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울의 움직이는 성 1 - 마법사 하울의 비밀 하울의 움직이는 성 (문학수첩 리틀북) 1
다이애나 윈 존스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수첩 리틀북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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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는 얼마전에 영화를 먼저봤다. 미야자키 씨의 영화에 대한 대단한 애착을 가진 것이 아닌지라, 딱히 영화관에서 볼까는 생각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의 제안도 있었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나 고양이의 보은을 보고 꽤 재미있다고 생각했기에 조금 기대했었다.  그런데 보고난 후는 조금 실망이랄까. 내용상으로도 뭔가 빠지거나 이해안되는 부분이 있었고 지나치게 많은 교훈을 담으려했던 까닭인지 이 장면이 과연 어떤 것을 위해서 만들어졌나 생각도 했다.

 그러다가 하울의 원작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고 어떤 것일까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마침 지난 토요일날 서점에 들렀다 우연히 보게 되었다. 뭐, 할일도 없던 차였고 잠깐 보고 갈까 하는 생각에 책을 집어들고 읽다보니 어느덧 시간이 흐르고 흘러 책 한권을 다 읽고야 말았다. 혼자 킥킥 웃던 탓에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느꼈지만 가볍게 무시하고 다 읽고야 만것이다. 집에서 독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으니.

하여간 끈질기게 다 읽고야만 원작의 내용은 영화 내용 중에서 느꼈던 궁금증을 모두 해소시켰다.  사실 하울이 침체해서 녹색 진물이 넘쳐 흐물흐물해질 때 갑자기 소피가 비오는 바깥으로 뛰쳐나가 "그래! 난 못생기고, 평범하고~~~"-어쩌고 하는 말을 할 땐 외모 지상주의 비판인가. 생각했는데 갑자기 돌아와 하울을 달랠 땐 저게 무슨 행각인가 하고 고민이 많았다.  역시랄까. 원작에서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순간 비교하면서 분명 영화에서는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을 넣으려고 한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나친 외모 가꾸기로 날뛰는 하울을 데리고 외모 지상주의를 비판하려는건 나쁜 생각이 아니지만.. 흐음. 확실한건 원작은 안그래서 다행이라는거다. 그것외에도 갑자기 소피가 과거로 가서 불꽃마귀(악마)의 모습이 아닌 빛의 캘시퍼와 하울을 만나는 장면에서도 갸우뚱. (과연 그게 어째서 캘시퍼 였을까.) 게다가 캘시퍼가 소피에게 "너라면 할 수 있을 테니까!"라고 한 장명에선 기우뚱.(사람이 착하면 마귀와 마법사의 생명도 살릴 수 있는가.) 마지막, 허수아비와 소피의 마법은 어떻게 풀린 것일까. 급기야 여기선 생각이 포화되고 말았다. 과연 마녀가 착해지면 풀리는 저주였나? 라거나. 하여간. 이러한 궁금증을 모두모두 해소시켰다. 원래 별똥별이었던 캘시퍼. 말로써 마법을 부리는 소피. 그리고 마녀의 죽음으로 해소되는 저주. 인과관계가 불분명한 스토리는 스토리가 아니고 말일 뿐인 것이다.

 분명 이 원작에는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는 면에서는 부족할지 모른다. 하지만 판타지는 말그대로 판타지로, 교훈을 따진다기 보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것이 목적이다. 최고의 마법사 하울과 그 마법사를 휘어잡아버린 소피의 이야기. 얼마나 멋진 환상인가. 게다가 맏이로써 좌절하던 소피가 조금씩 자신이 직접 무언가를 해나가는 모습은 스스로의 대견함에 모호한 감동이 밀려온다.

 "내 생각엔 우리가 이제부터 영원히 함께 행복하게 살아야 할 것 같은데요."

  뭐랄까. 영화에서만큼 멋진 프로포즈는 아니지만. 소피와 하울의 모습이 금방이라도 머릿속에서 튀어나와 보일 것만 같은 느낌.  훈훈하고 살살하고 간질간질한 이야기.

만약 그런 느낌을 갖고 싶다면, 한번쯤은 꼭 읽어볼만한 이야기가 아닐까.

 

p.s 요약하자면!!! 시간이 너무 늦어져서 1권밖에 못읽었지만 나머지 2권을 후딱 읽어버리고는 당장 원서를 사서 읽을 예정인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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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옷
아멜리 노통브 지음, 함유선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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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 노통의 소설은 처음 읽어봤다. 사실 예전에 한번쯤인가 읽어보려고 책이름을 메모해 두었다 잠시 잊고 있었는데, 도서관에서 우연히 새책으로 들어온것을 보고 냉큼 빌려왔다. 이 책을 빌려왔을 때는 한참 바쁜 때여서 한동안 묵혀두다 도서관 반납일이 되어서야 끝발나게 읽었다.

처음부터 끝나지 대화만으로 이어지는 책이라 생소했지만 조금 즐겁기도 했다. 아마 주인공은 노통 자신으로 한 듯한데, 의외로 나와 글쓰는 취향이 비슷한 듯한 느낌에 괜한 동질감에 살짝 웃었다.

노통을 전담하게된 셀시우스와의 대화는 정말 중간중간 실소가 새어나올정도로 즐거운데 한편으로는 이래저래 사회문제점을 콕콕 찔러 블랙유머-하는 생각에 약간 비웃음비슷한 것도 새어나왔다. 끝은 약간 식상한 결말이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무척이나 탄탄한 구조였다고 생각한다.역시 그녀의 미래사회에 대한 상상력에 찬사를.

하지만 뭔가 끝이 약간 아쉽다는 생각에 요만간 노통의 책을 좀 더 읽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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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메로스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욱송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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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나는 다자이 오사무를 그리 좋아하는 편은 못된다. 다자이 오사무의 대표작인 사양이나 인간실격의 경우는 거의 반정도 읽고 놓아버릴 정도로 왠지 혼란스러운 느낌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그의 단편집은, 말하자면 Feel이 한방에 와 닿았다는 느낌이랄까. 하여간에 너무 사랑스러워서 못견딜 정도의 책이었다.

처음에는 약간 지리한 듯한 느낌이 없잖아 있었지만, 뒤에는 거의 술술 눈으로 훑어보는 듯 지나가면서도 모든 장면은 내머릿속에 하나하나 새겨졌다. 사실 그 단편들 중 유다의 고백은 다른 곳에서도 한번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 때에는 도통 작가 이름에 관심이 없던터라 스리슬쩍 넘어갔는데, 이번에 유다의 고백을 읽고 나서야 다자이 오사무의 글이란 것을 알아냈다. 인간실격을 그 단편을 읽고난 후에 읽었는데, 이번에 작가가 같다는 것을 겨우 알고서야 그 미묘한 공통점을 알아 냈다. 하지만, 단편집은 다자이 오사무가 결혼 후 안정된 생활에서 쓰여졌기 때문에 분명 대표작들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가 있는 것도 확실했다.

인간실격의 열렬한 팬이였다면 조금 다른 분위기에 어색함을 느낄지도 모를일이지만, 다자이 오사무라는 작가에 대해 그리 애정을 느끼지 못했던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읽어보는 것도 좋을 단편이다. 나는 사실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봤는데, 요만간 다른 책들과 함께 주문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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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소더스
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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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다. 이 책에 대한 감상을 이 이상 얼마나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억압된 일본 사회를 뒤흔드는 아이들의 반란! 새로운 유토피아의 건설! 당신이 지금 중학생이라면, 어쩌면 한번쯤은 생각해 보았을 단어. 등교거부. 무라카미상은 이 것을 가지고 현 폐쇠된 일본 사회를 뒤흔들어 보았다. 하지만, 등교거부라는 것은 친숙하지만 또한 굉장히 낯선단어 이기도 한다. 그랬기에 이 것을 실행하기 위해서, 무라카미 상은 나가무라라는 인물을 만들었다. 현대의 사회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자. 폐쇠된 미궁의 영웅을. 그를 시발점으로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반란의 기류가 일본사회를 서서히 잠식해 들어간다.

그리고 그 것을, 반란의 주체자인 중학생이 아닌,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세이구치상의 관점으로 해석해주었다. 세이구치 상은 지극히 주관적으로 세상을 보았으나, 또한 지극히 객관적으로 그들을 보아주었기에, 우리는 좀더 이 책을 깊이 있게 읽을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추리소설 만큼이나 긴박하고 혀를 바짝 메우는 긴장감은 없었지만, 글은 여유와 동시에 숨겨진 팽팽한 긴장감이 나를 책과의 몇시간 동안의 지리한 싸움을 행하게 만들었다.

끊임없는 시세의 폭락과 퐁짱그룹에서의 상상도 못했던 기발한 아이디어, 그리고 우리가 꿈꾸던 유토피아의 건설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 그 순간! 한 순간이라도 내가 퐁짱그룹이 새로이 만들어낸 유토피아, 훗카이도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생각이 없었다! 억압된 아이들의 교육, 그리고 점점 쌓여만 가는 노인문제, 그리고 폐쇠되어버린 사회! 그런 것들이 없는 사회에서 살 수 있다는 것! 그 것이 바로 현 인간들이 추구하는 유토피아가 아닐까?

하지만, 인간이 만든 인공적 세상은 언제나처럼 치명적인 헛점을 동반하여 왔다. 퐁짱세대들의 알 수 없는 희기병(그 병의 원인은 유토피아의, 어쩌면 가장 치명적인 문제점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여기서 문득 은하철도 999가 생각났다.), 그리고 세이구
치상이 노호로의 이주를 쉽게 결정내리지 못했다(어쩌면 당신도 이 것에 대해 쉽게 결정내리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바로, 그런 치명적인 문제를 말이다.

하지만, 진정 내가 이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도 나는 이 소설에서 이루었내었던 일을 평생가야 해내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현 세상에 안주할 가치가 서있을꺼라고-, 한심하게도 믿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럼, 나는 여기서 당신에게 묻고싶다. 이 글을 읽은, 당신의 소감은 어떠한가?(그 것을 생각해보고 싶다면, 한번쯤은 꼭, 엑소더스를 읽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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