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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회
윌리엄 트레버 지음, 김하현 옮김 / 한겨레출판 / 2021년 12월
평점 :
#제공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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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소설가들의 소설가라는 별명을 가진 윌리엄 트래버의 단편 12편이 실린 단편집이다.
단편의 아버지답게 매 단편은 읽는 이로 하여금 전율을, 공포를, 슬픔을, 애절함을, 멍함 등 다양한 감정들을 불러일으킨다. 짧은 단편들이지만, 매 단편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서야 물밀듯 밀려오는 감정의 소용돌이는 그만큼 각 단편들이 가진 스토리의 힘과 밀도가 높다는 말일 게다. 때론,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친절하지 않은 서사는 입체적인 공간감을 느끼게 해주고, 애매한 결말과 밀도 높은 문장들에 생각이 한동안 머물었다. 300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 책이지만 곱씹어 읽느라 시간이 많이 걸린 편이다.
'고인 곁에 앉다' 편의 에밀리는 평생 자신을 모욕한 남편이 죽자, 그를 위해 구원의 기도를 올리며 비록 껍데기뿐이지만 그에 대한 사랑의 잔재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녀의 영혼마저 남편에게 잠식당한 에밀리(27p)의 사랑과 표제작 '밀회' 의 불륜커플이 사랑하는 방식과 헤어지는 방식, '신성한 조각상' 에서 남편의 미래를 위해 자식을 팔 생각까지 한 코리의 사랑, '큰돈' 편에서 피나와 존마이클이 사랑한 것은 서로가 아니라 부자의 환상을 심어준 '미국'이라는 나라였다는 사실 등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보여주는 단편들을, 때로는 공감하고 때론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그게 사랑이 아닌 것이 아님을 나는 안다.
'그라일리스의 유산' 편은 좋아던 단편 중 하나다. 도서관에서 일하는 그라일리스는 자신 앞으로 상속된 유산을 받을지 말지를 고민한다. 그 돈은 한때 '독서'라는 같은 취미를 공유했던 여인이 죽으며 남긴 유산이다. 그라일리스는 끝내 유산을 거부하는데 그 이유는 The past is in the past. 라는 것. 이런 조용한 사랑도 있다.🔖두 사람은 감정을 건드리지 않았고, 후회나 과거에 있을지도 모를 것들을 건드리지 않았다. 그녀는 지나간 과거를, 그는 아직 그곳에 있는 것을 배신하지 않았다. (103p)
'로즈 울다' 편의 로즈는 부버리씨의 말 없는 고통과 자신을 둘러싼 모든 비밀과, 배신과, 기만을 한꺼번에 자각하고 눈물을 터트려 버린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 중 로즈의 눈물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나.
트레버는 인생 속에 벌어지는 많은 일들과 그 속에 섞인 다양한 감정들을, 우리가 모두 이해할 수 있다란 착각을 버리길 바란다. 이해하지 못하는 건 타인의 삶뿐 만이 아니라 때로는 나 자신의 감정도 이해하기 힘들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흐르고 그 안에서 일어난 다양한 사건과 감정들이 미래의 우리들에게 어떤 화학반응을 일으키는지 두고 볼 일이라는 듯 속삭인다.
🔖그는 기억 밖에서는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던 것을 건드렸다. 기억 속에서는 모든 것이 영원히 그곳에 있었고 아무것도 변할 수 없었다.....기만이 조용한 사랑을 기렸다. (120p)
🔖아버지의 죄책감은 자신이 아내를 충분히 알지 못했다는 것이었고, 어머니의 죄책감은 아버지가 자신을 모른다는 사실을 이용했다는 것이었죠. 두 분은 수치심을 느꼈지만, 우리의 대화 속에서 두 분의 정신은 온화해요. 죄책감이 늘 끔찍한 것도 아니고, 수치심이 늘 무가치한 것도 아니죠.(153p)
🔖두 사람이 사랑한 것은, 너무나도 사랑한 것은 미국이었다. 사랑의 환상에 활기를 불어넣은 것도 미국이었고, 서로를 더욱 좋아하게 만든 것도 미국이었다. (227p)
🔖그 둘은 사랑을 지니고서 몸을 떼고 서로에게 멀어져 갔다.(287p)
*한겨레 출판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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