만들었다는 이 책은, 상아빛 피부의 갈라테이아의 어깨를 토닥이는 마음으로 읽어주길 바란다는 출판사의 의도가 담겨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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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갈라테이아 #매들린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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