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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 40주년 기념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이상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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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59년,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자연선택론으로 인한 진화를 주장한 이후로 생물학의 역사는 다시 쓰여졌다. 진화론을 반박한 학자와 이론이 많았다지만, 결국 생명 현상을 이해하는데 다윈의 진화론만큼 손색없는 이론과 학자는 없었다. 다윈주의자 혹은 신다윈주의자라 불러야할 리처드 도킨스가 출간한 이 책도 그 연결선상에 있다. 리처드 도킨스가 1976년 <이기적 유전자>를 출간한 후로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책 내용을 수정하지 않았다고 하니 다윈의 이론과 이를 계승한 다윈주의자들의 이론이 정교하고 무결한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서문조차 예사롭지 않은 책이다. 초판 서문과 30주년 기념판 서문에 할애된 분량만 해도 27쪽인데, 서문에 작가의 관점이 아주 잘 드러나있다. 특히 30주년 기념판 서문에서 '이기적인 유전자들 사이의 협력에 대해 중점적으로 논한다.'는 내용과 '자연선택을 보는 두 가지 관점, 즉 유전자의 관점과 개체의 관점이 있다.' 이 두 문장이 핵심적이다.

 

  최초의 원시 수프에서 자기 복제자가 생겨났다. 이 자기 복제자는 화학적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을 찾아내어 세포로 변모했다. 그 후 자기 복제자는 단순히 존재하는 것만이 아니라 계속 존재하기 위해 자신을 담을 그릇, 즉 운반자를 만들었다. 개체는 곧 자기 복제자의 그릇이며, 운반자이며, 생존 기계이다. 그리고 생존 기계는 점점 더 정교해졌다. 이 것이 리처드 도킨스가 말하는 유전자의 역사다. 이전까지의 논의가 개체의 관점이었다면 리처드 도킨스는 유전자의 관점으로 다윈의 이론을 설명한다. 매우 겸손하게 자연선택을 보는 두 가지 관점 중 하나를 제시하는 것 뿐이다라고 얘기하는 것 같지만, 과학에 있어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는 것이야말로 대단한 것이 아닌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암수전쟁이었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젠더 차이의 근원을 유전자에서부터 다룬다.

 

 이 때문에 암컷이 만들 수 있는 자식의 수에는 한계가 있는 반면에 수컷이 만들 수 있는 자식의 수에는 사실상 한계가 없다. 수컷의 암컷 착취는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281쪽

 

정직한 배우자는 난자가 되고 착취하는 배우자는 정자가 되었다. 283쪽

 

 '착취'라는 표현이 개체의 측면에서 보면 좀 과하게 느껴질 수 있다. 남성도 여성에게 자의든 타의든 노동력과 자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유전자의 측면에서 보면 전혀 과함없이 적절한 표현이 된다.

 

 

 예컨대 포유류의 경우 자기 체내에서 태아를 키우는 것도 암컷이고, 태어난 자식에게 젖을 만들어 먹이는 것도 암컷이며, 자식의 양육과 보호의 부담을 지는 것도 암컷이다. 암컷이란 착취당하는 성이며, 착취의 근본적인 진화적 근거는 난자가 정자보다 크다는 데 있다. 289쪽

 

 그렇다면 모든 유전자는 정자로 만들어져 남자로 태어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그렇게 행동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다. 남녀성비의 비율이 유지되는 이유가 분명 있다.

 

 성비가 불균등해지는 순간 아들 생산에 대한 압력이 시계추를 반대로 밀어내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들딸을 같은 수로 낳는 전략은, 이 전략에서 벗어나는 유전자는 손해를 입게 된다는 의미에서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이다. 286쪽

 

  다음 인상깊었던 내용은 다른 새 둥지에 알을 낳아 의탁하는 뻐꾸기 이야기다. 다른 둥지에서 부화한 새끼 뻐꾸기는 의탁모의 친자식들을 둥지 밖으로 밀어내고 혼자만 살아남는다. 어느 시점부터는 의탁모의 몸집보다 더 커다랗게 자란 뻐꾸기 새끼가 여전히 주둥이를 벌리며 먹이를 받아먹는다. 아무리 동물이라 머리가 나빠서 그렇다쳐도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장면이었는데 이유가 있었다. 남성이 자극적인 여성의 신체 사진을 보고 실제 사람이 아닌 것을 알고도 흥분하듯이, 뻐꾸기 의탁모도 뻐꾸기 새끼가 자신의 새끼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도 키울 가능성이 있다. 입 벌린 뻐꾸기 새끼 입 안에 먹이를 넣어줄 수밖에 없는 어떠한 자극을 받는다고 여겨진다. 이성이나 감정의 문제가 아닌 신경계의 문제이기 때문에 개체는 그저 반응하는 수밖에 없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작가가 서문에서 언급한 다른 사람들의 반으아처럼 허무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다양하고 복잡하고 신비로운 인간 중에서도 특별하다고 여겼던 '나'라는 존재가 그저 유전자를 담는 그릇 뿐이라니! 하지만 이런 생각은 회의감이라기 보다는 놀라움, 깨우침에 가깝다. 가슴 속에 담고 있던 '나는 왜 태어났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어쩌면 다른 관점에서는 찾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모든 내용이 인상적이었고 놀라웠지만 가장 깊숙이 와 박혔던 문장을 인용하고 글을 마친다.

 

 즉, 동물의 행동은, 그 행동을 담당하는 유전자가 그 행동을 하는 동물의 몸 내부에 있거나 없거나에 상관없이, 그 행동을 담당하는 유전자의 생존을 극대화하는 경향을 가진다는 것이다. 4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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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암살자 2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 민음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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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권에서 자이크론 행성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던 남자와 여자는 알렉스 토마스와 아이리스였다. 그렇다면 로라의 소설로 불린 그 소설 또한 로라가 쓴 소설이 아니다. 1권을 읽으며 짐작은 했지만 마거릿 애트우드는 독자가 쉽게 단정짓지 못하도록 여지를 남겨 두었기 때문에 2권을 들어 올리는 손이 바빠졌다.

 

  아이리스의 자전적인 이야기, 신문기사의 삽입, 그리고 미스터리한 남녀가 주고받는 자이크론 행성과 지노어 행성그리고 아어아 행성의 이야기. 세 층위로 나뉜 서사가 합일 되는 순간, 그러니까 미스터리한 남녀의 대화 중 여자의 신분이 드러난다. 한 달 동안 항해를 떠난다고 이야기하고 남자를 떠나는 장면 바로 뒤에 이어지는 신문 기사 퀸 메리호의 화려한 항해 장면 묘사. 이 부분이 압권이었다. 대체 어떻게 이어질지 가늠이 되지 않던 서사가 그 에피소드를 관통하며 합해지는 순간 소설의 구성이 완벽해진다. 1권에 던져진 수많은 질문들이 이렇게 풀리고 있었다. 힘있는 서사나 아름다운 묘사를 차치하고서 소설의 구성만으로도 매우 멋진 완성도를 보여준다. 역시 마거릿 애트우드 대표작이라 할 만하다.

 

  주인공이 아이리스인 이유는 무엇일까? 80대 노구가 된 아이리스에게 남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이리스는 거의 모든 것을 잃는다. 연인이었던 알렉스도 전쟁 중 사망하고, 딸 에이미와 손녀 사브리나도 그녀 곁을 떠난다. 특히 동생 로라의 죽음은 아이리스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다. 로라는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아마 리처드는 알렉스를 미끼로 로라를 설득했을 것이고, 알렉스가 아이리스의 숨겨진 연인이라는 것을 몰랐던 로라는 알렉스를 구하기 위해 몸을 허락한다. 하지만 계획에 없던 임신을 하자 리처드와 위니프리드는 로라를 정신병원으로 보내 낙태를 시키고 감금했다. 로라가 그런 일을 겪고도 견뎌냈던 것은 아이리스를 일깨우고 알렉스를 지켜야한다는 일념이었다. 표면적으로 로라는 구제불능이고 정신이 온전치 않은 사람이라는 평을 받는다. 실제로는 언니 아이리스가 식물처럼 기대에 부응하며 사는데 반하여 자신만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려고 애쓰는 인물이다. 로라는 끝까지 언니 아이리스의 어리석음을 지적하고 어둠의 소굴인 그리픈 가를 제 발로 걸어나오라고 말한다. 하지만 알렉스의 사망 소식과 언니와의 관계를 알게 된 로라는 자신만의 빛을 잃고 자살하고 만다. 스스로를 옳다고 믿었던 로라는 자신이 믿었던 신념에 균열이 가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리처드와 로라에게 있었던 일을 알게 된 아이리스는 에이미를 데리고 탈출한다.

 

  체이스 가문과 그리픈 가문의 성과 쇠는 캐나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자세히 묘사하지는 않았지만 전쟁을 겪고 가까이에서 견뎌내야했던 사람들에게 남은 전쟁의 상흔은 참혹했다. 마거릿 애트우드는 자이크론 행성과 지노어 행성의 전쟁을 묘사하며 가장 바깥의 층위의 서사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며 그 참혹함을 보여준다.

 

  나이 많은 남편의 잠자리 상대가 되어주는 것 외에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아이리스. 아내로서도, 어머니로서도, 언니로서도 어떠한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아이리스는 역설적으로 가장 오래 살아남아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의 역사가 된다. 그리고 그 역사를 사브리나에게 전해주기로 한다.

 

  로라의 삶 - 나의 삶- 에대해 쓰기 시작했을 때에는 내가 왜 이것을 쓰고 있는지, 혹은 다 쓰고 나면 누가 읽을 것인지에 대해 뚜렷한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확실히 안다. 소중한 사브리나, 나는 너를 위해 이것을 쓰는 것이다. 너야말로 이제 이것을 필요로 하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382쪽

 

  아이리스는 누군가에게 진실을 전하고 자신과 죽은 사람들을 기념하기 위해 글을 썼다. 하지만 자신이 쓴 소설을 로라의 이름으로 출간한다. 리처드와 위니프리드로부터 에이미를 지키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궁극적인 이유는 로라와 자신이 서로의 왼손과 오른손이었기 때문이었다. 서로를 의지할 수밖에 없던 둘은 서로를 지켜주고자 했지만 그러지 못했고, 살아 남은 아이리스는 서로를 기록해줄 의무가 있음을 깨닫고 글을 쓴 것이다.

 

  아이리스와 로라를 지켜주었던 리니와 엄마를 이어 아이리스의 죽음까지 지켜주는 마이라를 제외하면 유일하게 긍정적인 인물은 사브리나다. 사브리나는 세속적인 그리픈가문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인물이다. 알렉스 토마스의 손녀이고 아버지 또한 누구인지 모른다. 이런 세속적으로 하대받는 출생의 비밀이 오히려 사브리나에게는 이점이 된다. 그리픈가의 핏줄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노출되지는 않지만 긍정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그리고 아이리스는 그런 사브리나에게 자신의 모든 기억을 완벽하지는 않지만, 자신이 수집한 모든 역사를 전달해주기로 한다. 그 안에는 로라의 것으로 알려진 소설과 노트 신문기사 등등이 있다.

 

 

진실을 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쓰는 것을 아무도 읽지 않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심지어 훗날의 나 자신조차도,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11쪽

 

  2권은 위의 문장으로 시작한다. 아이리스는 진실을 쓰고자 했다. 글을 쓰던 아이리스는 자신의 글에 오류가 있음을 발견하는데, 그 오류는 생략된 이야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여행 가방 안에 자신이 수집한 것을 넣어 사브리나에게 주고자 한 것이다.

 

 

  아이리스가 쓰고 싶었던 글의 처음과 그 끝이 궁금해진다. 아이리스의 장례식 참석차 돌아올 것으로 여겨지는 사브리나는 아이리스가 남긴 수집품들을 통해 그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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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 - 기획 29주년 기념 특별 한정판 버지니아 울프 전집 11
버지니아 울프 지음, 오진숙 옮김 / 솔출판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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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지니아 울프를 접해 본 사람이라면 한 번 쯤 보았을 문구 '자기만의 방'이다. 책 제목이기도 한 이 문구가 왜이렇게 유명해졌을까? 여성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지만 쉽게 허락되지 않았던 것이 바로 '자기만의 방'이 아닐까 한다. 결혼하기 전 포털사이트 웹툰에서 본 내용이 기억난다. 부부와 자녀가 외출 후 집에 돌아와, 남편은 TV앞 쇼파에 앉고 자녀는 자신의 방으로 쏙 들어가는데 엄마는 자기 자리를 찾다 머쓱해하며 주방으로 들어간다. 거기가 제 자리인양. 막연하게 쓸쓸하다 생각했는데 , 결혼을 하고 보니 그 내용이 새로이 다가온다.

 

  '자기만의 방'은 울프가 여성과 픽션에 대해 이야기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그 답을 하기까지 생각의 변화를 들려주는 방식이다. 수필이라고 보면 된다. 울프의 여타 소설에 비해 쉽게 읽힌다고 생각했는데 읽다보니 녹록치 않다. 한 줄 한 줄 힘주어 눌러 쓴 글같다.

 

  여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지만 다면적으로 이야기 하고싶었던 듯 화자를 바꾼다. 하지만 결국은 울프 자신이다. 그래서 자신을 어떤 이름으로 불러도 된다고 한다.

 

  그러면 여기 나는 (나를 메리 비튼, 메리 시튼, 메리 카마이클 혹은 여러분이 원하시는 어떤 이름으로든 불러주십시오 - 그것은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니까요) 12쪽

 

 울프는 남성을 비판하고 여성을 옹호하는 단편적인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문제 삼는 것은,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다고 여겨지는 것에 의문을 제기한다.

 

  따라서 뭔가 정복하고 지배해야만 하는 가장에게는 사실상 인류의 절반인 수많은 사람들이 본디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느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되겠지요. 이것이 실제로 그의 권력의 중요한 원천 중 하나임에 틀림없습니다. 52쪽

 

 여성은 이 모든 세기 동안 남성의 모습을 원래 크기보다 두 배로 확대 반사시켜주는 , 마술적이고도 입맛에 맞는 능력을 소유한 거울로서 이바지해왔지요. 이 능력이 없다면 아마 이 지구는 여전히 늪과 정글 상태였을 것입니다. 온갖 전쟁의 영광도 알려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나폴레옹과 무솔리니가 그렇게 힘주어 여성의 열등함을 주장한 이유이지요. 여 성들이 열등하지 않다면 자신들이 더이상 확대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이것이 그렇게 종종 여성이 남성에게 필숩 불가결한 존재가 되는 이유를 부분적으로 설명해주지요. 53쪽

 

 즉, 그들로 하여금 계속 다른 사람들의 전답과 재산을 원하게 하고, 개척지와 깃발, 전함과 독가스를 만들게 하며, 스스로의 목숨과 자식들의 목숨을 헌납하라고 몰아대는 소유에의 본능과 획득에의 열망을 - 그들의 가슴 안에 묵게 하는 대가를 치르고서지요. 57쪽

 

 무수한 대가를 치르긴 했지만, 남성의 소유에의 본능과 획득에의 열망때문에 세계가 발전했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여성이 보호받는 위치에 있으며 이 것이 부당함을 토로한다.

 

  여성이라는 것이 보 호받는 직업이기를 그만두면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으리라고, 현관문을 열며 나는 생각하였지요. 59쪽

 

 가끔 엘리자베스나 메리 같은 여왕이나 귀부인 등의 여성 개인이 언급되지요. 그러나 두뇌와 성품 외에는 자신의 명령에 의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던 중산층 여성들은, 종합적으로 그 역사가의 과거관을 구성해주고 있는 그 위대한 운동들 중의 어떤 것에도 결단코 참여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일화집에서도 여성을 발견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64쪽

 

 심지어 남성이 느끼는 부당함과 여성이 느끼는 부당함에도 현저한 차이가 있음을 지적한다.

 

 키츠와 플로베르 그리고 다른 천재적인 남자들이 그렇게 견디기 힘들어했던 세상의 무관심은 그녀의 경우에는 무관심이 아니라 적대감이었습니다. 세상은 남자들에게 하는 식으로, 즉 "당신이 원한다면 쓰십시오. 나에게는 아무 차이가 없으니까"라고 그녀에게 말하지 않았지요. 세상은 너털웃음과 함께 "뭘 쓴다고? 당신이 글을 쓰는 게 무슨 소용이 있소?"라고 말하였지요. 75쪽

 

여성들의 글을 읽은 후에 읽는 남성들의 글은 참으로 직설적이고 참으로 솔직하였지요. 그것은 그러한 마음의 자유와 인격의 자유분방함과 자신감을 나타내주지요. 우리는 결코 방해받은 적도 반대를 받아본 적도 없고 자기가 가고 싶은 길은 아무 데로든 뻗어나갈 수 있는 완전한 자유를 태어나서부터 누려온 이 잘 길러지고 잘 교육받은 자유로은 마음의 현존 속에서 안녕을 감지하게 됩니다. 138쪽

 

  울프의 지적에는 공격이라기보다는 자조가 느껴진다. 얼마나 많은 능력있고 인성이 출중한 여성들이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배제되었으며 독립적인 개체로 인정받지 못했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남자 형제들이 공부하러 가는 동안 집에 남겨져 있던 울프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그러나 거의 예외 없이 여성들은 남성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보이고 있습니다.제인 오스틴의 시대까지 픽션 속의 모든 위대한 여자들은 다른 성에 의해 보일 뿐만 아니라 다른 성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보 였다는 것을 생각하니 이상하였지요. 그런데 그것은 여성의 삶 중에서 얼마나 작은 부분인가요. 115쪽

 

 

  이 얼마나 통찰력있는 문장인가! 가슴깊이 파고드는 문장이었다. 여러번 곱씹을 수록 문장 안에 담긴 울프의 삶과 당시대 여인들 그리고 현재까지 여인들의 삶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 하다.

 

  울프는 이런 사고의 과정을 통해 여성이 일단 글을 쓰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경제적 독립이 필요함을 이야기한다.

 

 그녀는 만일 소설이나 시를 쓰고자 한다면 여러분은 연 오백 파운드와 문에 자물쇠가 달린 방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하는 결론, 그 진부한 결론에 자신이 어떻게 하여 도달하였는지를 이제까지 여러분에게 이야기해온 셈입니다. 145쪽

 

 하지만 이는 결론이라기보다는 시작이라고 봐야한다. 여성에게는 경제적 독립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서만이 자기 자신이 되는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남성은 그냥 글을 쓰면 된다.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한 역사가 없다. 하지만 여성은 글을 쓰기 위해서 일단 경제적 독립을 이루어야 하는 과제가 먼저 주어진다. 그 후에 남성과의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여성 그 자체로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 허니 그 방법이 남성과 같을 수 없었을 거다.

 

 울프가 글을 난해하게 쓴다고 생각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기존의 질서로 (여성이 배제된 구조) 울프든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없었던 거다. 자기만의 방을 읽고 나니 울프의 혜안, 시대를 앞서가는 천재성이 더 대단하다 느껴진다. 울프를 더 알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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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 40주년 기념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이상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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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한 번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라 기대가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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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미스터리 2020 봄.여름 특별호 - 67호
한국추리작가협회 지음 / 나비클럽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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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오랜만에 추리소설을 읽었다. 학창 시절에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을 많이 읽었는데, 내가 좋아해서라기 보다는 나와 독서목록을 공유하는 오빠 덕분이었다. 내 덕분에 오빠는 순정만화를 읽고 오빠 덕분에 나는 추리 소설이나 무협지를 읽었다. 한 번 펼치면 헤어나올 수 없던 책들이라 여러권 쌓아두고 밤새는 줄 몰랐던 기억이 있다.

 

  스스로 골라 읽어본 적이 없어서인지 오랫동안 읽고 살다가 우연히 인터넷에서 추리소설 추천글을 보았다. 날씨도 끈적끈적하고 더운데 책 표지를 보자마자 소름이 끼쳤다. 징그럽다고 해야할지 잔인하다고 해야할지 모를 음산한 분위기의 표지 덕에 체감온도가 3도는 떨어지는 효과를 느끼며 책을 주문했다.

 

 다시 봐도 표지가 정말 세다. 매우 자극적이어서 눈을 뗄 수가 없고, 대체 이 그림이 어떤 의미인지 곱씹어 보게 된다. 누구 작품인지 궁금해졌다.

 

  책장을 펴고 닫을 때까지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르겠다. 계간지라는 특성 상 소설과 에세이, 인터뷰 등 다양한 장르가 한 곳에 묶여있어 다채로웠고 지루하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백미는 소설이다.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작품은 황세연 작가의 특별초청작인 <인생의 무게>와 신인상 수상작인 홍정기 작가의 <백색살의>였다.

 

  <인생의 무게>는 사이가 좋지 않은 부부가 나온다.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은 지영은 어느 날 남편이 쓴 추리소설을 몰래 읽고 충격에 빠진다. 그 안에는 지영 자신으로 보이는 인물을 묘사하는 혐오스런 시선이 있었다. 그 시선이 남편의 것이며, 남편이 자신을 우아하게 감쪽같이 죽일 방법을 찾고 있다는 것까지 알게 된 지영은 선수를 치기로 하는데…….

 

  죽도록 미운 부부사이가 그저 남의 일인가? 이혼 한 번 생각 안해본 부부가 있을까? 어떤 부부든 겪을 수 있는 불화에 서로를 죽이고자 하는 살의가 더해졌다는 것이 무서웠다. 전혀 미스터리하지 않아서 더 무서웠던 소설이었다.

 

 <백색살의>는 어느 날 형사인 영섭이 사는 아파트에 불이 나 사람이 죽는다. 자살로 위장되었지만 하필 가장 큰 고통을 당하는 방법으로 자살을 했다? 자살을 시도해놓고 살기 위해 냉장고에 숨었다?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는 것을 느낀 영섭은 타살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해 나가는데 …….

 

  제목부터 흥미로웠다. 살의는 그렇다 쳐도 백색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하며 읽었는데도 살인사건이 일어난 장소를 묘사하는 장면에서 복선을 놓쳤다. 피해자의 기괴한 모습에 집중하느라 담배꽁초에 시선이 가지 않았다. 담배를 죽어라 피워대면서도 치울 줄도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도 몰랐던 피해자가 죽었다. 이웃간의 갈등으로 살인까지 저지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뉴스에 많이 나온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라면 세상에 죽어마땅한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게 내 일이라면? 나 또한 극도의 분노와 살의를 느끼지 않을까?

 

 사회 문제를 소설화 했는데 전혀 식상하지 않았다는 점이 이 소설의 장점이다. 신인상 작가의 작품이라니 시작이 좋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보여주실지 궁금하다.

 

  요즘 한국 추리 문학계가 심상치 않다. 서미애 작가의 작품이 외국에서 호평을 받고 드라마화 될 예정이라고 한다. 황세연 작가는 팬층이 단단해지고 있다. 재기 넘치는 신인작가들도 발굴되고 있다니 앞으로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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