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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ㅣ 비룡소의 그림동화 294
주나이다 지음 / 비룡소 / 2021년 9월
평점 :
4살, 7살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나는 그림책을 볼 때 제일 먼저 첫째 아이의 눈으로 본다. 그림책 세계에 눈을 뜬 것도 그녀 덕분이니 성인 또는 직업인으로 읽는다 할지라도 어쩔 수 없이 엄마의 입장에서 ‘내 아이와 재밌게 읽을 수 있나?’를 묻는다.
이 책은 글이 없는 그림책이다.
지금까지 아이랑 읽은 글 없는 그림책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데이비드 위즈너의 <이상한 화요일>, <구름 공항>, 에런 베커의 <머나먼 여행> 정도다. 유명하다기에 구입했는데 즐겁게 읽은 것도 그렇지 못한 것도 있다.
하지만 주나이다의 <길>은 7살 아이가 먼저 그 진가를 알아봤다. 표지의 화려함에 반해 책을 펼치더니 아무 말없이 끝까지 다 읽고 다시 거꾸로 보았다. 그 모습이 좀 의아해 옆에 슬그머니 앉아 있으니 갑자기 책을 읽어주겠단다.
“이 남자아이와 고양이는 지금 여행을 떠났어. 기차의 나라, 책의 나라, 물의 나라, 우주의 나라, 산타할아버지의 나라를 갔다가 빨간색 마을에서 여자친구를 만나게 되!”
그러더니 갑자기 책을 덮는다. 거꾸로 펼치더니 이번엔 여자아이의 이야기를 한다.
“왜 잘 보다가 덮고 뒤부터 보는 거야?”
“둘이 만나서 어디를 가는지 아까 멈춘 거기부터 봐야지!”
엄마는 책을 보다 멈추고 다른 쪽부터 보는게 불편했는지 말이 많았다.
“잘 들어봐! 이렇게 보는거야.”
여자아이도 강아지와 함께 집에서 출발해 여행을 떠났다. 음악의 나라, 나무의 나라, 놀이동산의 나라 등을 지나 빨간색 마을에서 남자친구를 만난다.
‘아! 이 책은 가운데에서 끝이 나는 것이었구나!’
각 나라마다 어떤 모양의 집이 있고,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들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손가락으로 길을 따라가보기도 하고 뒤집어도 보고 이 나라는 재밌겠다, 이 나라는 신나겠다하면서 꽤 오랜시간 책을 보았다.
아이와는 차마 나누지 못했지만 이 책은 인생을 다루고 있다. 삶은 때론 즐겁기도 아름답기도 유쾌하기도 하지만 때론 무섭기도 기괴할 때도 있다. 그렇게 각자 자신의 삶을 살다가 때론 친구를, 인생의 단짝을 만나 함께 길을 떠날 수도 있다.
함께 하는 길은 또 어떨까?
그 다음의 이야기는 독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