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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시게 불완전한 - 극복과 치유 너머의 장애 정치
일라이 클레어 지음, 하은빈 옮김 / 동아시아 / 2023년 9월
평점 :
1. 일단 이 책은 번역이 아주 좋다. 가장 좋다고 생각한 부분은 disorder를 '이상'으로 번역한 점이다. 사실 한국에서는 disorder와 disablity를 둘 다 장애로 번역한다. disorder는 법률상 장애나 '장애인'에 해당하지 않는 어려움을 많이 담고 있어서 '이상'으로 번역한 듯하다. 서구 장애학에서 등장하는 표현인 crip을 불구로 번역한 것도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2. 저자는 분명하게 치유의 폭력을 비판한다. 정상 상태를 상정하는 치유, 다양한 상태를 '비정상'이나 잘못된 것, 혹은 이상이 있는 것으로 보는 관점은 당사자의 생각과 경험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치유라는 주장은 모든 맥락을 관통할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즉 뒤죽박죽이고, 뒤엉킨다는 말이다.
치유에 대한 입장은 여러가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 치유가 필요한 몸이 있다
-> 치유가 불가능한 몸이 있다
-> 치유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다.
-> 치유하지 않은 지금의 몸에서 배우고 느끼고 감각하는 것이 있다(수전 웬델)
-> 통증이 있어서 치유를 정말 원하는 사람이 있다
-> 치유를 원하면서도, 비장애주의(ableism)도 없애길 원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저자는 치유(cure)와 치료(treatment)를 긍정하면서도 치유의 규범을 반대하면서도, 반-치유를 유일한 정답으로 놓지 않는다. 그 맥락의 다양함이 치유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비틀거리는 이유다.
트랜스젠더의 트랜지션 수술은 의료화되고 자본화된 의료-산업 복합체 안에서의 실천이면서도, 치유는 아니다. 의료 기술과 의료 담론이 '치유'를 목적으로 개발되었다고 한다면 트랜지션을 반대해야 할까?
앨리슨 케이퍼의 《페미니스트, 퀴어, 불구》에도 등장하는 애슐리 X(누워만 있는 장애 여성의 재생산 기관을 박탈한 아버지의 시도)의 사례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이스버킷 챌린지와 같이 특정한 질병이나 상태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유행을 따르는 '선한 영향력'을 발휘자들은 어떤 실천을 하고 있는 것일까?
치유는 질병과 장애뿐 아니라 젠더, 식민주의, 인종, 계급을 넘나들며 다양한 층을 형성한다.
저자는 그 다양성을 수긍하면서도, 다른 몸이 아닌 틀린 몸을 규정하는 세계의 인식에 도전하는 주장을 한다.
3. 이 책 서두에는 트리거 워닝이 나온다. 수치심, 부끄러움, 폭력, 일상적인 혐오를 마주하는 사람이 겪은 일상을 공유하는 일은 '트리거'를 격발시키지만, 이 트리거가 아닌 방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경험들이 있다. 트리거는 플래시백을 포함한 유사한 경험자들이 일으킬 소재를 미리 주의하는 것이지만 에둘러 갈 수 없는 이야기는 있다.
4. 한국에서는 회복이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원래 상태로 돌이킨다는 뜻이다. 회복이 불가능하다면? 원래 상태라는 게 이랬다면? 장애와 질병이 아니라도, 다양한 컨디션의 몸 상태에 회복의 의미는 교차적이다. 이 책은 회복의 꿈이 아니라, 불완전한 일상이 상식이 되길 주장하는 글로 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