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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이여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 시대의 격랑을 헤쳐나간 젊은 영혼들의 기록
황광우 지음 / 창비 / 2007년 6월
평점 :
황광우 선생의 아들이 아버지와 함께 시청 앞에서 보낸 87년의 6월을 기억하지 못하듯, 나 역시 80년에 광주에 있었으되 그때의 광주를 기억하지 못한다. 이 책은 80년에서 87년 사이의 역사의 현장을 몸소 겪은 그가 그 시절을 알지 못하는 아들과 술자리에서 마주앉아 이야기를 건네듯 쓴 글이다. 그는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어떤 교훈을 전하려 한다거나 '너는 왜 이렇게 살지 않느냐'고 질책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그와 그의 세대가 경험한 그대로를 생생하게 전하고 있을 뿐이다.
황광우 선생은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그 이야기에는 당시의 잔혹한 정국을 신념의 힘으로 헤쳐나간 '또다른 황광우'들의 이름과 행적이 담겨 있고, 또 이들은 중간중간 직접 이야기를 이어가기도 한다. 밤새 등사기로 유인물을 만들고, 조금이라도 더 늦게 잡히기 위해 건물 옥상에서 줄을 매달아 허공에서 시위를 하고, 학교를 그만두고 공장에 위장취업하고, 온종일 최루탄에 맞서 싸우다 형사들을 피해 담을 넘고, '턱' 치면 '억'하고 죽을지도 모르는 온갖 고문을 당하는 그 '황광우들'의 '일상'에는 항상 그들과 함께 투쟁에 헌신하는 형제가 있었고 목숨을 바친 선후배와 동료가 있었다. 구부러진 막대를 바로 펴기 위해 그 반대편으로 자신을 내던진 이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는 지금의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87년 20주년을 기념해 요 근래 여러 매체에서 이 시절을 회고하는 기획을 내놓고 있다. 이 책이 그 시절을 겪었던 이들에겐 그때를 되짚어 지금을 살피는 기회가 될 테고, 그 시절을 겪지 못한 나와 같은 이들에겐 간접적으로나마 그 시절을 접하는 기회가 될 테다. 정말 술자리에서 황광우 선생과 마주 앉아 이 이야기를 들었다면 이런 너절하고 뻔한 글을 감상이랍시고 늘어놓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돼먹지못한 글이나마 남기는 것이 그(와 그 세대)의 젊은 날의 일부를 엿본 것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그래야 다음엔 조금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테니까.
- 99페이지의 '주었다'는 '주웠다'의 오기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