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의 소리들 - 소리와 음악에 관한 10가지 대화 이매진의 시선 22
안상욱 지음 / 이매진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음악을 듣는 일과 소리를 듣는 일은 얼마나 같고 다른지 생각했다. 읽고 나니 왠지 소리들이 더 잘 들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는 언제나 타지에 있다 - 이주배경청년의 일, 배움, 성장에 관하여 점선면 시리즈 6
고예나 지음 / 위고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글을 읽으며, 타국으로 와서 엄마가 된 사람이 어떤 마음일지 헤아려 보려 했지만 헤아릴 수 없었다. 그저 문장과 단어를 딛고 엄마를 상상해 보았다. 저자가 푸는 남과 다른 사람이라는 감각과 경험도 와닿았다. 대학교 기숙사, 여름 모기, 물 끓여 씻는 겨울 이야기는 내 이야기기도 해서 공감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누군가의 곁에 있기 - 취약함을 끌어안고 다른 삶을 상상하며 만들어낸 돌봄의 세계들
고선규 외 지음 / 동녘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노래를 듣다가 '아무것도 아닌 건 아무것도 없었어'라는 가사를 들었다. 문명특급(유튜브 채널)에서 결성한 프로젝트 그룹 '재쓰비'의 노래 가사다. 많은 세상일에 적용할 수 있는 문장이라 생각했다. 나는 누군가의 곁에서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돌보는 일이 지난하다는 것쯤은 안다. 매일 만나는 유자녀 중년 여성 동료들은 어떤 식사를 준비할지, 자녀가 아프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종종 이야기했다. 이들이 몸으로 통과하는 돌봄은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보이지만 누군가의 하루를 돌아가게 하는 아무것이 맞는 일이었다.


 이 책에는 다양한 관계가 등장한다. 필진에는 청년 돌봄을 이야기하는 멋진 글을 쓰는 조기현 저자도 있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기 전에 '생각많은 둘째언니'라는 유튜브로 채널에서 동생을 돌보는 이야기했던 장혜영 저자도 있다. 두 사람 외에도 장애-몸-질병이 있는 생명 곁에 있는 사람의 생각과 인식을 담았다.


 돌보면서 마주친 어긋남과 불화에 대한 이야기들일거라 상상했지만 전적으로 그런 건 아니었다. 나는 되레 '자기 돌봄'에 대한 이야기에 더 눈이 갔다. 돌봄의 가치가 발굴되고 인간의 취약성이 보편적이라는 이야기들이 최근 더 많이 공유되면서 마치 돌봄이 누구나 할 수 있는, 혹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로 묘사된다고 느꼈다. 의무적이거나 윤리적인 일로 묘사되고 있다고도 느꼈는데 이 책에서는 내 인상과 결이 다른, 실제로 돌보는 사람의 마음이 더 잘 보였다.


 조기현은 아버지를 돌보다 동생에게 돌봄을 요청했다. 조기현이 쓴 다른 글에서 동생과 자신은 경제적으로 의존하지 않는 관계라고 쓴 걸 본 기억이 있다. 나는 조기현의 글을 읽으며 나눠 하는 돌봄을 생각했다. 아빠의 인지 저하에 대한 가장 신속하고 정확한 돌봄자인 조기현이 아닌 요양보호사와 동생이 하는 돌봄은 다를 수 있다(심지어는 '더 못할' 수 있다). 하지만 돌봄을 더 잘하기 위해서, 더 오래 하기 위해서는 결국 자기를 돌볼 시간도 필요하다. 그래서 '성에 안 차는' 돌봄이라도 돌봄의 몫을 나누는 일이 결국 돌봄자를 살리는 일이기도 하다고 생각했다.


 장혜영의 동생 장혜정에게는 바다, 석류, 나율이라는 돌봄자들이 있다. 혜정은 돌봄자들과 소통하고 관계를 확장한다. 조기현의 아버지가 딸과 보드게임을 하고 혜정은 다른 활동지원사들과 관계를 맺는다. 돌보는 사람이 달라지니 돌봄도 달라진다. 그래서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담백한 일상 이야기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휠체어 이용자인 남성과 결혼한 백정연의 일상은 거창하지 않았다. 싱크대의 높이, 식탁의 의자 배치를 고려했고 화장실의 문을 떼어냈다는 대목을 보고 나도 내 방의 구조를 돌아봤다. 내 방은 휠체어 이용자에게 어떤 공간일까 되물었다. 내가 휠체어를 타면 내 방은 바뀐 게 없어도 다를 거라는 감각이 일었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일을 거의 업으로 삼은 박소영의 글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고양이에 대해 쓴 대목을 보며 동물과 인간이 맺는 관계를 생각했다. 정신질환자들이 갖는 특이하지만 더 애착을 갖는 관계에 대해 쓴 리단의 글은 '그렇지! 이거지!' 싶었다. '정병러'들 끼리 모이면 정병이 더블이지만 그 안에서 가능한 역동이 있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반은 농담으로 말하자면 음수 곱하기 음수는 양수니까-당사자성 발언임). 자살 사별자 곁에 있는 사람에 대해 쓴 고선규의 글은 애도에 대한 이야기라 언제나 잘 떠나보내는 일이 어려웠던 나는 애도해야 하는 사람 곁에 있는 일의 무게를 생각했다. 이 이야기들 모두 내게 생소한 안쪽의 이야기들이다.


 안쪽의 이야기들을 읽다 보니 정말 '아무것도 아닌 건 아무것도 없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 상상했을 뿐이었다. 곁에서 지켜보고 함께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못 할 일이라 글을 읽으며 되새겼다. 하지만 곁에 있는 사람들이 영웅이라는 말은 아니다. 곁에 있는 사람들은, 더 잘 곁에 있으려 하는 사람들은 그저 일상에 대해 말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안전하고 자동으로 돌아가는 일상이 아닌 삐걱대며 돌아가는 거친 일상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누군가의 곁에 있기 - 취약함을 끌어안고 다른 삶을 상상하며 만들어낸 돌봄의 세계들
고선규 외 지음 / 동녘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돌봄을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다. 공저자들도 그랬다. 대단해서 하는 돌봄이 아니라 일상적이면서도 세상을 달리 보게 하는 경험으로 돌봄을 이해한다. ‘1인분의 삶‘이라는 안전한 상상으로는 담을 수 없는 한 사람의 취약성과 그 취약성을 마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알던 사람 - 알츠하이머의 그늘에서
샌디프 자우하르 지음, 서정아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아버지를 지켜보고 돌보는 아들의 글이다.

저자 아버지의 알츠하이머는 해마와 변연계 어디쯤에 영향을 미쳤다.

아버지는 새로운 저장한 기억을 떠올리지 못했고 성격도 감정도 표현도 달라졌다.


이 책은 돌본 사람의 이야기라기보다는

노화와 알츠하이머 과정을 함께 한 아들의 이야기에 가깝다.

책 속에서 아버지는 사람을 다르게 알아보았으며, 주변을 배회했으며, 과거의 기억을 오늘의 일로 생각했다. 자신의 질병을 인식하는 '병식' 또한 없었다.


본인에게 병이 있다는 사실을 몰라서 다른 사람을 어렵게 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떤 맥락에 놓이게 되는지 이 책은 보여준다. 질병 당사자를 위하는 온전한 방법이나 돌보는 사람이나 가족에게 온전히 합당한 방법은 없어서 시설, 연명의료, 돌봄 사이를 가족들은 오고 갔다. 누가 돌볼지, 어떻게 돌볼지에 대한 이야기가 일상이었다.


질병이 생겨서 뇌를 포함한 몸이 전과 달라졌거나 전과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면 그 몸을 가진 사람은 여전히 그 사람인데, 그 사람 같지 않다.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고 받아들인 '그 사람'에는 특정한 몸 이미지가 있었던 걸까? '온전한' 정신, '멀쩡한' 팔과 다리, '제대로 된' 보행 방식을 포함했던 걸까? 이쯤에서 어빙 고프만의 스티그마가 생각났다. 물리적인 혹은 신체적인 차이 보다 더 사람을 위축되게 하는 상징적인 차이의 체계를 스티그마로 나는 이해한다. 치매라서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침대에만 누워 있다면 '사람 답게' 살지 않는 것일까? 살 가치가 없는 것일까? 애초에 걷지 못해 침대에서만 일생을 보내는 사람도 있는데? 맥락이 중요하겠지만 나는 치매가 죽어야 할 이유라기 보다는 보는 사람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고민하게 하는 주제라고 생각했다.


웹 사이트에서 영어 원제를 검색하다가 아마존에 쓰인 리뷰 제목을 봤다. '슬프고 가슴 아프다'고 했다. 동감한다. 나는 읽으면서 최현숙의 《작별 일기》를 떠올렸다. 작별 일기도 슬프고 가슴 아픈데, 이 책처럼 부모의 죽음에 더해 그 죽음에 놓인 돈, 형제들, 유산, 돌보는 일등 구체적인 맥락이 곳곳에 놓여 있어서 이 구체성이 매우 와닿았다.


이 책의 원제는 《우리 아빠의 뇌 - 알츠하이머의 그늘 안에서 사는 삶》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데 뇌 이야기도 하기 때문에 본문과 어긋나는 제목은 아니나 한글 번역본 제목인 《내가 알던 사람》이 더 직관적이긴 하다. 내가 알던 사람과 내가 알게 된 이 사람이 다를 때, 그리고 그 사람 자체가 사라진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어떻게 붕괴되고 무너지면서도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이 책에 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내 죽음 방식을 생각했고 내 죽음을 예견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봤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