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었던 여성의 자리 되찾아주는 이야기
이 소설의 특이점을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바로 여성이 전면에 등장하는 소설이란 점을 꼽을 수 있을까. 일단 주요 등장인물, 에벌린과 니니, 리지와 루스만 봐도 다 여성이고 500쪽이 넘는 분량만큼 많은 인물들이 나오지만 멀쩡한 남자는 별로 없다. 그러나 여성이 주요 인물로 나와서가 아니라 이야기의 주체로 등장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저는 그저······ 딱 그 중간에 끼어 있는 기분이에요. 저에겐 여성 해방 운동이 너무 늦게 왔어요······. 결혼을 꼭 해야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더라고요. 부인께서는 결혼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실 것 같네요. 제가 뭘 알았겠어요? 이젠 뭔가 바꾸기에는 너무 늦었어요······. 인생이 그냥 제 곁을 스치고 지나가 버린 것만 같아요.”
에벌린은 어린 시절부터 눈치 보며 살아왔다. 사회와 교회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여성상을 좇아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살아왔는데, 지금은 콤플렉스와 열등감 덩어리로 무기력한 중년이 되었다. 남편과의 관계는 소원하고, 스트레스-군것질-다이어트의 순환고리는 강박이 되어버렸다. 그러던 에벌린이 니니를 만나 스레드굿 가(家)의 이야기를 들으며 변해간다.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이지 스레드굿의 이야기에 매혹되어 자기 자신의 본모습을 긍정하고, 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에벌린은 난생처음으로 자신이 남자였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남자들이 그토록 중이 여기는 이런저런 특혜를 누리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절대로. 단지 남자가 가진 힘만을 갖고 싶었다. (···) 그리하여 나이 마흔여덟 살에 앨라배마 주 버밍햄에 사는 에벌린 카우치 부인은 믿을 수 없는 비밀스러운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
에벌린이 그렇게 매혹되었던 이지 스레드굿은 누구일까? 휘슬스톱의 이지는 스레드굿 가의 막내이자 천방지축 꼬마다. 이지는 보통 여자아이들과는 달리 유별났다. 치마나 드레스는 불편해서 입지 않았고, 다른 아이들과 달리 외모 꾸미기는 뒷전이고 밤새워 낚시하거나 모험하는 걸 즐겼다. 형제나 부모가 뭐라 하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로 놀러 온 루스 제이미슨을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여자인 두 사람이 그냥 이어 질리는 만무하다. 후에 루스가 결혼하고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자 이지는 루스를 구출해내고, 우여곡절 끝에 같이 카페를 꾸리며 살아간다.
이야기가 이러하니 페미니즘 소설이나 퀴어 소설로도 잘 알려져 있다. 민음사의 작품 소개에 따르면 페미니즘 단체인 <페미니스타>가 선정한 20세기 100대 소설이라고도 하고, 영화는 LGBT 작품들을 뽑아 시상하는 단체(GLAAD)에서 수여하는 상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지와 루스 사이에 성적인 코드는 거의 드러나진 않는다. 그저 둘 사이의 애정이 암시되어 있을 뿐이다. 소설을 발표할 당시의 분위기를 고려한 걸까 싶기도 하지만 그런 방식이 나쁘지는 않다. 오히려 은근해서 더 그윽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