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고바야시 미키 지음, 박재영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황혼이혼, 졸혼 등 몇 년 전부터 유행을 타기 시작한 신조어들이 있다. 

이는 유교적이면서도 전통적인 결혼관에 반기를 드는 트렌드이기도 하면서 참고만 살아왔던 부부, 특히 아내의 반격이기도 하다.

가부장적인 상하구조의 가정에서 아이 하나만 보고, 혹은 남편의 경제력때문에 꾹 꾹 참아오던 여성들이, 

은퇴와 함께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어버린 남편을 보면서 자신의 독립성을 주장하고 우위에 서기 시작한다.

아이러니한 건 젊은 시절엔 바람도 피고 술도 마시고 외박도 하면서 가정과 아내, 아이를 소홀히 하거나 

독박육아를 하게 하며 대놓고 무시하던 남성들이 

나이가 들면서 - 여성 호르몬 때문인 걸까? 아니면 직장을 잃어서? - 

점점 아내에게 의존하게 되고 그들의 말을 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나에게 정기적으로 들어오던 수입이 끊어지거나, 병이 들어서' 라는 이유로 버림 받지 않기 위한 발버둥이기도 하다.

참으로 결혼 생활의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의 끝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일본도 우리나라와 별 다를바 없는지 각종 통계자료와 실제 결혼 생활을 해 온 여성들에 대한 인터뷰로 

그들이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북폴리오의 신간 에세이가 여기 있다.

고바야시 미키의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는 인터뷰에 응한 대부분의 여성이 한 말로,

귀여운 그림체와는 정반대로 살벌한 뜻을 내포하고 있다.





TV나 영화를 통해, 하다못해 직접 가서 느낀 일본인들, 그 중에서도 일본 여성들은 순종적이고 얌전하며 조용하다.

그래서 어머니로서, 아내로서도 늘 그런 줄로만 알았고 집 안에서 소리 지르는 일 따윈 없는 줄 알았다.

(하긴 만화책 [짱구는 못말려] 를 보면 짱구의 엄마는 곧잘 소리지르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그런데 북폴리오 에세이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를 읽고 보니 

주로 독박육아로 몇 년간 스트레스가 쌓인 육아맘들이 결국은 화를 참지 못하고 떠뜨리고 있다.


"뭐 하는 거야? 지금 장난해? 그럴 거면 차라리 나가 죽어!"

아침 7시 30분, 도쿄의 어느 아파트.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거실에서 아내가 남편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p. 13


대개는 남편을 향한 분노를 속으로 삭이거나 마음으로만 생각하지만, 이런 생각을 말로 드러내는 아내들도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남편이 죽을 때를 대비하여 미리 집 문서를 자신의 명의로 돌리고 보험을 드는 다소 치밀한(?) 계획을 짜는 아내들도 있었다.

역시 조용하지만 뒤로는 할 거 다하는 일본인다운 특성이라고 해야 할까?








에세이 속 육아맘들이 '핍박' 받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성숙하지 못하거나 이기주의의 극단을 달리는 남자를 만나 결혼한 것이고, 

둘째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집안일과 육아는 여성 몫이라는 뿌리박힌 고정관념이다.

경제적인 이유나 단지 일하는 것이 좋아서 맞벌이 하는 가정이 태반임에도 불구하고 일가정양립은 없는 듯 하고, 

결국 남자는 직장, 여자는 가정 일로서, 직장 여성도 가정 일을 도맡아하고 전업주부는 말 할 것도 없다.

맞벌이 가정의 경우 이상적으로는 50:50의 집안일 분담이 당연하겠지만, 

남자는 손도 까딱하지 않거나 어쩌다 한 번 쓰레기 버리는 등의 쉬운 일 하나 해 놓고서는 유세를 부린다.

남자들은 자신이 속한 가정의 집안일을 '돕는 게' 아니라 '같이 한다' 라는 개념을 왜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직장에서 일하던 아내의 생활 패턴이 육아휴직 기간 동안 전업주부로 바뀌고 남성이 그 생활에 익숙해지면 아내가 복직한 후에도 집안일이나 육아를 그대로 떠맡는 경우가 많다.


p. 33

게다가 남편은 이런 리에의 마음을 헤아리기는커녕 집에 오면 맥주를 마시며 늘어졌다. 한마디 하려고 하면 시어머니가 "밖에서 열심히 일하느라 피곤할 테니 그 정도는 봐줘라"고 끼어들었다. 


p. 117


저녁 식사 때 젓가락 놓는 것을 깜박 잊기라도 하면 남편은 시위하듯 맨손으로 밥을 퍼먹었다.


p. 176









비단 이들뿐이 아니다.

가까이는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다.

두 분은 거의 하루 종일 집 안에 계시는데, 식사 차리고 과일 깎고 빨래하는 등등의 일을 거의 다 할머니께서 하신다.

젊은 시절에는 할아버지께서 일을 나가셔서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지금은 왜?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피곤해서 늦게 일어날라치면 계속 깨우면서 아침 밥을 차리라 한다.

지금이 대체 어떤 시대인데 이렇게 살고 있는가?

그래서 우리 할머니도 이혼해서 혼자 살아야겠다는 말을 하시다가도 진짜로 혼자 살 자신은 없는지 금새 조용해지신다.


왜 남편은 결혼 유무에 상관없이 원하는 만큼 직장을 다녀도 되고, 여자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

행여나 맞벌이 가정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돈을 더 많이 벌기라도 하면 남성들은 왜 그렇게들 열등감에 빠져버리고 마는가?

이는 다 사회적 패러다임과 의식구조의 문제로서, 사회가 계몽되고 그 다음 개개인이 깨우치진 않고서는

- 여성들은 이미 자각한 듯 싶지만.. - 남성들의 둔탁한 사고방식은 영원히 옛날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여성이 경제적 불안 때문이아니라 단지 '좋아서' 일을 한다고 하면 '여성(엄마)의 이기심' 으로 여기기 쉽다.


p. 18

직장에 다닌다는 것과 부모라는 점은 엄마나 아빠 모두 똑같다. 그런데 엄마만, 즉 여성만 육아의 중압감에 짓눌린다.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열이 나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엄마인 미유키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보육 교사는 왜 아빠에게 연락하지 않는 걸까?


p. 37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사토코가 늘어난 업무 때문에 남편보다 늦게 퇴근하자 남편이 심술을 부리기 시작했고, 결국 가정내 이혼 상태가 되었다. '남편이 내 일을 질투하나?'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남편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고, 해외 출장을 갈 떼 사토코가 가지 말라고 한 적도 없다. 그런데 왜 남편은 그런 태도를 보인 것일까?


p. 63


이 에세이 속 남성들은 하도 답답하고 멍청해서 말 그대로 '궁둥짝을 걷어차주고' 싶다.








어쩌다 이런 사람들이 결혼을 하게 된 것일까?

아내에게 독박육아나 하게 할 거면서 아이는 왜 낳은 걸까?

단순히 고대 인류부터 내려온 종족 번식의 본능 때문에?

편안하게 쉴 집과 일해 줄 가정부가 필요해서??

그런데도 인터뷰 속 여성들은 정작 가장 필요한 이혼은 하지 못하고 

그저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고 말하면서 소심한 저항을 할 뿐이다.

아이의 아빠라는 이유로, 경제적인 이유로, 주변의 시선이 무서워 등등 각종 핑계를 들며 이혼만은 피하려 한다.


결국 그녀는 남편과 이혼하지 않았다. 정신적인 학대를 받은 아이에게 더 큰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늘 함께 지내던 사람이 사라지면 아이가 어떻게 생각할까? 다카코는 아이의 가정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았다. 남편을 용서할 수는 없었지만, 아이하고는 별개의 문제였다. '썩어빠진 인간이라도 이 아이의 아빠니까.' 그래서 남편이 죽어버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도 이혼을 결심할 수는 없었다.


p. 109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아직 많이 남은 여생을 윤택하게 살기 위해서는 이혼이 필수라 생각한다.

예전에는 '평생 직장' 을 가지고 있는 걸 자랑스럽게 여기고 이리저리 직장을 옮겨다니는 걸 달가운 시선으로 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대학교 철학과 출신이 바리스타로 성공하기도 하며, 교사를 하다가 의류 디자이너가 되기도 한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법으로 맺어진 인연이라고 없앨 수 없는 건 아니다.

정말로 싫은 사람과 함께 살기 보다는 조금 힘들더라도 편안한 마음으로 사는 게 낫다.

그만큼 참았으면 이제 종지부를 찍을 때가 되었다고 본다.

한 번 뿐인 인생을 내가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죽을 만큼 싫은 사람과 같이 살 것인가?

살인은 법치국가에서 허용되지 않는 금기시되는 행위이므로 이혼으로 대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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