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곳에서 만나요
이유리 지음 / 안온북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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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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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어 이 세상에 잠시 머무는 영혼이 된다면 나는 어디로 갈까, 무엇을 할까.  아마도 사랑하는 가족을 찾아갈 테고 남은 가족이 잘 살아가도록 지켜보지 않을까.  어느 장소의  지박령이 되었다면 가족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겠지, <오리배> 선착장의 지영이처럼.

이유리 작가의 연작소설 <좋은 곳에서 만나요>에 실린 단편엔 마치 게임의 버그처럼 죽어 사라지지 않고 영혼이 된 사람들이 나온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은 이들은 '생전에 뭘 하고 싶었던 것 인지를 깨닫'고, '어떤 방식으로든 그걸 해내고 나서야 떠난다. 원래 갔어야 했던 곳으로.'

🔖아무래도 내가 세계를 너무 아름답게 만들었나 보지.아무것도 모르는 채로는 떠나기 싫을 정도로 말야.(286p)

끈질기게 사랑하고 사랑을 찾는 인간들. 인생이 유한함을 깨닫는다면 그 안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많은 일들도 결국 끝남을 알게 된다.

영혼이 돼 잠시 이생에 머무는 이야기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봐 왔던 익숙한 설정인데다 <아홉 번의 생> 또한 사노 요코의 <백만 번 산 고양이>를 떠올렸기에 새롭지는 않았다. 그러나 연작소설이라 단편들 간 등장인물들이 서로 스치듯 연결돼 있어 마치 앞 편의 프리퀄을 보는듯한 재미가 있었고, '죽음'이라는 어두운 주제를 다뤘지만 억지 슬픔을 끌어내거나 뻔한 위로를 하지 않아서 좋았다.  떠난 사람도 남겨진 사람도 그들이 좋은 곳에 있기를 바라는 마음만이 남는다.

개인적으론, 마지막 단편 <이 세계의 개발자>가 가장 좋았다.

🔖사랑이란 매일 함께 있고 싶은 것 모든 것을 알고 싶은 것, 끊임없이 생각나는 것이라고, 물론 어느 부분에선 옳았지만, 그것들은 사랑이라는 거대한 우주의 아주 작은별 하나에 불과했다. 별 하나가 없다고 해서 우주가 우주가 아닌 것이 되지 않듯이 사랑도 그랬다. 사랑을 무엇이라고 정의해버리는 순간, 사랑은 순식간에 작아지고 납작해진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이가 해야 할 일은 사랑을 확인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저 수천만의 행운이 겹쳐 만들어낸 오늘을 최대한 즐기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뿐. (205p)

🔖신이 이 세계를 짓고 부순 방법, 그리고 결국 사랑한 방법은 뭐였을까. 그것을 안다면 나도 이 불완전한 세계를 완전한 세계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 해답은 내버려두는 일, 다만 그것뿐이었다는 사실을. 세계에 일어나는 일들을 한발 물러나서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 불완전함 속에서 완전해지려고 안간힘을 쓰는 이들을 다만 애정 어린 눈으로 끝까지 지켜보는 것. (29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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