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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개혁의 길을 묻다 - 새로운 한국교회를 위한 20가지 핵심 과제
강영안.구교형.권연경 외 지음 / 새물결플러스 / 2013년 4월
평점 :
(1) 요약
“이 책을 통해 모든 피조물을 자유케 하고 더욱 온전케 하시는 복음의 힘, 성령의 힘, 곧 그 공공의 가치와 힘을 모든 한국교회에 널리 함께 나누는 은혜가 넘치길 갈망하며 기도합니다.”(13쪽)라는 한완상의 서문을 필두로, 총 20명의 저자가 한국교회의 어두운 영적 현실을 통감하며 ‘신앙의 근본정신’과 ‘교회 문화’, 그리고 ‘교회 구조’와 ‘참여 방식’에 대한 개혁을 갈망하며 쓴 책이다.
내용별로 살펴보면 먼저, 한국교회의 ‘부패와 무능의 원인’은 신학적 빈곤 때문이고, 신학적 빈곤은 근본적으로 복음의 부분적 이해와 오해, 그리고 예정론의 의미와 의도에 대한 왜곡,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의 복음에 대한 신학적 사고 능력의 미숙함에 의한 것이다. 또한, 선교에 대한 편협한 이해와 미신적 영성을 조장하며 이단 사상에도 쉽게 넘어가도록 하므로 신학적인 성숙과 복음의 올바른 이해, 그리고 그에 합당한 삶이 중요하다.
둘째, 한국교회의 ‘반지성주의’에 대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성’과 ‘이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적용이 필요하다. 즉, 지성은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고 이성은 ‘지성에 의한 추리 능력’인데, 이 두 가지를 신앙과 신앙생활에 올바르고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이 반지성주의에서 벗어나 건강한 신앙(생활)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셋째, 목회자가 ‘빈곤한 설교’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본주의’와 ‘신본주의’의 극단적인 대립의 설교는 지양하고, 오히려 인문학적 감수성과 상상력을 동원해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추구하는 도전의 설교를 지향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이성과 감성, 의지와 영성, 신체의 오감 등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창조 선물일진데 어느 것 하나 무시하고 소홀히 다룰 수”(64쪽) 없기 때문이다.
넷째,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으로 심각한 도덕적 타락을 자행하면서도 회개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구원은 ‘행위’와는 상관없이 ‘오직 믿음으로’ 혹은 ‘오직 은혜’로 얻는다고 주장하는 ‘값싼 구원론’에 있다. 그러나 이런 식의 구원론은 성경에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성경은 구원이 현재의 인내와 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이라 가르친다.”(88쪽) 따라서, 현재의 삶을 무시하고 구원을 말하는 것은 잘못된 구원론이다.
다섯째, 한국교회 ‘성령 운동’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성령의 인격보다 오히려 성령의 은사나 초능력에 더 관심과 매력을 갖고, 성령 운동을 마치 무속 혼령 운동처럼 재앙을 물리치고, 성령에게 현세적인 복을 빌며, 하나님 말씀보다 인간의 체험과 감정을 더 우선시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잘못된 성령 운동은, 결국 복음 사역의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십자가 보다는 오히려 영광과 능력만 강조하는 영광의 신학으로 전락한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가 깊은 영적인 수렁에서 헤어나오는 길은 십자가로 복귀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117쪽)
여섯째, 한국교회에 여전히 자리 잡고 있는 ‘구약적 사고방식과 의례’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구약의 모든 것이 “예수 안에서 전부 폐지되고 예수 안에서 전부 온전케 된 구약이라는 원칙 위에 서게 될 때, 우리는 구약의 여러 규정과 상황들을 오늘에 올바르게 적용할 수 있다.”(148쪽)
일곱째, 담임목사직 세습이나 재정 비리, 직분 매매, 물량적 성장주의 등 한국교회의 부정과 비리를 양산하는 ‘물질 숭배 사상’은 근절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성경 해석을 왜곡(물질을 숭배하면서도 하나님을 숭배하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현상)하고, 복음을 탐욕의 복음(하나님은 믿는 사람을 부자로 만들고 경제의 필요와 탐욕까지도 충족시키시는 분이라고 선전하는 복음)으로 전락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질 숭배 사상’을 극복하려면, 참된 구원의 가치를 재정립하고, 물질 청지기 사상을 간직하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며, 친자본주의 자세를 버리고 소박한 삶을 살아야 한다.
여덟째, 게토화된 교회 언어는 비성경적 표현일 뿐만 아니라, 잘못 사용하면 권력 언어나 폭력 언어, 그리고 배제 언어가 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만 사용하는 게토화된 교회 언어는 가장 쉬운 일상용어로 풀어 사용해야 하고 또한, 남의 마음에 상처 내지 않도록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주의해야 한다.
아홉째, 교회 안에서 여성 성차별을 해결하려면 먼저, 교회가 “여자들에게 하나님의 질서가 무엇이고 그 속에서 여자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어야 한다.”(200쪽). 그리고 여성들 스스로가 믿음의 대상이 하나님임을 분명하게 확인할 뿐 아니라, 교회에서 하나님의 뜻 외에 다른 것을 기준 삼는 것에 대해서는 분명히 반대해야 한다. 또한, 공식적 모임이나 회의에 참여해서 말하는 훈련과 성경을 제대로 읽는 것이 중요하다.
열째, 쇼로 변질된 예배를 회복하려는 방안으로는 첫 번째, 예배 본질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이고, 예배는 철저히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예배의 시공간은 어느 때 어디서나, 예배의 마음가짐은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이다.). 두 번째, 예배자 모두가 예배를 관망하지 않고 예배에 참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세 번째, 하나님의 창조와 예수님의 부활, 그리고 성경 말씀과 성찬 예식의 축제 분위기를 즐겨야 한다.
열한째, 메가처치(지나치게 큰 대형 교회) 지향 현상은 어떻게 고쳐야 할까? 이 같은 현상은 ‘잘못된 교회론’에 근본 원인이 있다. 따라서, 교회는 “계층, 민족, 인종, 성별 등 그 모든 생물학적,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분리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나라요, 하나님의 백성을 다시 회복한다는 뜻”(242쪽)의 ‘공교회성’을 가져야 할 뿐만 아니라, 구성원의 기쁨이나 슬픔이 전체의 기쁨이나 슬픔이 될 수 있는 ‘공동체성’을 강조해야 한다. 그리고 ‘회복된 교회론’의 본질에 근거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다져야 한다.
열두째, ‘교만한’ 담임목사와 ‘태만’한 평신도의 담합 속에 나타나는 ‘사제주의’를 개선하려는 방안은, ‘만인제사장설’을 통해 ‘사제주의적’ 독재 공동체를 ‘은사 민주주의적’ 질서 공동체로 변화시켜, 평신도의 신앙 역량을 증강하는 것이다.
열 셋째, 교회 세습의 악행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목회자가 하나님의 뜻이 특정한 개인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통해서도 나타난다는 사실을 숙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과 야망을 내려놓아야 한다.
열 넷째, 국가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납세의 의무를 회피하는 것은, 성경 말씀(롬 13:7; 마 17:24-27)에 비추어볼 때 목회자로서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다. 따라서, 목회자도 나라의 국민으로서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국민의 의무를 감당해야 한다.
열 다섯째, 학교 존립을 위한 학생 과잉 모집과 교단별 무분별한 목사 안수, 그리고 목회자 과잉 현상의 원인이 되는 ‘신학교 구조 조정’이 절실한데, 이를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신학 대학들이 경제적 논리보다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리고 특성 있게 운영(목회자들의 재교육 기관, 평신도 교육 기관 등)되어야 한다.
열 여섯째, 신학적 건강성, 도덕성, 조정력(정치력)을 상실하는 한국 교회 교단의 개혁이 시급하다. 따라서, 총회의 비효율적인 임원 임기 개선과 책임제 도입, 총대 인원 축소, 사회적 현실과 필요를 포함하는 안건, 신학교 구조 개혁, 그리고 세대별, 직능별 총대 배정 등 새로운 정책 도입이 요구된다. 또한, 교단을 초월하는 ‘연합 운동’을 모색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다.
열 일곱째, 교회와 사회를 구분하는 신앙생활은 교회를 집단적 이익집단으로 전락시킨다. 그러므로, 한국교회가 공공성을 회복하려면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이 기독교 시민으로 서의 사는 삶을 실천하며 살아야 하고, 또한 하나님의 조직으로서의 교회 역시 공공의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362쪽). 이를 위한 방법으로는 그리스도인의 공공 참여 의식 전환이 필요하고, 세상 활동에 기독교 가치관을 부여하고, 사회 공동의 문제에 관심을 두는 것이 필요하다.
열 여덟째, 메시지를 듣는 사람의 상황과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외치는 공격적 선교는 오히려 교회에 대한 심각한 거부감만 준다. 공격적 복음 전도는 일방적인 의사전달이므로 설득력보다는 오해와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음의 내용을 명확하고 충분하게 전달할 방법이 필요한데, 전도하는 자가 예의와 배려를 갖고 선한 행위와 성품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열 아홉째, 오늘날 환경 위기에 대해 교회는 너무 무관심하다. 그러나 사실 교회는 그 누구보다도 더 먼저 환경에 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생각하고 미래에 대해 책임져야 할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과소비를 절제하고 청빈한 삶으로 전환하는 생활 방식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이웃 사랑과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강조하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같은 형제임에도 분단되어 대치하고 있는 남북 관계는 교회가 풀어야 할 과제이다. 원수 갚는 일이 하나님의 소관이라는 말씀을 근거로 원수가 어려울 때 섬기고 사랑하면 결국은 하나님의 공의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신적이고 영적 차원에서 구현되는 용서와 화해 그로 인한 샬롬에 주목해야 한다.” (428쪽)
(2) 서평
본서는 현재 한국 교회가 처한 상황과 해결해야 할 사항들을 ‘근본정신’과’문화’와 ‘구조’, 그리고 ‘참여방식’ 영역에 걸쳐서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고 있는 동시에, 교회에 도전을 던져주고 있다. 읽는 내내 목회자로서 마음이 무겁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와 하나가 된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사는 사람이 되며,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사람은 마치 그리스도처럼 선한 행실의 삶을 살게 된다.”(42쪽)는 내용은,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성화의 삶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다시금 개혁의 사명과 열정과 도전을 준다. 또한, 주제마다 교회가 그냥 간과할 수 없는 아주 중요한 내용이다.
특별히 인상 깊었던 내용은, “인간의 이성과 감성, 의지와 영성, 신체의 오감 등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창조 선물일진데 어느 것 하나 무시하고 소홀히 다룰 수”(64쪽) 없으므로 ‘인본주의’와 ‘신본주의’의 대립을 지양하고 인문학적 감수성과 상상력을 동원해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추구하는 도전의 설교를 지향하라는 것이다. 사실 목회자로서 ‘인문신학’보다는 ‘절대 신학’의 기준과 잣대로 설교를 준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열한째, 메가처치 지향 현상을 고치는 방법의 하나로 ‘공교회성’을 가져야 할 뿐만 아니라, 구성원의 기쁨이나 슬픔이 전체의 기쁨이나 슬픔이 될 수 있는 ‘공동체성’을 강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242쪽). 이 주장은, 필자가 준비하고 있는 논문의 주제로 ‘21세기 소형교회의 활성화 전력’의 핵심 요소인 ‘소형 교회들의 연합’ 전력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다.
더불어 여덟째, 게토화된 언어에 대한 부분에서는 제목과 내용의 잘 연결되지 않는 아쉬움이 있다. 차라리 제목을 ‘교회 용어 제대로 알고 사용합시다!’로 바꾸거나 아니면, 제목에 맞는 내용을 더 많이 첨부했으면 독자가 이해하기가 훨씬 쉬웠을 것이다. 그리고 성경 구절 뽑기를 주술로 치부하면서 “1년을 시작하는 신년예배에서 주술적 행위가 연상되는 말씀 뽑기를 할 때, 1년간 삶의 예배가 혼란스럽다.”(178쪽) 는 저자의 주장은, 너무 극단적이고 독단적인 결론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성경에 등장하는 ‘제비뽑기’는 어떻게 이해할까? 목회자가 기도와 묵상으로 준비한 ‘성경 구절’을 성경에서 보여준 ‘제비뽑기’ 방식으로 교인들이 뽑을 때, 그 행위를 굳이 ‘주술’로 치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20장의 “병든 세상의 영적 의사인 교회가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바른 처방을 할 수 있다. 복음과 상황은 긴밀히 대화하며, 상황은 복음에 입각해 냉철하게 분석되어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의 부르심이 구체화되고, 그 소명에 순종하여 세상을 변혁하는 역동적인 교회,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자리를 잡게 될 것이다.”(418쪽)라는 언급은, 마치 본서의 결론과 같아서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