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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블과 함께하기 - 자식이 아니라 친척을 만들자
도나 해러웨이 지음, 최유미 옮김 / 마농지 / 2021년 7월
평점 :
도나 해러웨이는 정말 특이한 글쓴이다. 한 명의 개인이기보다는 함께하는 반려종이기를, 정합성 있는 글의 저자이기보다는 차라리 SF(Science Fiction뿐 아니라 speculative fabulation, string figure, speculative feminism-각각의 두음을 이용한 표현) 작가 혹은 이야기꾼이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보인다.
일단 이 책은 영어판의 5장, 6장, 7장이 모종의 이유로 실리지 않았다. 물론, 이 세 개의 장은 영어판 기준 30쪽 정도이고, 이 부분이 없어도 해러웨이의 메시지를 이해할 수는 있다. 이 책에서 해러웨이는 같은 이야기를 계속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부분이 소개 글이나 제목에 혹은 표지에 충분히 드러나있지 않아 편역본임을 알기 어렵게 한 측면이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이 책이 가치 있는 이유는 많다. 일단, 해러웨이의 글은 한글로 번역하기 매우 까다로울 뿐 아니라 어렵다. 해러웨이가 언급하는 작가나 예술가 혹은 사람들 혹은 맥락들이 한국에 많이 소개되어 있는 편은 아니기 때문이다.(언급하는 사람들의 저작을 따져보면 어슐러 르 귄, 브루노 라투르, 린 마굴리스의 저작은 많이 번역되어 있는 편이지만, 메릴린 스트래선, 애나 칭, 이자벨 스탕제르, 에두아르두 비베이루스 지 까스뜨루, 뱅시안 데스프레, 캐런 바라드 등은 상대적으로 덜 소개되어 있는 편이다) 이 책에 나오는 표현에 대한 적절한 역어를 선택하려면 관련 논의들이나 연구자들, 예술가들에 대한 지적 배경이 필요하고, 일부 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생물종들과 관련한 지식들도 상당 부분 파악하고 있어야 번역을 수월하게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역자 입장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고맙게도 독자는 꼭 그런것은 아니다.) 이런 면에서, 다학제적인 접근과 다소 의뭉스러울만큼 생소한 화법을 구사하는 해러웨이의 글을 번역하는 작업은 쉽지 않았을것이다.
그런데 상당히 읽기 편하게 번역을 했고, 역자의 주석 또한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역자는 많은 고생을 했겠지만, 덕분에 독자는 편하게 이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글 자체가 쉽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책 내용 이야기로 돌아오면, 사실 메시지는 간명하다. 인간예외주의 혹은 인간만을 생각하는 많은 이야기들이 비인간 동물 혹은 다양한 층위의 크리터들을 놓친다는 것이다. <반려종 선언>에서 (상황에 놓인) 개들과 인간들이 반려한 역사를 살피면서 인간과 반려종의 관계를 새롭게 의미화했었는데, 이 책에서도 유사하게 다양한 비인간 동물이나 크리터들과 공-산을 시도하고, 차이에도 불구하고 함께-되기, 소통하려는 노력 다시 말해 응답-능력을 기르기를 주장한다. 그런데, 이 책의 제목이 《트러블과 함께하기》인 이유는 해러웨이는 일부 생태주의자들이 논하는 것처럼 희망적이거나 윈윈하는 혹은 고통을 느끼는 존재를 죽이지 않는(내가 이해하기엔 해러웨이는 동물권 옹호론과 같은 '큰 이야기'들에 그다지 공감하지는 않는듯하다) 그런 비전과는 다른 이야기를, 심지어는 트러블이 발생하는 관계를 맺고, 트러블과 함께하라는 제안을 하기 때문이다.
되레 해러웨이는 비인간 동물이나 크리터들과의 '부분적인 연결' 그리고 그러면서 발생하는 트러블, 죽음도 있고 삶도 있는 생동하는 관계들에서 비전을 찾는 듯 보인다. 자식이 아닌 친척을 만들자는 말도, 혈연 중심의 인간종의 생산/재생산이 아니라 다른 종(이라는 분류도 사실은 잠정적인 언어)과 접속하여 친척이 되는 것이 지금의 글로컬한 생태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인식론이며 이런 인식론을 '촉수적 사고'라고 지칭한다. 이 책의 마지막 장(카밀 이야기:퇴비의 아이들)은 그야말로 픽션인데 인간(Human)의 아이들이 아닌 촉수적 사고, 공-산의 관계를 체득한 퇴비(Humus)의 아이들 중 하나인 카밀과 카밀을 포함한 다섯 세대들이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이야기하는 장이다.
공-산을 통해 새로운 인식론을 벼리는 것은 혁신적이고, 지극히 인간 중심적이고 자본 중심적인 세계에서 어떻게 살고 죽어야 할지 깊게 생각해 보게 한다.(해러웨이는 인류세, 자본세가 아닌 다양한 종들의 복잡성을 포함하는 신조어로 쑬루세를 주장한다) 물론 당연하게도, 녹아내리는 빙하와 뜨거워지는 지구를 위해 할 일이 그렇게 소박한 것이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해러웨이의 이야기가 현재의 지구 멸망(거주 불능 지구?) 내러티브와 그렇게 어긋나는 것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다종다양한 지구의 크리터들의 삶과 죽음을 존중하고, 애도하고, 공생의 관계를 인지하고 삶을 공-산적으로 수행해나가는 것 역시 '지구'를 위한다거나 지킨다는 거대한 이야기는 아닐지라도, 더 살만한 삶을 만드는 방식이고, 윤리적인 방식으로 지구일에 참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실뜨기라는 은유는 참 흥미롭고 적절하다.(두음이 SF라는 것도) 실뜨기는 주고받는 것이면서, 상대를 기다려야 하고, 모양을 만드는 일이다. 모양을 만들고 또 모양을 만들고 수행적으로 반복하는 놀이이다. 관계는 연구가 아니라 함께하는 놀이여야 하고, 응답-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기다려야 하고, 플레이어로 함께-되기가 있어야 진행할 수 있다.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손(촉수, 제스처)라는 면에서도, 부서지고 없어질 위험도 있으면서 계속한다는 의미에서도 그렇다. 실뜨기는 해러웨이의 이야기를 은유적으로 잘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책 역시 특정 상황에 놓인 인간 동물이 쓴 책이라 인간 중심적인 면모가 당연히 있다. 에코파시즘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인간 없는 지구는 비인간 크리터들에게 어떤 시간과 공간이 될까? 다가가는 인간이 아니라 물러나는 인간이 필요하진 않을까란 생각도 하게 된다.
* 사족 : 이 책에 실리지 않은 5장, 6장, 7장의 내용을 짧은 영어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내 멋대로 해석하고 이해한 바에 따르면 내용은 다음과 같다.(당연히 틀릴 수 있습니다.)
5장(흘러넘치는 소변)은 요실금 문제를 갖고 있는 해러웨이의 반려종 카이옌에게 투입한 약물 DES 그리고 프리마린이라는 약물 생산의 (해러웨이의 방식으로 재구성한)역사를 살피는 장이다. 이 약물들의 생산과정에서 임신한 여성, 말, 망아지 등 여러 동물들과의 연결성과 자신의 무지를 통해 자신이 누리는 특권과 이 특권의 생산을 크리터들과 연결하여 성찰한다. 6장은(세계들을 씨뿌리기) 어슐러 르 귄의 여행 가방(caring bag) 이론을 통해 개미와 아키시아 씨앗을 통해 공-산의 세계를 살핀다. 7장(호기심많은 실천) 역시 비슷한 방식의 글쓰기 방식을 도입한 장인데, 뱅시안 데스프레의 논지를 이용해 비인간 동물들(크리터들)의 역동적인 관계 맺음과 함께-되기를 이야기한다. 한나 아렌트의 '방문'이라는 표현을 이용해 궁금한 대상들을 방문하고, 관계맺음에 대해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