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버 여행기 - 환상적 모험을 통한 신랄한 풍자소설, 책 읽어드립니다
조너선 스위프트 지음, 김문성 옮김 / 스타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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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동화책으로 익히 알고 있던 책. 피부색이 검고 희거나 코가 크고 작거나 하는 차원이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세상과 완전히 다른 세상이 있다는 상상을 가능하게 만든 책. 그 책이 바로 걸리버 여행기다.

동화와 또 다른 얘기가 더 있을 거라고 충분히 예상하고 책을 들었지만 기대이상이었다. 사회적 관습이나 법률 철학 등과 같은 굵직한 부분에 대한 비판에서부터 인간성의 아주 작고 사소한 부분까지 낱낱이 까발리는 클라스다. 웃음이 터져나오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했고 부끄럽기도 했다.

걸리버의 여행기는 네 부분으로 나뉜다.

릴리퍼트 기행 (소인국)

걸리버는 동인도로 가던 중에 폭풍우를 만나 해변으로 떠밀려 갔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곳에는 15센티미터도 되지 않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다. 이 나라 사람들은 학문을 장려한 황제의 정책 덕분에 수학과 기계공학이 매우 발달했고 줄타기와 같은 오락을 중시했다. 걸리버는 적국과의 싸움에도 공을 세웠지만 황제의 계획을 거부해 미움을 사 적국인 블레푸스쿠로 피신한 후 소인국을 떠난다.

통계에 따르면 작은 쪽으로 달걀을 깨는 차라리 죽음을 택한 사람은 1만1000여 명에 이릅니다. 이 문제를 놓고 두툼한 책들이 수백권도 넘게 출판되었습니다. 하지만 넓은 쪽으로 달걀깨는 것을 옹호했던 사람들은 오랫동안 출판과 판매의 자유가 금지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공직에 나서지 못하게 법룰도 제정되었지요. 59쪽

황제의 야망은 끝이 없었다. 아마 그는 블레푸스쿠의 영토까지 지배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런 다음 그곳으로 망명한, 달걀을 넓은 쪽부터 깨야 한다는 파벌 사람들을 모두 처치하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달걀을 작은 쪽부터 깨라고 강요하며 가장 위대한 황제로 남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65쪽

작은 사람들은 도둑질보다 사기를 더 큰 죄로 생각했다. 그래서 사기꾼은 늘 사형으로 처벌했다. ……그의 죄를 덜어줄 섬으로 단지 신용을 어렸을 뿐이지 않느냐고 말해버렸다. 황제는 변호한다고 늘어놓는 소리가 도리어 죄를 무겁게 하고 있으니 기괴망측하다고 했다. 71쪽

릴리퍼트에서 달걀을 깨는 방향으로 당파가 나뉘고 적대시하는 것에 실소가 터져나왔으나 뒷맛이 썼다. 우리는 뭐가 다른가? 이념과 종교 갈등으로 수천 수만명이 살상된 역사가 있다. 달걀이 곧 이념이고 종교나 다름 없다.

브롭딩낵 기행

다시 여행에 나선 걸리버는 항해도중 엄청난 폭풍우를 만나 거인들이 사는 곳에 당도한다. 거대한 사람들은 걸리버를 매우 신기해하고 귀여워하며 하찮은 구경거리로 만든다. 걸리버는 거인국을 떠날 때까지 농부의 딸 글룸달클리치의 보살핌을 받는다.

"이처럼 작은 벌레들도 흉내를 내는 인간의 위대함이란 실은 얼마나 하찮단 말인가! 이들에게도 나름대로의 관직이 있을 것이고, 작은 둥지나 땅굴을 만들어 집과 도시라 부르며 옷과 마차로 자신을 과시하려 들고, 연애하고, 싸우고, 논쟁하고, 속이고, 배신할 것이다." 134쪽

그런데 우리는 가장 먼저 그가 다른 세상과는 완전히 단절되어 살아가고 있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다른 문명의 관습과 견해를 알지 못하면 편견에 사로잡히기 마련이다. 게다가 이렇게 먼 나라에 사는 국왕이 가진 선악에 대한 생각을 모든 인류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다. 171쪽

좁은 도량과 짧은 생각에서 나온 기묘한 결과였다. 뛰어난 재능, 위대한 지혜, 깊은 학문과 놀라운 통치력을 갖추어 백성들의 칭송을 한 몸에 받는 국왕이 쓸데없는 염려 때문에 백성들의 생명과 자유 , 재산의 절대적 지배자가 될 기회를 어이없이 놓치고 만 것이다. 172쪽

라퓨타, 발니바르비, 럭낵, 글럽덥드립, 일본 기행

세 번째 항해에 나선 걸리버는 해적에게 사로잡혔다가 며칠 먹을 식량만 받고 홀로 버려져 섬들을 헤맨다. 라퓨타는 공중에 뜨고 날아다니는 신기한 섬이었다. 라퓨타 사람들은 더 기이했다. 머리는 모두 기울어져 있고 한 쪽 눈은 안쪽을, 다른 한 쪽눈은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하인들은 오줌통이 매달린 막대기를 들고 다니며 주인의 귀나 입을 살짝 쳐주어 정신을 차리게 해주었다. 이 사람들은 수학과 음악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었다.

전쟁이 끝나자 자신은혁혁한 전공을 세웠다고 생각해, 로마로 돌아간 후 자신의 배보다 더 큰 배의 함장이 죽었으니 그 배의 지휘권을 맡겨달라고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 청원했다. 그러나 황제는 그의청원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는 바다라고는 본 적도 없는 풋내기의 차지가 되었고, 정작 자신은 직무태만 죄로 원래의 전함마저 부사령관 푸블리콜라가 아끼는 시종에게 빼앗겼다는 것이다. 265쪽

따라서 문제는 언제까지나 청춘을 누리며 건강하고 부유한 사람을 살겠느냐는 것이 아니라, 노년과 함께 찾아오는 온갖 불편을 이겨내며 불멸의 삶을 누릴 수 있느냐는 것일세. 279쪽

휴이넘 기행

걸리버는 선장이 되어 항해에 나섰다 선원들의 반란으로 버려진 걸리버는 휴이넘에서 인간을 닮은 짐승 야후를 만난다. 그 곳에서 야후는 휴이넘이라고 불리는 말들 보다 못한 존재였다. 걸리버는 휴이넘 주인과 대화를 통해 인간 본성의 천함을 깨닫는다.

첫 번째는 두 배의 보수를 치르고 상대 변호사를 매수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자신의 의뢰인에게는 공교롭게도 이쪽 주장이 더 정당하다고 하며 넌지시 배신을 때릴 것입니다. 다른 방법은 반대로 제 변호사에게 부탁해서 이 소가 상대의 것이라고 말하면서 되도록 자신의 소송이 부당하게 보이도록 하는 것입니다. 잘만 되면 이 방법으로 틀림없이 판사들의 동정을 얻어낼 수 있습니다. 331~332쪽

또 포도주를 다른 나라에서 구해오는 것은 결코 물이나 술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저 이 포도주를 마시면 모든 것을 잊고 유쾌한 기분이 되어 우울한 마음이 진정되고 머릿속에는 허황된 상상이 솟아나 희망이 생겨나고 불안은 사라지고, 얼마 동안 이성도 그 기능이 멈추어 손발도 말을 듣지 않다가 끝내는 깊은 잠에 빠지기 위해서 마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잠에서 깨면 숙취가 남아 있고 과용하면 온갖 병이 생겨나 결국에는 생명마저 단축된 것도 이 것 덕분이지요. 338쪽

때때로 미친 것처럼 구석에 드러누워 울부짖거나 신음을 내다 누가 다가오면 발로 뻥 차는 야후가 있더구나. 아직 나이도 어린데다 건강한 야후였다. 배가 고픈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하인들은 도대체 무엇이 원인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단다. 이런 경우에 유일한 치료법은 힘든 일을 시키는 것이었지. 그랬더니 제정신을 차렸단다. 353쪽

휴이넘은 배우자를 다른 휴이넘과 똑같은 사랑과 우정으로 대하기 때문에 질투나 맹목적인 사랑, 부부 싸움, 불만은 찾아볼 수도 없다.

주인은 우리가 남녀를 구별하며 여성에게만 가사를 가치는 것을 아주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랬다간 주인의 말대로 영국 국민의 절반이 아이를 낳는 일 외에는 아무 쓸모도 없는 존재가 되어어버린다. 거기다 그런 쓸모 없는 동물에게 아이를 맡긴다는 것은 더욱 야만스러운 짓이라는 것이다. 362쪽

릴리퍼트 기행과 브롭딩낵 기행은 알던 내용이었지만 세밀한 묘사로 실제 있을 법한 나라를 여행한 기행소설을 읽는 기분이었다. 깜짝 놀란 부분은 라퓨타 기행이었다. 작가의 상상력이 대단했고, 한심한 연구원들을 풍자하는 장면에서는 기발한 사례에 혀를 내둘렀다. 휴이넘 기행은 말을 인간과 같은 이성을 갖춘 존재로 설정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 모든 기행을 겪고난 걸리버가 휴이넘을 진정한 주인으로 섬기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각각의 나라를 다니며 환멸을 느낀 걸리버는 휴이넘의 덕성에 깊이 감화되어 자신의 덕성까지 향상되는 것을 느낀다. 반면에 인간의 본성 즉 탐욕, 음욕, 나태, 이성과 지성의 부재 등은 강하게 부정한다. 휴이넘은 병으로 죽는 말이 없고 모두가 평등하게 대우 받고 교육받는다. 참으로 이상적인 나라다. 작가가 꿈꾼 세계였을까?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 대영제국에 영광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조너선 스위프트는 그 시대에도 영국의 어두운 면을 보았고 이렇게 훌륭한 풍자소설을 남겼다. 1726년에 나온 소설이라니 믿기지 않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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