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 신부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44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이은선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세 친구가 톡시크라는 이름의 식당에 모여 점심을 먹는다. 같은 대학교에 다녔지만 친구도 아니었고 비슷한 점이라고는 없는 사이었던 셋은 삼십년이 더 지난 지금은 누구보다 각별한 사이다. 세 친구에게는 모두 한 여자에게 철저히 이용당하고 사랑하는 남자를 빼앗겼다는 공통점이 있다. 죽이고싶을 만큼 증오하는 공동의 적. 처절하게 공격하고 반격 한 번 할 틈 주지 않고 사라졌던 지니아. 그 여자가 죽어 과거지사가 되었다. 부고가 났고, 변호사에 의해 장례식에 초대받은 친구들은 확인하는 의미에서 장례식에도 갔다,

  그런데 그 여자가 돌아왔다. 도대체 왜? 이번에는 누구에게서 무엇을 뺏기 위해?

  토니는 아동복을 입을 만큼 작은 체구이지만 외유내강형의 냉철한 역사학자다. 놀랄만큼 차분하고 이성적이다. 사랑없는 부모밑에서 예민한 촉수를 꺼냈다 오므렸다 하며 살았는데, 엄마가 사랑을 찾아 떠나자 아빠는 토니가 대학에 갈 때까지 기다렸다 자살한다. 토니는 사랑을 받고 싶었고 또 주고싶었지만 어느 것 하나 허락되지 않았다. 이 결핍은 토니의 사랑에도 영향을 끼친다. 주고받는 사랑이 토니에게는 불가능한 것이 된다. 토니는 대학때 근대사 수업을 들으며 알게 된 웨스트와 가까워지며 점점 친구 이상의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웨스트에게는 지니아라는 여자친구가 있었다. 토니는 웨스트를 시작도 못해보고 포기하지만 어쩐일인지 지니아가 토니에게 접근해 온다.

  "웨스트한테 들었는데 너 똑똑하다며?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 중략 … "앞으로 그걸 하고 싶어. 전쟁 공부를 하고 싶어." 233~235쪽

  지니아는 학점을 따기 위해 동정심을 유발해 토니가 보고서를 대신 작성하게 하고 나중에는 그 사실을 빌미로 협박해 토니에게 돈을 뜯어낸다. 그런 후에는 웨스트와 토니를 버리고 떠난다. 지니아가 떠난 뒤 토니는 무너진 웨스트를 돌보며 안정을 찾는다. 어린 토니가 정성들여 끓여 낸 차를 엄마는 차갑게 식도록 손도 대지 않았지만, 웨스트는 항상 토니가 끌여주는 차를 마신다. 뭐든 그녀가 주는 대로 받는다. 하지만 정작 사랑은 주지 못한다. 토니는 웨스트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이 사랑하는 웨스트와 함께 있을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안도한다.

  캐리스의 원래 이름은 캐런이었다. 캐런의 엄마는 스스로의 힘으로 교사가 되기 위해 고생한 인물로 나온다. 원래도 예민하고 심약한 성격이었지만 결혼을하고 캐런을 낳고 캐런의 아버지가 죽자 더 힘들어 한다. 엄마는 예민해질 때면 캐런을 살이 패일 정도로 때리기도 했고 그마저도 힘들면 캐런을 이모네 집에 자주 맡겼다. 이모부는 캐런을 귀여워하는 척 했지만, 엄마가 죽고 캐런이 아예 이모집에 맡겨지자 성적으로 학대한다. 캐런은 그 이후로 성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게되고, 대학진학 후 기회를 틈타 이모와 이모부로부터 탈출해 이름도 캐리스로 바꾼다. 생계를 위해 요가 수업을 하고 협동조합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캐리스는 병역기피자로 국경을 건너온 빌리를 할당받아 돌봐주며 점점 사랑을 느낀다. 캐리스에게는 치유의 힘이 있고 그것은 남을 치유해주는 것은 그녀가 원하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몸이 막대기처럼 마르고 눈에 멍이 든 지니아가 찾아온다. 자신이 웨스트에게 얻어 맞고 버림받은 암환자라며 캐리스의 동정심을 자극해 그집에 눌러 앉는다. 첫날부터 빌리는 본능적으로 지니아를 거부한다. 지니아는 캐리스에게 빌리가 자신과 자고 싶어서 두려운 거라고 말한다. 이부분에서 달과 6펜스에서 스트릭랜드를 증오하던 블란치 스트로브가 떠올랐다. 자신의 욕구를 제어하지 못할 것을 알게 된 사람이 본능적으로 내지르는 비명이었던 거다. 빌리는 지니아가 암일리 없다 흉터라도 봤냐고 물으며 캐리스가 속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캐리스는 그럴리 없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빌리는 흉터가 없더라고 당신은 바보라고 말한 다음날 지니아와 함께 떠난다. 결국 본능에 굴복해 지니아와 떠나고 만 빌리가 잘못한 걸까? 사랑하는 사람이 본능적으로 내지르는 비명을 알아채지 못하고 자신의 욕구인(?) 치유를 돕고있다는 성취감, 안도감, 쾌락만을 느낀 캐리스가 잘못한 걸까?

  하숙집 딸로 태어났지만 아빠가 벼락부자가 되면서 사업을 하게 된 로즈는 토니나 캐리스에 비해 세상물정에는 밝지만 여린 감성을 지닌 여자다. 미치와 결혼해 아들 래리와 딸 쌍둥이를 낳아 부러울 것 없이 살던 그녀의 삶에 지니아가 끼어들었다. 로즈 삶의 일부였던 미치를 잘라갔다. 로즈도 남편을 잃었지만, 아이들도 아빠를 빼앗겼다. 아이들은 엄마에게 내색도 하지 않지만 로즈는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진다.

 지금도 래리는 힘들어하고 있다. 뭔가가 부족한 것이다. 우울함이, 낯익은 좌절감이 로즈의 가슴속을 파고든다. 그녀가 가장 실망시킨 아이가 래리다. 그녀가 좀 더 예쁘거나 똑똑하거나 섹시하거나 아무튼 지금보다 더 괜찮았더라면, 차라리 좀 더 계산적이거나 파렴치하거나 게릴라 전사 같았더라면 미치가 떠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아이들이 그녀를 용서할 수 있을까. 얼마만큼 그녀를 용서해야 하는지 깨달은 뒤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럴 수 있을까. 155쪽

 어째서 그녀들은 사랑받지 못한 탓을 자기 탓으로 돌리는 걸까? 토니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정성들여 끓여간 차를 손도 대지 않는 엄마를 원망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한다.

 이 모든 게 다 그녀의 잘못이다. 그녀가 차 끓이는 것을 게을리했고, 신호를 잘못 해석했고, 끈이 됐건 밧줄이 됐건 쇠사슬이 됐건 어머니를 이 집에 묶어 놓는 데 쓰였던, 어머니를 제자리에 붙잡아 놓는 데 쓰였던 물건을 놓치는 바람에 어머니가 요트나 풍선처럼 풀려 버린 것이다. 어머니는 망망대해로 나가 바람을 등에 업고 저멀리 떠나가고 있다. 영영 사라지고 있다. 273쪽

  상처받은 여자들의 심리 묘사가 너무 섬세해서 아프다. 토니, 로즈, 캐리스의 모든 고통을 함께 겪지 못해 모든 걸 다 공감할 수는 없었지만 사랑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은 그녀들의 마음이 너무 애잔했다. 애트우드는 이 세 친구들의 과거의 상처와 현재의 고통사이를 넘나들며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토니나 캐리스가 빼앗긴 것에 비해 로즈가 미치를 빼앗겼다는 것 말고 자세히는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1권 중반 이후에 캐리스가 지니아를 미행하면서 지니아가 식당에서 나와 로즈의 아들 래리와 키스하고 택시를 타고 호텔로 들어가는 장면을 목격한다. 이번에는 로즈에게 래리마저 빼앗으려 나타난 것인가?

 2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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