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의 기술 - 600년 병영상인의 비밀
주희춘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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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의 기술 

 

- 주희춘-

 

북한에는 개성상인이 있다는건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었지만. 내가 살고 있는 고향이랑 아주 가까운 땅

전남 강진의 병영상인이 있다는건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접하게된 계기가 되었다.

이책은 전남 강진의 병영상인의 역사를 추적하기 위하여 지난 5년동안 시장 곳곳을 누비벼 얻어낸 결과물이다.

 

 

 병영상인의 뛰어난 상술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병영상인에 대해서 알고 있는 정보의 양의 적다. 그것은 약간의 시대적 차원에서 그러하다.

병영상인의 주 활동시기는 조선시대라고 볼수 있다. 당시 조선시대는 봉건적 질서 유지를 위해 농업을 중시하고 상업을 금비하는 '중농억상' 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다.

 

병영상인의 알아볼려면 세월을 많이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해성왕 장보고의 청해진은 지금은 완도라고 이야기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곳이 강지현으로 소속되어 있었다. 병영상인은 장보고의 후손답게 상업에 뛰어난 재능이 보였고, 지리적으로 강진은 아주 우수한 위치해 놓여있다.

완도, 장흥, 해남, 제주도를 연결하는 해상을 지니과 있고, 여기에 더 확대해서 일본과의 교류도 다질수 있었으면, 영암, 해남, 장흥등에서는 우수한 농산물이 많이 재배되어, 강진은 지리상 높은 강점을 보였었다.

 

전라병성성이 축조되던 시부부터  자연스레 상업이 발달하게 되었고, 병셩이 폐영되면서 이들은 자연스레 흩어지기 시작했다.

병영상인들이 살아남기 위해 시작한 일은, 병영성 중심에서 강진읍, 장흥, 완도, 영암, 제주도, 서울, 만주까지 시야를 넓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도 나름의 법칙은 있었으니. 타지역에서 장사를 시작할때는 병영 사람들이 그곳에서 먼저 시작한 업종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친절, 성실, 근면, 신용으로  병영상인만의 색채를 지니고 있었다.

 

한가지 역사적으로 재미있는 사실을 이야기 하자면, 강진병영성에, "하멜 표류기" 라는 네덜란드 출신의 하멜 일행들이 폭풍우에 조선땅을 받게 되었는데 그들 역시 상인이였다. 그러던중 강진 병영성에서 7년간이라는 억류 생활을 했다는 사실도 알게되었고, 강진에는 "하멜 기념관"있다.

 

병영상인이라는 자부심 하나로 그들은 뛰어난 상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평생을 장사를 일삼은 사람들도 많았으며, 어린시절부터 밑바닥부터 시작했기에, 큰 성과를 얻을수 있었으며, 늘 성실한 자세와 근검한 모습이 그들은 성공으로 이끌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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