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2
올더스 헉슬리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조지 오웰의 사회주의체제를 풍자한 동물농장과 1984를 보고 감명받아 그 책들과 어찌보면 연장선상에 있는 멋진 신세계라는 책을 보게 됐다.

1984에서 인류의 미래 사회를 꽤 어둡게 그려냈다면 멋진 신세계는 1984를 보고 난 이후라 그런지 좀 더 밝게 느껴졌다.

 1984는 주인공의 시점에서 (체제를 거부하는) 탄압받고 감시받는, 그런 불편하고 답답한 사회를 표현하고 있다면 멋진 신세계는 그들(신세계의 계급층)의 시점으로 표현해 냈다. 멋진 신세계를 초반부에 읽다보면 지금 작가가 이 신세계란 세상을 정말 아름답고 행복한 이상적인 사회로 찬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역설적으로 비꼬고 있는 것인지 조금 혼동되기까지 한다. 그러나 중반 이후부터 체제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인물인 마르크스의 시점을 확대경으로 키우고 중반 이후에 야만인 존의 등장으로 멋진 신세계라는 제목은 역설적인 제목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실 이 세계는 언뜻보면 행복하고 이상적인 사회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노동, 소마, 촉감영화만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한 사회인 것이다. 일종의 무지란 벽에 갇힌 미완성의 반쪽짜리 행복이랄까.

요컨대, 인간적인 사회라기 보단 기계같은 차가운 금속성의 느낌이 강해보인다. 이 세계의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일종의 수면시 교육, 즉 세뇌를 받으며 자라기에 그들은 그 체제가 원하는 대로 고민도 안하고 평생을 유아기처럼 살아간다. 고민하거나 불평할 것도 없이 기계처럼 살아간다. 이 세계는 사랑도 없고 부모도 필요 없다. 신 의학기술로 인해 한 난자만으로도 수십명의 아이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엄마의 자궁속이 아닌 병속에서 자란다. 또 그것을 계급별로 나눠 조선시대로 따지면 천민의 속하는 노동자 계급(엡실론)과 양반에 속하는 알파 계급들로 나눈다.

이런 세상에 존이란 야만인이 야만세계에서 넘어와서 셰익스피어의 지식을 바탕으로 불만을 제기하고 변화를 요구한다. 하지만 세계총재란 그 인물이 존을 굴복시키고 만다. 그리고 존은 탈출하고 혼자 살아가려 하지만 신세계의 사람들에게 발견되고 그것에 의해 또 고통을 받게 되고 존이란 인물은 자살로 마감하며 책의 내용은 끝이 난다.

사실 우리는 내일 당장 무슨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불안정한 사회에 살고 있다. 허나 역설적으로 이런 불안정함이 우리를 자유롭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하고 생각해 본다.

영원한 평화, 영원한 행복이 있을까? 단지 약물로 세뇌로 행복할 수 있는 걸까?

 그저 기계처럼 아무런 꿈도 목적도 의식도 없는 이런 반쪽짜리 평화의 세상이 정말 이상적인 사회일까?

내가 볼 땐 아니라고 본다.

진정한 이상적인 사회는 지금의 세상처럼 약간의 긴장감과 역동성, 급변성, 희노애락등이 혼합되고 적절하게 점철된 세계가 오히려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가장 현실적이고 이상적이고 인간다운 세계라고 생각한다. 뭐 물론 그건 지금 이세계를 살아가는 나의 주관적인 견해이겠지만 말이다.

과학의 발달로 인해 인간 세계에 닥쳐올 불행한 미래 사회.

작가들은 꾸준히 우리 인류에게 공상과학 소설과 영화등으로 경고를 해 왔다.

과연 그저 재미로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글쎄, 100년 안팎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들은 점점 우리와 닮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선견지명이 빗나가길 바라지만 빗나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다.

우린 이제 고민하고 선택해야 할 시기라고 본다.

과학 발전의 경계선을 어디까지 그어야 하는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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