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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을유세계문학전집 105
알베르 카뮈 지음, 김진하 옮김 / 을유문화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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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종종 죽음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매일매일 돌아가는 삶이 쳇바퀴처럼 느껴지고 그게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무겁게 느껴지거나 늘 해야 하는 일들이 버겁다고 느껴질 때,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껴질 때면 깊은 고독감에 빠져든다.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어지거나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버리거나 나만 홀로 증발해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따라온다. 오래전 십 대 때부터 종종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곤 했다. 그럴 때면 밤에 잠을 잘 못 이루지만 어김없이 해는 떠올랐다. 날이 밝으면 늘 하던 대로 몸을 움직였고, 삶은 계속 굴러갔다.

카뮈는 시지프 신화에서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라고 썼다. 지독하게 귀찮고 힘겨운 삶을 지속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을 품고 여러 책들을 파고들기도 했다. 책에는 저마다 삶에 대한 관점이 담겨 있어서 때론 내 마음을 위로해 주기도 하고, 없던 기운을 샘솟게 하기도 했다. 어떤 책은 읽으면서 내가 이해받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럴 땐 세상이 살만하게 느껴졌다.

카뮈가 남긴 책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이방인에는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뫼르소라는 젊은 남성이 등장한다. 소설은 “오늘 엄마가 죽었다”(p.9)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시작하자마자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는데, 의아한 건 그에게서 슬픔을 비롯해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뫼르소는 사무적으로 장례 절차를 치르고, 일상으로 돌아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아간다. 한 여성을 만나 연애를 하고, 다소 무료하면서도 긴장감 있는 일상을 살아간다. 마치 아무 욕망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

애인이 결혼하자고 하자 뫼르소는 아무 동요도 없이 승낙한다. 파리로 전근을 가볼 생각이 없냐는 사장의 말에 뫼르소는 인생에 어떤 변화도 추구하지 않는 인생관에 대해 말한다. 좋은 것도 싫은 것도 딱히 없는 그는 무채색 인간으로 그려진다. 그러다 뫼르소는 친구들과 놀러 간 휴양소에서 한 아랍인을 총으로 쏴 죽인다. 어떠한 이유도 없이, 후에 그저 “햇빛 때문이었다”(p.124)라고 설명하는 살인을 저지른다.

여기까지가 소설의 절반이고, 나머지는 법정과 감옥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법정에선 뫼르소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 취조와 증언, 변호가 오간다. 검사는 뫼르소가 어머니의 장례식과 그 후의 일상에서 아무 동요 없이 지내던 모습을 밝혀내고, 배심원에게 뫼르소는 불효막심한 사이코패스 같은 비정한 사람이 된다. 법과 도덕의 잣대 아래 그의 삶과 행동이 이해될 가능성은 점점 영으로 수렴한다. 뫼르소의 말처럼 “내 의견은 듣지도 않은 채 내 운명이 조정되고 있었던 것이다.”(p.118)

뫼르소는 사형선고를 받은 후에 비로소 감옥에서 “평온을 되찾”(p.144)는다. 절망하기보다 오히려 행복감을 느낀다. “나도 모든 걸 다시 살아갈 준비가 되었다고 느꼈다. (…) 나는 처음으로 세상의 다정한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다. 세상이 나와 아주 닮았음을, 결국 형제 같음을 경험함으로써 나는 내가 행복했었음을, 그리고 여전히 행복함을 느꼈다.”(p.145) 대체 이 아이러니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어쩌면 뫼르소는 이해될 수 없는 세상처럼, 자신도 이해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일찍이 눈치챈 것일까. 그러니 자신의 운명은 당연한 것이고, 죽음 앞에서도 초연할 수 있었던 것일까. 햇빛 때문에 누군가를 죽였다는 것이 누구에게도 이해될 수 없지만 자신에게는 자연스러웠듯이 사형집행일에 자신이 죽어야 한다는 것 또한 온전히 이해되지 않지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이 거대한 부조리 앞에서 뫼르소는 어떻게 부서지지 않을 수 있었을까.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임을 밝힙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 P9

내 의견은 듣지도 않은 채 내 운명이 조정되고 있었던 것이다. - P118

나는 처음으로 세상의 다정한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다. 세상이 나와 아주 닮았음을, 결국 형제 같음을 경험함으로써 나는 내가 행복했었음을, 그리고 여전히 행복함을 느꼈다. -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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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노래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1
이승우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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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행 작가가 죽기 전에 미완성 원고를 남긴다. 그 안엔 천산 수도원이란 곳이 마지막 꼭지로 담겨 있었다. 작가의 동생은 우연히 원고를 발견하고, 출판사 관계자들과 답사를 떠난다. 오래전에 버려진 수도원은 천산 꼭대기 절벽 위에 세워져 있었다. 그들은 그곳 지하에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다. 수많은 방 안 흙벽을 가득 채운 성경 구절들이었다. 대체 이 벽서는 누가 왜 적은 것일까. 이곳은 언제 만들어졌고 누가 살았으며, 왜 홀연히 버려진 것일까.

동생의 도움으로 작가의 유작은 출간되지만 천산 수도원과 벽서의 존재는 세간의 관심을 받지 못한다. 한 교회 역사학자 차동연이 우연히 발견하여 기독교 신문에 기고한 게 유일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기사는 부족한 추론에 불과했다. 그게 우연히 젊은 시절에 수도원을 눈앞에서 목격한 장의 귀에 들어가고, 장의 입을 통해 수도원에 얽힌 이야기가 하나둘씩 드러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후는 사촌누나를 범한 자에게 위해를 가한 후 천산 수도원에 숨어든다. 그곳에서 ‘형제들’이 알려주는 대로 “모든 것을 비춰” 내는 “큰 거울”인 성경을 읽으며 자기 자신을 돌아본다. 후가 성경 속 이야기인 압살롬, 다말, 암논의 일화를 통해 마주한 건, 사촌누나를 사랑한 마음과 그게 불러온 죄책감이었다.

한정효는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독재자의 오른팔이었다. 군인이기에 복종을 제일의 규율로 받들어 살아온 그는 아내가 홀연히 세상을 떠나자 큰 충격을 받고, 아내의 유품인 성경을 읽으며 삶을 되돌아본다. 거울 같은 성경은 한정효의 삶을 다시 비추어낸다. 이제 그에게 남은 건 아내와 시대를 향한 죄책감이다. 독재자는 폭로를 통해 속죄하려는 한정효의 의도를 알아채고, 그를 천산 수도원에 감금한다.

이후에 펼쳐지는 후와 한정효의 삶은 죄책감이 추동한다. 이 죄책감의 근원을 정확히 헤아릴 수는 없지만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운명을 만드는 건 누군가의 욕망”인데, 자기 욕망이 작동한 곳에서 누군가가 당했을 상처를 발견한 자에게 그 감정을 무시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인 것이다.

그런 그들이 죽기까지 선택한 건, ‘지상의 노래’를 쓰는 일이었다. 성경은 어떤 의미에서 하늘을 꿈꾸던 자들이 하늘에 닿기 위해 쓴 노래다. 후와 한정효는 몸으로 그 노래를 써나갔다. 그리고 그들이 쓰는 건 누군가에 의해 계승된다. 여행작가의 미완성 원고가 동생에 의해 완성되었듯, 그 글이 차동연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고, 누군가의 증언들이 보태져 새롭게 쓰이듯 말이다. 성경이 쓰여 내려져 온 것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이 세상에 내던져진 인간은 앞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이어 받아 다시 쓰고 새롭게 써나가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미 쓰인 이야기를 다시 쓰고, 보태어 쓰고, 새롭게 쓰며 이 삶의 고달픔을 달래 가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 쓰는 행위를 통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일까. 우린 무엇을 쓸 수 있을까. 무엇을 써야 할까.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임을 밝힙니다.

세상은 그들을 버렸지만, 그 전에 그들은 세상을 버렸다. 어떤 의미에서는 버려지는 것이 그들이 세상을 버리는 방법이었다. 세상은 더 이상 그들의 믿음과 소망을 간섭하지 않았다. - P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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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피투성이 연인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0
정미경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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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경의 첫 소설집 《나의 피투성이 연인》에서 화자들은 대체로 우울하고, 세계는 한없이 서늘하다. 냉정한 문장들을 조용히 좇아가다 보면 어느새 마음엔 우울의 샘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그 세계가 그토록 서늘하게 느껴지는 건, 일상 속에 은폐되어 있거나 위장되어 있는 날 것 그대로의 진실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세계에서 타인은 믿을 수 없는 존재, 어쩌면 가장 가까워서 가장 먼 존재다. 표제작이기도 한 <나의 피투성이 연인>의 유선은 젊은 나이에 요절한 작가 김주현의 아내다. 어느 날 유선은 작가의 미출간 원고를 유고집으로 내자는 출판사의 제안으로 남편이 생전에 남긴 컴퓨터 속 파일을 열어본다. 암호가 걸려있던 파일에는 누군지 알 수 없는 이를 향한 사랑의 언어가 가득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이에게서 느낀 배신감은 평생 홀로 간직할 수밖에 없는 잔혹한 진실이다. 이제 남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사랑이 아름답고 따스하고 투명한 어떤 것이라고는 이제 생각하지 않을래. 피의 냄새와 잔혹함, 배신과 후회가 없다면 그건 사이보그의 사랑이 아닐까 싶어"





<비소여인>에서는 내내 외롭게 살던 남자가 여인 윤을 만나 같이 살기 시작한다. 생기 없던 일상이 "속 깊은 정" 가득한 일들로 채워지고 행복이 무르익어 갈 즈음, 주변에 가까운 이들이 하나둘씩 사라진다. 윤이 서서히 비소에 중독시켜 아무도 모르게 죽였기 때문이다. 이제 위협은 화자를 향해 다가온다. 무엇을 믿고 살 수 있을까. <나릿빛 사진의 추억>에서는 더 이상 타인을 향한 호의는 가능하지 않고, <달빛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에서 결혼을 약속한 이들 사이에는 넘기 힘든 무지의 벽이 여전히 공고하다.



타인을 향한 두려움은 어쩌면 자본이 만든 세계의 풍경일지 모르겠다. 그 세계에서 자본은 자아를 무너뜨리고, 관계를 흩어놓는다. <성스러운 봄>에서 손해사정사는 보험의뢰인으로 옛 은사를 만난다. 대화가 오갈수록 은사가 불륜을 저지르고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허위로 보험 신고를 하는 것이란 진실이 밝혀지는데, 그와 함께 자기 자신에 대한 환멸 섞인 진실도 드러난다. 그건 바로 돈 때문에 딸의 백혈병 치료를 포기해야 했던 현실이었다. <호텔 유로, 1203>에서는 시인을 꿈꾸지만 방송용 원고를 쓰며 살아가는 작가가 등장한다. 작가는 화려하게 치장한 가면 뒤에 숨어 쇼핑중독과 도벽에 빠져 살아가며,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만든 거대한 늪으로 점점 매몰된다. <비소여인>에서 윤은 비소에 중독시켜 사람을 죽이기 전에 생명보험을 잔뜩 들어놓는다.

그렇다면 이 세계는 출구 없는 지옥인 걸까. 소설집의 마지막 작품 <달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는 마치 이 질문에 답하는 듯한 소설이다. 정은은 결혼을 앞두고 임시 거처할 곳으로 이사를 간다. 그곳은 "문만 열면 누군가와 얼굴을 마주"칠 수 있는 골목길의 낡은 집이었다. 타인에게 간섭받기 싫어하고, 혼자가 편한 정은은 덜컥 다가와 술과 음식, 차를 건네고 일상에 초대하는 이웃들이 불편하다. 차츰 그들을 이해하고 가까워지지만 이 훈훈한 이야기는 결국 피비린내 나는 치정 살인극으로 막을 내린다.

골목길 이웃인 승우는 영화지망생으로 골목길 풍경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데, 그 제목이 바로 "달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다. 제목의 뜻을 묻는 정은에게 승우는 답한다. "대부분의 우린, 별이 아니라, 스스로는 빛나지 못하는 차갑고 검은 덩어리예요. 존재란 스스로는 빛날 수 없는 것.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만월도 되고 때론 그믐도 되고, 그런 거 같아요."




우리는 서로 비춰줄 수 있겠냐는 승우의 질문에 정은은 모르겠다고 답하지만, "너와 나의 틈 사이, 거기 희미한 빛이 있었을 뿐"이라고 되뇐다. 소설집 마지막에 쓰인 이 문장은 한없이 우울하고 서늘한 세계에도 희미하게나마 빛이 반짝였노라고 말한다. 때론 그믐달처럼 희미해서 주의를 깊이 기울여야 알아차릴 수 있지만, 또는 그냥 지나치고 나중에야 겨우 깨닫게 되지만, 그렇더라도 부정할 수는 없는 빛이다. 이 지독한 세계에서 붙잡을 만한 게 하나 있다면 바로 이 '희미한 빛'이 아닐까. 그 빛을 발견하려면 우리 각자는 모두 스스로 빛나지 못하는 차가운 덩어리에 불과함을 알아차려야 하고, 나와 누군가의 틈 사이를 예민하게 응시할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임을 밝힙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가 살고 있는 방의 곰팡이 낀 더러운 벽에서 한 폭의 벽화를 읽어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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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팅 클럽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2
강영숙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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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보이는 글을 쓰는 일은 언제나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나 혼자 보는 일기장이야 앞뒤가 맞지 않아도, 상투적인 표현투성이라도 별 신경 쓰지 않지만 남 앞에 보이는 글은 처지가 다르다. 내가 그 누군가의 글을 보고 떠올렸을 생각을, 그 누군가가 나에게 한다고 생각하면 때때로 아찔하다. 그래서 글쓰기는 괴로운 일이다.


함께 사는 N에게 무심코 이 괴로움을 토로해보았다. "글쓰기.. 왜 이렇게 어렵지? 난 왜 이렇게 못 쓸까? 내 글은 왜 이 모양일까?.." "왜 그렇게 생각해? 난 너처럼 글 쓸 생각조차 안 해서 네가 글 쓰는 거 보면 대단해 보이던데? 혹시 너 남들한테 잘 보이는 글을 쓰고 싶은 거야?" 멀리 갈 것도 없이 단번에 정곡을 찌른다. 글쓰기가 괴로운 까닭은 누군가의 시선 때문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글을 쓰기 시작한 건, 분명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책을 읽고 나서 해소되지 않는 마음이나 생각들이 있을 때, 글을 쓰면 조금은 풀리는 것 같아서 좋았다. 때때로 나를 초월하는 무언가를 대면할 때면 내 안에 무슨 빛이 스치기도 하였는데, 그 빛을 조금이라도 붙잡아 보고 싶어서 글을 쓰기도 했다. 풀리지 않는 일이 있거나, 해소되지 않는 감정이 있을 땐 그냥 뭐라도 적었다. 그러면 종종 나아졌다. 그러나 이런 감흥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고 이따금씩 까먹었다.


요 근래 글쓰기의 괴로움에 빠져 지냈는데, 글쓰기를 소재로 쓴 소설책이 한 권 도착했다. 2010년에 출간했다가 10년 만에 새 옷을 입고 나타난 강영숙의 《라이팅 클럽》(민음사, 2020)이다. 이 책은 제목대로 글쓰기 모임에 관한 소설이다. 계동에서 글짓기 교실을 열고 살아가는 김작가와 그 딸 영인이 그려가는 이야기를 줄기 삼아 '글쓰기'로 공명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화자인 영인은 "말할 수 없이 지루"한 일상을 살아가는 열일곱의 소녀다. 영인이 보기에 엄마 김작가는 모성애라고는 없는 철부지다. 이름 모를 문학계간지에 등단했다는 이력 하나로 주부들을 모아 글짓기를 가장한 수다 모임이나 떠는 지지리 궁상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영인의 삶도 뭔가 구질구질하다. 십대시절 남들 다 하는 연애를 해보고 싶어 아무 남자한테나 들이대고, 모두 거절당하니 "연애 상대를 남자가 아닌 여자로" 바꾸는가 하면, 글쓰기 교실에 수작 부리러 온 건달을 짝사랑한다. 취업 정보 센터에서 만난 남자와 덜컥 동거를 시작하더니 밑바닥을 치고 헤어지고, 직장에 찌들어 살고 연애는 번번이 실패하다 소개팅에서 만난 남자 따라 미국으로 건너간다. 그런데 그곳은 그야말로 노동지옥이었다.


영인이 글을 쓰기 시작한 건, "내 인생에 구멍이 뻥 뚫린 듯한" 시간 때문이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혼자"였다고 고백하는 영인은 마음 깊이 외로운 아이였다. 그 외로움에 시달리다 친구를 만나 편지를 주고받고 일기를 끄적인다. 그러던 영인은 어느 날 갑자기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영인도 어찌 된 일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저 "내 몸속에 흐르던 차가운 강물이 시킨 일"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형편없는 습작이었지만 영인의 글쓰기는 계속 이어진다. 영인에게 글쓰기는 일상을 돌파하는 힘이자 성장통이었다. 영인은 "연둣빛 봄이 오기 전에 자살이라도 할 것 같은 참담한 심정"때문에 글을 쓴다. 질질 끌려가는 상황을 벗어나고자 글을 쓴다. 글을 아무리 써도 여전히 허점 투성이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누가 알아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그저 글을 쓰는 행위로도 충분하니까. 그렇게 글쓰기와 웃고 울며 살아가던 영인은 어느새 훌쩍 자라나서 이제 김작가가 그러했듯 미국 뉴저지에서 '라이팅 클럽'을 모집한다. 영인은 이제 이렇게 말한다. "한번 써 봐. 인생이 얼마나 깊어지는데."


숱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다시 글을 쓰는 영인의 마음은 무엇일까. 그 마음은 영인이 그렇게 애증 하던 김작가의 마음이기도 하고, 수줍게 계동 글짓기 교실을 찾은 주부들과 해컨색 라이팅 클럽을 찾은 한인들의 마음이기도 하지 않을까. 물론 이 모든 인물과 이야기를 만들어 낸 소설가의 마음이자 이 글을 쓰는 내 마음이기도 할 게다.


소설에서 유독 마음에 남는 장면이 둘 있었다. 첫째, 수줍은 마음으로 라이팅 클럽을 찾은 제인이 영인과 대화하며 자신이 번역한 글들을 "없어도 그만인 것들"이었다고 하는 장면이다. 둘째, 계동 주부 글짓기 교실 회원들의 형편없는 글들을 모은 문집 <정열의 시간>을 보며 영인이 중얼거리는 장면이다. "세상에, 이런 쓰레기들도 있다니! 세상에, 이런 쓰레기들을 보았나!"


이 장면은 역설이다. 어떤 글은 '없어도 그만'이고 '쓰레기' 같다는 점 때문에 귀하고 힘이 있다. "문학은 유용하지 않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던 김현의 말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여기엔 누가 뭐라 하든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무너질 것 같더라도, 이 글쓰기의 공간 안에서 글을 쓰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그렇기에 글이 어떻더라도, 굳이  "발표하지 않을" 마음으로 끄적이는 글은 고귀하다. 그 마음이 담겼다면 이 세상에 없어도 그만인 글은 없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임을 밝힙니다.



글은 말이야, 재미있게 써야 해. 그래야 계속 쓸 수 있어. 그래야 계속 읽을 수도 있어. 다들 시간이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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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촌수필 문지클래식 1
이문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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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生)은 고(苦)라던 불교의 가르침까지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세속은 상처고 "문학은 한 민족이 그곳을 통해 그들의 아픔을 재확인하는, 언제나 터져 있는 상처와도 같은 것이다."(김윤식, 김현) 문학은 현실의 산물이기에 으레 그 안에 상처가 담기는 법인데, 아픈 상처를 굳이 드러내(야하)는 건, 그것이 반성과 치유라는 희망을 품기에 가능한 일이겠다.

이문구의 《관촌수필》은 그러한 상처의 풍경들을 모아놓은 연작소설집이다. 20세기는 세계 어느 곳이나 격동의 전환기였다. 이 땅의 민중들은 근대화와 산업화라는 과제를 떠안고 식민지 지배, 전쟁, 독재의 경험까지 견뎌야 했기에 모순은 짙고 상처는 깊었다. 《관촌수필》은 1941년 충청도 관촌 부락에서 태어나 자란 이문구가 1970년대 소설가가 되어 옛일을 회상하고 옛 친구들을 만나 전해 듣는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기에 그 모순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는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첫 번째 소설인 <일락서산>(해가 서산에 지다)은 화자가 오랜만에 귀향하며 시작된다. 옛 마을에 도착해 처음 발견한 건, 마을의 오랜 터줏대감, "4백여 년에 걸친 그 허구헌 풍상을 다 부대껴내고도 어느 솔보다 푸르던, 십장생의 으뜸다운 풍모로 마을을 지켜온 왕소나무"의 부재였다. 이 장면은 소설이 시작하고 3쪽이 채 넘어가기 전에 펼쳐지는데, 이후 소설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가 암시되어 있다. 화자는 구차스런 동네로 변모해버린 마을을 눈으로 확인하며 깊은 상실감에 잠긴다. '이젠 완전히 타락한 동네구나', '실향민, 나는 어느덧 실향민이 돼버리고 말았다는 느낌을 덜어버릴 수가 없었다', '이제는 어느 한 가지도 그전 그 모습대로 남아 있지 않았다', '진실로 서글픈 일이었다'

화자가 저리도 깊이 그리워했던 건 할아버지, "고색창연한 이조인이었던 할아버지"였다. 말하자면 구한말의 끝자락에 태어난 마지막 양반이었던 할아버지, 상대가 상놈이라면 나이가 많더라도 철저히 하대했던 할아버지, 아흔의 나이에 숨을 거두며 족보만은 잘 간수하라는 유언을 남긴 할아버지, 시대가 변하여 제대로 된 양반 노릇도 못해 본 할아버지, 손자에게 천자문을 가르치며 선비처럼 글만 보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였다. 화자의 아버지는 일찌감치 사회주의 운동에 투신하여 일찍 세상을 떴기에, 화자의 어린 시절 애착과 경외는 고스란히 할아버지를 향해있다.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는 대목은 깊은 서정적 울림을 자아내지만 그런 할아버지에게서 받은 유교적 영향은 한계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 한계는 소설 곳곳에 은밀히 숨겨져 있다.

이어지는 소설들, <화무십일>(열흘 가는 붉은 꽃은 없다)에서는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피난을 내려온 윤영감 일가 이야기를 통해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고, <행운유수>(떠가는 구름과 흐르는 물)에는 유년시절 화자와 친밀하게 지내며 자랐던 부엌데기 옹점이의 가슴 아픈 인생 이야기가 담겨 있으며 <녹수청산>(푸른 산골짜기에 흐르는 맑은 물)에는 거의 유일했던 친구인 대복이의 순박한 삶이 타락해가는 과정이 그려지고 있다.

<공산토월>(빈 산이 달을 토하다)은 가장 깊은 울림을 자아내는데, 자기희생을 무릅쓰고 남을 위해 살다가 젊은 나이에 요절한 석공 신씨를 통해 작가의 정신 속에 굳게 자리 잡고 있는 구원의 인간상을 그려낸다. 문학동네에서 몇 해 전에 펴낸 한국문학전집에 이문구의 중단편집이 《공산토월》이란 이름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작가의 《관촌수필》에서 4편과 그 외 《우리동네》, 《유자소전》,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 왔다》에서 추려서 만든 책이다. 작품들을 추리고 추린 중단편선에 이름을 걸고 나온 걸 보면 평론가들도 가장 인정하는 작품인가 보다. 관촌수필의 여덟 편의 글 중 분량도 제일 많고 가장 비극적이지만 현재의 나가 과거와 화해해가는 과정이 묘사되어 가장 인정받지 않았나 싶다.

이어지는 후반부의 소설들, <관산추정>(고향에서 꼴 베는 사람, 고향의 옛 친구)<여요주서>(그저 그런 이야기에 관한 해설), <월곡후야>(월곡 동네의 밤중부터 아침까지)에서는 회상보다는 현재의 화자가 바라본 농촌의 풍경을 그려낸다. 화자가 직접 찾아가 보거나 친구들을 통해 전해 듣는 농촌은 도시에서 밀려든 향락객들로 오염되어 가는 곳이고, 공권력의 횡포가 제멋대로 자행되는 곳이며 이전에는 없던 끔찍한 범죄들이 벌어지는 삭막한 곳이다.

이상향 같던 유년 시절의 평화가 산산조각 나는 건, 앞서 말했듯 근대화와 산업화, 도시화의 침탈 때문이었다. 평범하고 고요했던 마을에 전쟁과 함께 비극이 시작되고, 미군이 몰려들어 농촌민들의 자존심을 짓밟고, 자본의 깊숙한 침투로 땅이 오염되고, 각종 이권사업으로 관계들이 단절되고 공동체가 깨어지는 일들 앞에 사람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전쟁통에 밥 한 그릇도 나눌 줄 알았던 인심은 서로 반목하고 의심하며 살아가야 하는 냉혹한 풍경으로 바뀌었다.

작가는 문명의 이기 앞에 갈가리 찢기는 공동체를 바라보며 철저한 무력감과 그리움에 사로잡히지만 그가 이상향처럼 그리워하던 풍경은 유교의 질서였고 극도의 가부장 사회였다. 물론 작가가 그 질서 자체를 옹호하는 건 아니다. 또한 부엌데기였던 옹점에게선 그 어떤 이한테서도 보지 못한(심지어 사회당원이던 아버지한테서도) 주체적인 인간상을 발견할 줄 알았을 만큼 감수성도 트여 있었다. 할아버지와의 긴밀했던 관계와 그 영향은 뿌리 깊지만 그가 이후에도 계속해서 농촌을 주목하며 민중의 목소리와 숨결을 채취해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일관성 있게 자기 자신을 넘어서려는 노력을 기울여온 것 아닌가 싶다.

이문구는 《이문구 소설어 사전》이 따로 나올 정도로 충청도 방언을 비롯한 토속어들을 거침없이 쓰는 것으로 유명한데, 정겹고 구성진 말들은《관촌수필》의 정서적 울림을 배가시킨다. 여러 판본을 거쳐 나온 2018년 문학과지성사 출간본에는 부록으로 낱말풀이가 딸려있다. 모르는 어휘는 뒷장을 참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흐름이 끊긴다는 단점이 있다. 문맥상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어휘들이 꽤 많아서 읽으려면 단단히 마음을 먹어야 한다. 귀찮을 수 있고, 그 과정이 힘겨운 탓에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처럼 읽다 포기하는 사람도 적지 않지만, 그만큼 풍요로운 언어의 숲을 만날 수 있다. 중간중간 다소 호흡이 긴 문장들도 돋보이는데, 작가의 입말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리듬이 좋고 막힘 없이 읽힌다. 모국어의 아름다움을 찾는 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고, 두고두고 읽을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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