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심윤경 지음 / 사계절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제공도서
.
.
나는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친할머니는 아버지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고 외할머니는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돌아가셨다. 부모님께서 맞벌이해야 하는 상황이라 나는 시골에 사시는 외할머님께 1,2년 정도 맡겨졌던 걸로 안다. 아주 흐릿하게 나는 기억이라곤 할머니가 운영하셨던 작은 구멍가게와 동네 애들과 푸르고 따뜻한 논밭, 그리고 아빠를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고속버스 안에서 노래를 불러 승객들이 웃었던.. 그런 조각난 기억 몇 개일 뿐이다. 기억이라기보다는 흑백사진 같은.

웃는 모습이 조금 대장부 같았던 할머니의 얼굴도 희미하게 남아있다. 그런 내게 할머니의 포근한 사랑이라는 것은 남이 먹는 달달한 포도알 같다. 무슨 맛인지 알 것 같은데 내 것이 아니어서 과즙을 흘리며 양볼 가득 넣고 먹을 수 없는 포도알. 나는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를 입안 가득 느껴지는 달달함과 눈으로 느껴지는 그리움으로 읽어나갔다.

돌아가신지 오래되어 희미해진 할머니의 사랑은 딸 꿀짱아를 키우면서 조금씩 회복된다. 사랑을 받는 손녀라는 객체에서 엄마라는 주는 주체로 자리 변환이 이루어지는 순간 피부에 고스란히 스몄던 할머니의 사랑이 올라오는 것이다. 사춘기 딸과의 일상 소통이 꽉 막히자 할머니의 사랑 사랑 속에서 육아의 지혜를 발견한다.

👵'그려, 안 뒤야, 뒤았어, 몰러, 워쪄'의 매직

할머니의 사랑이라는 게 대단한 것이 아니다. 할머니의 언어는 단순하고 '당신의 기분에 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는다.' 아이의 정신적 확장에 장단을 맞춰 몸을 낮춘다. 함박웃음을 짓고 관용을 베푼다.

🔖할머니에게서 배운 사랑을 한 줄로 요약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주는 평화'일 것이다. (6p)

작가는 '애쓰고 걱정함을 내려놓고 그저 기특하게 지켜보고 공감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할머니가 나에게 주신 것들을 세상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8p)라고 했다. 이 미니멀적인 사랑은 단순하지만 단단하고 화려하진 않지만 따뜻하다. 어쩌면 빠르고 각박하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지친 우리 모두에게 회복되어야 하는 감정일 것이다.

큰애의 긴 입시 레이스에 오르면서 아이도 나도 무척 예민해 있었다. 내 아무리 현란한 언어 드리블과 온갖 잡다한 입시 지식을 늘어 놓는다 해도 큰애의 입시 부담을 줄여줄 순 없을 것이다. 기대나 격려보다는, 그저 '저런' 의 공감과 안쓰러움의 말이나 '뭐 꼭 그럴 필요는 없어'라는 관용의 두 마디 말이 오히려 더 아이에게 힘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의 사랑은 대단하고 화려해 보이지 않을 순 있지만 그녀가 주는 용기와 격려는 역시 대단한 것이다.

🔖이전에 살았던 세계는 학교, 직장, 문화, 친구, 성취와 우정의 세계였다. 모두 두 글자 이상이었다. 아이와 함께하는 세계는 쉬, 똥, 침, 코, 토, 잠, 젖, 신기하도록 모두 한 글자였다. (34p)

🔖살면서 부딪히는 많은 갈등들이 옳고 그름의 차원이 아니라 부대낌의 문제인 것을 그분은 알고 있었다. (63p)

#나의아름다운할머니 #심윤경
#사계절출판사 #독서 #책스타그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