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가 너에게 가면
설재인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2년 10월
평점 :
#도서제공
.
.
보편적이지 못한 가정을 바라보는 시선들은 일방적이고 불편하다. 외국인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빠는 돈을 벌러 외국에 나가 삼촌이 키우는 애린의 가정을 단지 보편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결손가정'이라고 폄하하고 비아냥 거리는 교장의 시선이 그렇고, 죽은 친구의 손녀 성주를 데려와 키우는 종옥과 성주를 바라보는 항만군 할머니들의 시선이 그렇다.
🔖사람들은 보편적 성장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종옥과의 관계가 흔하지 않다는 이유로 성주를 '구실 못할' 사람으로 치부해버렸다. (213p)
보편성을 갖지 못한 사람들을 향한 차별적 시선을 알기에 애린의 삼촌 도연은 애린을 친딸 이상으로 돌보았고, 종옥도 성주를 친손주 못지않게 키웠다. 오래전 세상을 버텨야만 했던 종옥에게 사랑을 준 이들로 인해 종옥은 성주를 거둘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성주는 종옥의 '따스한 애정'을 받고 자라서 그 경험으로 타인의 비집고 들어오는 애정에게 자기 마음켠을 내어주고 또 돌봄반 애린에게 애정을 쏟는다. 애린은 그 애정의 경험으로 앞으로 사랑을 주며 살 것이다. 사랑받은 경험이라는 것은 그렇게 타인의 마음에서 마음으로 번식한다.
이야기는 손녀인 돌봄교사 성주가 '제대로 먹기'를 바라는 돌아가신 할머니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크고 작은 사건들이 결국 성주의 마음치유의 과정이었음을 보여준다. 든든한 아군인 애린과 도연과 인봉의 돌봄을 받으면서. '남의 정성도 냉장고에 넣고 잊는 사람, 그것이 서서히 부패하도록 만들었던' (196p)성주는 빵이라면 소모시킬 칼로리만 생각했던 이전과는 달리 도연의 빵을 하나 먹어볼까 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기게 된다. 타인의 마음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종옥이 성주가 빵이라도 먹었음을 소원했던 건 어쩌면 그 이면엔 혼자된 성주가 타인의 사랑을 받으며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돌봄은 서로에게 어깨를 내보이고 어깨에 기대면서 그렇게 사랑을 낳고 또 낳는다. 돌봄이라는 것은 돌보는 이, 돌봄을 받는 이의 마음 밭에 사랑 씨앗을 뿌리는 일 같다.
추워지는 계절에 잘 어울리는 소설이다.
🔖그 작은 동네에서, 누군가 한마디 뱉은 말이 기화되어 은은히 공기 중을 떠다니다가 다음날 새벽이슬처럼 시치미를 뚝 떼고 온 동네 온 집안의 마당을 적셔버리는 그런 곳에서.(32p)
🔖어른이 되어서도 가끔은 그런 말이 필요했다. 너의 든든한 아군이 되어주겠다는 말. 내가 책임져줄 테니까, 네가 만약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으면, 부당하다고 여겨지는 상황에 놓이면, 받아서는 안 되는 상처를 받는 경험을 하게 되면, 참거나 애써 수긍하려 들며 스스로를 진창에 처박지 말고, 그냥 뻥 차버리라고. 뭔가 잘못되어도 내가 있으니까, 보험이 되어줄 테니까 일단 그렇게 해보라고. (22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