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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들 ㅣ 시녀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1월
평점 :
전작인 <시녀이야기> 이후 이어진 수많은 질문들에 대한 답이 바로 이 책 <증언들>이다.
<시녀이야기>를 읽는 내내 궁금했던 주인공 오브프레드의 이름이 밝혀졌다. 그녀의 이름은 준.
준은 딸이 다섯살 때 아이를 빼앗기고 시녀가 된다. 아이는 카일 사령관의 아내 타비사의 선택을 받아 아그네스 제미마라는 이름으로 살게된다.
시녀이야기 마지막에 오브프레드가 임신한 사실이 밝혀지는데 증언들에 그 아이가 나온다. 아기 이름은 니콜이다. 준과 닉은 아이를 낳아 캐나다로 아이를 빼돌리고 자신들도 탈출한다. 이 아기는 길리어드의 상징적 의미가 되어 길리어드 밖의 세계에 외치는 구호가 된다. 아기 니콜을 길리어드로 돌려달라! 아이는 본인이 누구인지 모른 채 닐과 멜리사에 의해 데이지라 불리며 자란다.
<시녀이야기>에서 시녀들이 공식적으로 지워진 자신들의 이름을 잊지 않으려 서로의 이름을 나누며 기억해주는 것처럼 <증언들>에서도 억울하고 쓸쓸하게 죽어간 오브카일의 이름을 아그네스가 기억해주는 장면이 나온다. 두 작품 모두 이름의 의미를 중요시 여긴다. 아그네스 제미마의 이름에도 의미가 있다. 아그네스 제미마는 어린양이며 빼앗긴 딸이라는 의미다.
제미마라는 이름은 성경의 일화에서 따온 거예요. 제미마는 아주 특별한 여자아이였는데, 그 애의 아버지 욥이 하느님의 시험에 들어 온갖 불운을 겪게 되었고, 그중에서도 최악의 사건이 욥의 자식 모두가 죽임을 당한 것이에요. 아들들, 딸들 모두 다요. 죽어버렸죠!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내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어요.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욥의 마음이란, 참담했을 거예요.
하지만 욥은 시험을 통과했고, 하느님이 그에게 다른 자식들을 주었어요. 아들 여럿, 그리고 세 딸도요. 그래서 다시 욥은 행복해졌대요. 그리고 제미마는 그 딸 중 하나예요.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았어요. 곰곰이 되짚어 생각하게 된 건 한참 후의 일이에요. 하느님이 새 자식들을 옜다 던져 주면서 이제 죽은 자식들은 아무 의미도 없는 척 살라고 했는데, 욥은 어떻게 그런 짓을 하게 허락했던 걸까요? 31~32쪽
증언들은
길리어드 창설자 리디아 아주머니
오브프레드의 두 딸인 아그네스 제미마와 니콜
세 여자의 증언들로 구성되어 있다.
아그네스의 증언은 증언 녹취록 369A 로 니콜의 증언은 증언 녹취록 369B로 기록된다.
길리어드의 피해자 준의 딸들은 다행이도 양부모의 사랑을 받기는 했지만 거짓의 삶을 살아야했다. 평범한 일상이 흔들리며 거짓을 자각한 후 리디아에 의해 정의를 찾아 부모를 찾아 캐나다로 탈출한다.
리디아 아주머니는 창설자이면서 아르두아홀의 총책임자이다. 리디아 아주머니는 본래 판사였다 잡혀와서 조직에 적합한 사람인지 여러 단계의 시험을 거친 후 여성을 관리하는 조직의 창설자가 되어 엄격한 관리통제 능력을 보여주며 일인자가 된다. 피도 눈물도 없는 차가운 사람으로 묘사되지만 지략가의 면모를 갖추었다. 조직의 일인자였지만 한 번도 조직에 진심으로 충성한 적은 없는 것 같다. 피시험자로서 굴욕을 당하는 내내 리디아는 그 순간을 기억하려 애썼다. 그리하여 후반에서는 니콜을 데려와 탈출시키고 길리어드를 붕괴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리디아가 조직을 창설하고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그 정보를 니콜과 함께 캐나다로 탈출시켰기에 길리어드는 짧은 시간내에 무너질 수 있었다.
아그네스의 친구 베카가 성적 학대로 인한 트라우마로 결혼을 거부하고 자살기도를 하자 리디아 아주머니는 베카를 아르두아홀(리디아를 위시한 창설자 아주머니들이 관장하는 조직)의 일원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저드 사령관(아르두아홀 창설에 관여한 고위 사령관이며 리디아 아주머니에게 영향력을 끼치나 시간이 지날수록 리디아의 도움을 받아 권력을 유지하는 인물)과 결혼을 앞둔 아그네스에게 결혼이 아닌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암시를 주고 떠난다. 아그네스는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지만 엄마로 알고 있던 타비사가 사망하고 새로 엄마가 된 폴라의 구박과 동생 마크의 탄생으로 집에서 소외된다. 결정적으로 베카의 아버지인 그로브 박사에게 추행을 당한 후 결혼을 통해 아내로 사는 삶을 거부하고 아르두아홀로 간다. 여기서 리디아의 지략가적인 면모가 매우 돋보인다. 니콜의 언니 아그네스를 아주머니로 만든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친구 베카는 결혼을 피해 아르두아홀로 오게 된 것에 대해 리디아 아주머니에게 도움을 받고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아주머니가 되기 위해 수련의 과정을 하나씩 마쳐가며 아그네스와 베카는 기존의 이름을 버리고 새로운 이름을 고른다. 베카는 임모르텔 아주머니 아그네스는 빅코리아 아주머니가 된다.
리디아 아주머니는 진주 소녀라는 하부 조직을 만들어 국외에서 전도사업을 펼치는 임무를 맡기고 있었다. 사실은 이 사업을 통해 리디아는 길리어드 밖의 세상과 정보를 주고받았으며 양부모를 잃은 니콜을 안전하게 길리어드 내로 유입시킨다. 니콜이 길리어드로 돌아왔다는 사실에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여긴 저드 사령관은 매우 기뻐하지만 리디아는 바로 니콜을 넘겨주지 않고 진주 소녀가 될 준비를 하던 두 아그네스와 베카에게 니콜의 교화를 맡긴다. 하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궁지에 몰린 저드 사령관이 서둘러 니콜을 공개하라고 한다. 리디아는 서둘러 아그네스와 베카에게 니콜의 정체를 밝히고 캐나다 탈출 계획을 일러준다. 아그네스와 니콜이 떠나고 베카는 아르두아홀에 남아 자신을 희생해 둘의 탈출을 돕는다. 베카의 희생이 매우 마음아팠는데 이에 대한 복선이 있었다.
에스테 아주머니가 한숨을 쉬었어요.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희생해야 한단다." 달래는 말투였지요. "남자들은 전쟁에서 희생을 치르고 여자들은 다른 방식으로 희생해야 하는 거야. 그런 식으로 세상이 나뉜 거란다."…"나는 절대로, 절대로 결혼하지 않을 거야." 그 애는 거의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어요. 118~119쪽
임모르텔은 불멸 불사라는 의미의 프랑스어다. 선을 베풀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베카에게 작가는 불멸의 이름을 선물해 준 듯하다.
아그네스가 고른 이름은 승리의 뜻인 빅토리아였다. 그 이름대로 아그네스와 니콜은 탈출에 성공한다.
리디아는 모든 기록을 마무리한채 죽음을 준비한다.
시녀이야기와 증언들은 꼭 같이 읽어야한다. 가능하면 순서대로 읽는 편이 낫다. 전편의 미스터리가 후편에서 풀리면서 쾌감이 들고 무척 재미있다. 작가의 소설가적 역량이 대단하다. 참신한 소재, 긴장감있는 서사, 디테일한 심리묘사, 인간본성에 대한 의문, 신화와 성경에 대한 통찰이 작품을 꿰뚫고 있다. 구석구석의 모든 요소들이 작가의 의도대로 배치되었고 모두 제 역할을 해낸다.
아그네스는 제미마라는 이름에 얽힌 성경 이야기를 하며 그 이야기가 얼마나 부당한가에 의문을 갖는다. 베카는 아주머니가 되어 확인한 성경의 열두 조각으로 잘린 첩 이야기에서 첩이 스스로 희생한 것이 아니라 그저 제물로 내쳐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여성에게 공정하지 못한 성경 안의 이야기 그것은 곧 길리어드라는 정부의 부조리함을 비춰주는 거울이었다. 여성을 걸어다니는 자궁으로만 취급하고 그 외의 어떠한 자율권도 주지 않는 정부. 여성에게 읽고 쓰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은 정부는 그들이 멸시했던 여성들에 의해 파괴된다. 아그네스가 5살 때 시작된 독재가 24살에 끝났으니 어리석고 미개한 정부는 20여년밖에 지속되지 못했다. 리디아가 아니었으면 길리어드 정부가 조금 더 오래 지속됐을지도 모른다. 창설자가 종결자가 되었다는 플롯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이보다 완벽한 서사가 있을까? 소설 중반에서 아그네스와 니콜의 캐릭터가 리디아에 비해 조금 약한게 아닌가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원숙한 여인인 리디아에 비해 아기때부터 자신의 정체를 알지도 못하고 자란 어린 소녀들이란 점을 생각하면 개연성 있는 설정이란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는 책. 처참하지만 감성에 호소하지 않는 책. 이성을 자극하고 경계심을 불러오는 책. <증언들>은 그런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