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문항 킬러 킬러
이기호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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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를 끝내고도 남아있는 숙제]


🔫 입시 컨설턴트는 킬러 문항을 죽인 존재라는 의미로 정부를킬러 문항 킬러라고 불렀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바로 그런 정부를 죽이는 존재라며킬러 문항 킬러 킬러라고 소개했다. p.33 킬러 문항 킬러 킬러


24년도 수능이 끝났다. 학생과 부모님들에게는 내년 초까지 긴장을 풀지 못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겨울이겠지만 큰 산은 하나 넘었다고 볼 수 있다. 수능에서 벗어난 지금에야 지난 그때를 돌아보니 아찔하다. 하지 않는 건 선택지에 존재하지 않아서 그냥 했었는데 큰 마음가짐이 아니었음에도 이상하고 힘든 시간이었다.


『킬러 문항 킬러 킬러』는 14명의 작가들이 입시 경쟁, 학교 폭력, 사교육 열풍, 부모와 자녀의 진로 갈등, 청소년 인권 등의 주제를 다룬 단편 소설집이다. 각 단편들의 길이가 10쪽에서 20쪽 정도로 짧은 분량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입시 교육을 겪은 사람이라면 공감하고 한 번쯤 봤을 법한 이야기가 섬세하게 쓰여 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학생도 부모도 선생님도 함부로 비난할 수 없게 된다. 복잡하고 엉켜있는 입시제도의 문제를 그저 킬러 문항을 없애는 것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도 더욱 체감하게 된다. 매년 수능 소식을 마주한다. 그 틀 안에서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 하는 학생의 입장에서 벗어나서 자유로워진 줄 알았는데 미래의 아이를 생각하면 마음은 복잡해진다. 아이가 없다 하더라도 입시 제도는 한국을 꽤 긴 시간 동안 괴롭히는 원인임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을 터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입시가 끝나고 놓인 문제들을 외면하지 않는 것, 몇십 년이 지나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 이 제도가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에 있다


작가들이 써내려가는 이야기는 현실과 맞닿아 있어 날카롭고 슬프기도 하다. 하지만 외면하지 않고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은 애틋하다. 짧은 호흡으로 부담 없이 읽기도 좋다. 이야기를 속도감 있게 풀어 반전도 담겨있다. 이제 끝났으니 나와는 상관없는 문제라 생각하지 말고 이 책을 외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 "공정한 경기라는 건 애초에 존재한 적이 없어. 오늘 고사장에 들어가는 수십만 명 중에는 너처럼 과외식 특강을 받으며 준비한 아이도 있고, 학원비가 없어서 학교 수업만 받아야 했던 아이도 있어. 그리고 지금 진짜 네 경쟁자라고 할 만한 애들은 이 약을 다 먹었을 게다." p.35 킬러 문항 킬러 킬러


🏷️ 그렇다고 망설임이 없었던 아니다.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답을 기재해 넣으려는 순간, 마음에 커다란 파동이 일었다. 진짜? 진짜 이런 시를 정확하고 비판적으로 낭독해야 한다고 생각해? 다시 읽어보니 시가 너무 따뜻하게 느껴졌다. 다정하고 따뜻하게 읽어야만 하는 편의 시가 있다면 바로 시일 것이다. 그러나 막상 펜으로 칸을 채우려 하면 정확이라는 단어가 눈앞에 커다랗게 떠올랐다. p.61 그날 아침 나는 원짜리들 앞에 있었는가


🏷️ 마이클은 갸웃대며 물었다. “그러면 아이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아이가 되나요?” 그건 마이클이 처음으로 영어를 전혀 섞지 않고 건넨 말이었는데도 오히려 난생처음 듣는 외국어처럼 낯설게만 느껴졌다. p.77 다른 아이


🏷️ 규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 결국 윤은 하나뿐인 아들의 의견에 굴복했다. ‘하나뿐인 아들이란 점이 윤을 초조하게 했다. 대안학교 선생님은 절대 세속에 찌든 전남편의 말에 넘어가면 된다고 말했지만, 하나뿐인 아들, 하나 잘못되면 어떡하지 싶은 불안이 지금까지 지켜온 윤의 소박한 행복을 우습게 짓뭉갰다. p.138 바퀴만


🏷️ "아저씨, 저는요. 실수도, 실패도 싫어요. 그런 쌓이면 낙오자가 되는 거랬어요. 가난하게 거랬어요. 불행할 거라고요." 실수와 실패가 앞으로 나아가는 징검다리가 되는 것을 다른 조각인간들을 통해 지켜봤다고 말해주고 싶었으나 입을 다물었다. 결국 스스로 구해야 하는 답이었다. p. 151 민수의 손을 잡아요


🏷️ 우는 아이를 끌어안았는데 어깨 끝에 어느 날의 수가 있었다. 콧물을 줄줄 흐르고 삼킬 때마다 목이 찢어질 아팠는데도 수는 헤헤 웃었다. 학교에 안가도 되니까, 구구단을 외웠는지 검사를 받아도 되고 받아쓰기 시험을 수도 있으니까. p.152 민수의 손을 잡아요


🏷️ 엄마가 그랬어요. 상대가 실패하고 방황하더라도 다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주는 여백, 그게 사랑이래요. p.172 지옥의 온도


🏷️ 행복을 뒤로 미루지 . 지금 행복하고 싶으면 지금 행복해지는 일을 .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그건 자기한테 하는 소리였고. 그런 말을 하고 직후의 체육 얼굴을 나는 또렷이 기억한다. 왜냐하면 얼굴은 내가 매일 아침 거울 속에서 만난 얼굴이었으니까. p.225 김남숙


* 본 게시물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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