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은 다른 곳에 - 교양선집 16
밀란 쿤데라 지음, 안정효 옮김 / 까치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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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의 두 번째 장편 소설 《생은 다른 곳에》(까치, 1988, 안정효 역)는 그가 1970년 체코 공산당에서 추방당하기 전에 쓴 두 편의 소설 중 하나다. '생은 다른 곳에'(La vie est ailleurs)란 말은 랭보가 했던 말로 전해지는데,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을 거쳐 1968년 5월, 혁명의 중심 파리에 도착한다. 쿤데라는 이 말을 빌려 혁명과 젊음에 대해 쓰고자 한다. 그 현현이라고 할 수 있는 시인의 삶을 통해 말이다.

시인의 탄생과 성장

시인 야로밀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시인의 아버지는 야로밀을 갖게 된 걸 한 순간의 사고로 치부해버리고, 무책임하게 떠나버린다. 거의 등장과 함께 사라진 아버지의 목소리는 소설에서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시인의 어머니는 남편에게 받지 못한 사랑까지 더해 어린 야로밀에게 쏟아 부으며 함께 살아간다. 한편 어린 야로밀은 예술에 남다른 재능을 보인다. 시인의 어머니는 어느 날 야로밀이 그린 그림 <개머리 달린 사람>을 보고 심상치 않음을 느낀다. 우연히 만난 한 화가에게 그 그림을 보여주는데, 화가는 야로밀의 재능을 알아채고 그의 스승이 된다. 이제 야로밀은 화가 밑에서 예술을 배워가기 시작한다.

야로밀을 시인으로 발돋움 시킨 건, 그의 삶에 찾아온 여성들이다. 야로밀은 어린 시절 하녀 마그다에게 처음으로 성적 호기심을 갖게 되는 데, 마그다를 위해 시를 지으며 처음으로 시적 경험을 한다. 그 후 자라면서 욕정과 '남자다움'에 대해 탐구해간다. 대학생이 되어 찾아간 정치모임에서 한 여학생을 만나지만 여러 차례 시도에도 불구하고 실패하고, 우연히 만난 (소설에서는 못생겼다고 표현되는) 붉은 머리 점원을 만나면서 비로소 '남자다움'을 느끼며 시를 쓴다. 자기 손아귀에서 벗어나려는 야로밀에게 어머니는 질투를 느끼지만, 그럴수록 야로밀은 더욱 멀어질 뿐이다.

청년 야로밀은 내면에서 솟아나는 시를 널리 알리고 싶었지만 그 시가 실릴 곳은 별로 없었다. 그러던 중 체코에 공산주의 혁명의 바람이 불고, 야로밀은 사회주의 리얼리즘 시인으로 거듭난다. 바야흐로 "처형자와 시인이 나란히 앉아 통치한" 시대에 그 시인이 된 것이다. 야로밀이 처음부터 그 길을 걷고자 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화가와 함께 예술을 그 자체로서 추구되어야 한다는 반대편에 서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스승이 그 친구들과 순수예술과 참여예술을 두고 논쟁을 벌일 때, 야로밀은 순전히 반항하고자 하는 마음에 반기를 든다. 스승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기 존재감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일까. 여하튼 이제 야로밀은 혁명의 기수가 되어 잘 나가는 시인이 된다.

그는 드디어 참된 생('참된 생'이라고 야로밀이 이해했던 것은 행진하는 군중과, 육체적인 사랑과, 혁명의 구호가 소용돌이치는 세계였다)의 영역에 이르렀고, 이제 그가 해야 할 일이라고는 이 새로운 삶에 자신을 완전히 내맡기고 그 삶의 바이올린 현이 되는 것이었다.

그는 시적인 정신이 마음속에 가득하다고 느꼈으며, 붉은 머리의 아가씨가 좋아할 만한 시를 쓰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생은 다른 곳에

바라던 시인이 되어 야로밀은 행복했을까? 성공한 체제의 시인이 된 야로밀은 우연히 어린 시절 친구, '관리인의 아들'을 만난다. 친구는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 가정까지 꾸려 살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는데, 시인이 된 야로밀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친구는 야로밀의 시를 액자에 넣어 사무실에 걸어놓을 정도로 야로밀을 우러러 보고 있었다. 허나 그런 친구를 보며 야로밀은 부러움을 느낀다. '참된 생이 바로 저기에 있었구나' 느끼며 말이다.

그는 야로밀의 존재를 끊임없이 능가하는 험악한 아름다움을 가진 친구의 '참된 생'이 부러웠다. 나이가 같은 친구와 얼굴을 마주 대하고 그는 또다시 자신이 아직 참된 생을 뚫고 들어가지 못했음을 깨닫고 마음이 아팠다.

시인의 파멸

그런 야로밀을 파멸로 이끈 건, 나르시시즘의 환영이었다. 혁명 정신에 도취된 야로밀은 오해에서 비롯된 일로 여자친구인 붉은 머리의 오빠를 혁명의 적으로 당국에 고발하기에 이른다. 오빠 대신 붉은 머리가 구속되어도 야로밀은 자기 잘못을 알지 못한다. 오히려 그는 순수혁명의 이상에 대한 시를 짓고, 최고의 시라고 평한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걸까. 말미에 이르러 야로밀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불같은 혁명의 시기, 야로밀은 불의 죽음을 꿈꿨지만 끝에 이르러 마주한 건 차가운 물의 죽음이었다.

자유를 꿈꾸는 젊음은 언제나 시대와 불화하기 마련이고, 그 젊음은 단지 나이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혁명과 젊음의 현현인 야로밀의 삶은 그 자유를 포기했을 때, 그러니까 참된 생이 다른 곳에 있을 거란 사실을 망각했을 때 이미 끝나버린 건 아니었을까? 그리하여 시인이 자유를 억압하는 혁명가 옆에 서서 그 심판에 동조하며 찬양하는 순간에 말이다.

소설의 시작에서 끝까지 야로밀의 생애가 그려지는데, 중간 중간 난데없이 시점을 달리하는 대목이 끼어 있다. 그건 때로는 야로밀의 또다른 자아이기도 하고, 레르몬토프나 랭보 같은 시인의 시점이기도 하다. 쿤데라는 서문에서 이 책의 창작에 대해 "시의 비평이면서 동시에 그 자체가 시가 될 수 있는 소설"을 쓰고자 했다고 밝히는데, 그 기법의 일환으로 보아야 할까? 그 시도가 얼마나 성공을 거두었을까 평할 재간은 없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젊음을 꿈꾸는 한 이 책은 여전히 유효할 거란 사실이다.

그는 야로밀의 존재를 끊임없이 능가하는 험악한 아름다움을 가진 친구의 ‘참된 생‘이 부러웠다. 나이가 같은 친구와 얼굴을 마주 대하고 그는 또다시 자신이 아직 참된 생을 뚫고 들어가지 못했음을 깨닫고 마음이 아팠다.

그는 드디어 참된 생(‘참된 생‘이라고 야로밀이 이해했던 것은 행진하는 군중과, 육체적인 사랑과, 혁명의 구호가 소용돌이치는 세계였다)의 영역에 이르렀고, 이제 그가 해야 할 일이라고는 이 새로운 삶에 자신을 완전히 내맡기고 그 삶의 바이올린 현이 되는 것이었다.

그는 시적인 정신이 마음속에 가득하다고 느꼈으며, 붉은 머리의 아가씨가 좋아할 만한 시를 쓰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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